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란 뜻을 가진 '고전'.
어렸을 때부터 고전 작품을 많이 읽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읽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냥 선생님들이 읽으라고 하니까 읽으면 좋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중,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솔직히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랬기에 한번 마음먹고 읽는 것, 기왕이면 좋은 작품을 읽고 싶어 선생님들이 추천해 주신 고전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그런데... 이럴 수가!
진도가 전혀 나가질 않았다. 지루했다.
흰 종이에 있는 까만 글자들을 눈으로만 훑는 수준으로 책을 읽었다.
이 책이 왜 좋다는 것인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꾸역꾸역 끝까지 읽은 것도 있지만, 머리만 지끈거려 중간에 포기한 책도 있다.
그러면서 조금씩 고전에 대한 담을 쌓았던 것 같다.
좋은 책이라고 하지만 내가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라고 느꼈기에.
그래도 한 번씩 시도해보려고는 했다.
대학생 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런데 역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고전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다른 책만 읽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아 양육의 세계에 접어들었다.
이전까지의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왜 어른들이 아이를 낳아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얘기했는지 실감한다.
물론 아이 여부와 상관없이 어른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어른의 껍데기를 쓴 미숙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뭐,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과 북적대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라는 사람을 잊어가고 있었다.
우울한 감정이 하루하루 나를 잠식하고 있을 때,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를 찾기 위해 이전까지 소홀했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일단 가벼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북클럽에 가입해서 사람들과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고전을 읽어보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예전에 몇 번 도전했다 포기한 것을 두 아들의 엄마가 된 시점에서 다시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분명 예전과 같은 책이다. 그런데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온도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책이 술술 읽히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은 책도 있긴 하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생각할 거리가 넘쳐났다.
예를 들어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읽고는 무서우면서도 여러 의문이 나를 둘러쌌다.
'인간의 본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권력을 손에 쥐면 처음의 신념과 목적은 모두 잊어버리게 될까?
부당하다는 것을 알지만 아니라고 말할 용기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방관하는 자들을 비판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까?
모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정말 존재할까?' 등등.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타인이 이야기할 때는 '아! 이런 것도 생각할 수 있구나!' 알았다.
이렇게 고전 읽기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이제 고전 읽기 시작 단계이기에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샀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책도 책장에 아직 꽂혀있다.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다.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 봤다.
고전을 읽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하고.
나는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야 이제야 조금씩 읽히는 고전이라, 아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나만의 좁은 시각일 뿐이다.
사람마다 경험한 것이 다르고 생각의 깊이가 다르니 자신만의 그릇 안에 담으면 되는 거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쩌랴. 나름대로 생각하고 재미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상황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을 만나는 것은 신기하다.
이래서 시간이 지나면 책을 다시 읽어보라고 하는가 보다.
시간이 더 지나서 다시 읽으면 나는 거기서 또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