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존재했어? 너답게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에서 나를 한참 동안 머무르게 한 문장이다.
머무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잊을만하면 떠올라 지금 내 모습을 점검하게 한다.
3년 전 이 질문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아니요."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나의 본모습,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고 있었으니까.
착각하고 있었다.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이 나의 실제 모습이라고.
가끔 튀어나오는 당황스러운 나를 숨기느라 급급했다.
자루 속에 다채로운 감정들을 꼭꼭 숨겨놓고 매듭으로 꽁꽁 싸놓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 감정들이 고여서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괜찮은 척, 좋은 사람인 척 가면을 쓰고 있었다.
위태로운 동거를 꽤 오랫동안 나름 잘 유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몰랐다. 숨기면서 사느라 진정한 내 모습을 잊어가고 있었음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정의 내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그러다 두 아들을 출산하고 육아를 하면서 숨겨뒀던 감정들이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고?' 놀랐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른 척했을 뿐이지.
산후 우울증까지 겹쳐 감정은 널뛰고, 애꿎은 아이들에게 화내고 후회하고, 그러면서 자책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상황에 내가 이렇게 못난 사람이었는지 한심했다.
자존감이 점점 바닥을 쳤다. 이제 내려갈 곳이 없을 것 같았는데 끝없이 추락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는 몰랐다.
내 감정만 보느라 타인의 얼굴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으니까.
본인 사업도 힘들었을 시기여서 혼자 힘듦을 견디고 있었던 남편이었지만, 내 감정을 먼저 헤아렸다.
이전까지 긍정의 힘, 많이 들어봤지만 내 삶에 적용시킬 생각은 못했다.
내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단정 짓고 살았으니까.
그런데... 남편은 힘든 와중에도 긍정의 힘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남편이 추천해 준 책을 읽으면서,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보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제야 알았다. 이런 고민을 제대로 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음을.
나로 존재하며 살았던 순간이 손에 꼽힐 정도라는 것과 내 삶에 나로 존재한 이야기는 많지 않음을.
왜 나는 그렇게 살았을까? 어쩔 수 없이 과거의 모습이 하나둘 떠올랐다.
하지만 과거는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고, 내가 매듭지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의 나로 살아가기로 했다.
먼저 책을 읽기로 했다.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리뷰도 적자 마음먹었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감정을 조금씩 차분하게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북클럽에 가입해서 여러 사람과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에 개개인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그제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편협했던 사고의 틀이 깨지면서 그 틈으로 다른 생각을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관심 있던 분야의 인강도 들었다. 피아노, 캘리그래피, 아크릴화, 스케치, 탁구, 수영 등 잠깐 발만 담갔다 뺀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무기력했던 내 삶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나만의 이야기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 행동이 쭉 이어지지는 않았다.
고비는 늘 있었다. 멈추고 뒤돌아가기도 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돈도 안 되는 이런 것들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해? 어차피 언젠가 사라질 텐데 이렇게 아등바등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살면 어떨까?' 등.
많은 의문과 질문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럴 때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뒤죽박죽 된 상태로 푹 퍼진 상태로 나를 내버려 두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을 거치면서 결국엔 '움직이자!'라는 결론이 났다.
두 아들과 놀이터에서 같이 뛰어놀기라도 하면서 말이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갈팡질팡 상태다.
여기서 한 걸음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한 발짝 떼야할지 모르겠다.
아니, 아직 때가 안 되었는지도 모른다. 욕심이 차올라서 나를 부추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우선순위를 잊고 계속 미루고 있는 것일 수도.
지금 이렇게 혼동의 상태를 지나고 있다. 이런 모습도 결국엔 나로 존재하기 위한 과정일 테지.
머리가 복잡하고 힘들 때는 몸을 움직인다. 건강한 집밥을 하고, 두 아들과 놀이터에 나간다.
그러면 마음과 몸이 조금은 충전된다. 여유가 들어올 틈이 살짝 생긴다.
이제는 안다. 내 이야기는 내가 써 내려가기 나름이라는 것을.
어떤 이야기로 내 삶을 채울 것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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