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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Sep 06. 2024

옆트임 클럽녀

9월이다.

아침, 저녁으로 시원이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서 가을인가 싶다.

그러나 낮에는 여전히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가 계속된다.

창문을 열어놓고 시원한 바람이 땀방울을 식혀주길 기대하지만 뜨거운 햇살만 느껴지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켠다.


이런 더위에 가을옷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여름옷을 꺼내든다.

그런데 어째 매번 입던 옷만 계속 입게 되는지.

하루는 사놓고 입지 않은 옷이 있는지 찾아보다 몇 년 전에 사놓은 티셔츠가 눈에 띄었다.

옆구리에 트임이 있는, 그러나 매듭으로 묶으면 속살이 거의 보이지 않는 옷이다.

깔끔하면서 포인트가 있는 옷을 좋아하는 편인데, 내 눈에 이 옷이 그랬던 것이다.

여름에는 있는 줄 몰라서 입고 다니지 않았는데 9월이지만 아직 더운 날씨기에 입기로 했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입을 수 있을지 모르겠기에.


위에는 옆구리에 트임이 있는 티셔츠를 입고 바지는 시원한 긴바지를 입은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나갔다.

남편은 출근하는 길이고 나는 둘째 아들 유치원 하원하러 가는 길.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내가 말했다.

"아, 참. 내일은 내가 북클럽 하는 날이니까 오전에 나간다고 지난번에 얘기했죠? 나 나가고 나면 푹 자요. 애들도 유치원, 학교에서 오려면 2시는 되어야 하니까 푹 잘 수 있을 거예요."

(격주 목요일은 동네 주민인 엄마 4명이 함께 모여 북클럽을 하는 날이다.)

남편, 알았다고 대답하더니 대뜸 나에게 이야기한다.

"아니, 근데 왜 그렇게 클럽을 자주 가는 거예요?"

엥? 이건 무슨 소리인지? 북클럽에서 '북'자를 지웠을 뿐인데 어쩜 느낌이 그리 다른지.

나는 분명 같이 책을 읽으러 가는데 신나는 노래에 몸을 흔드는 여자가 연상되게 만들다니.


이건 분명 남편이 나를 놀리고 있다는 신호다. 

분명히 아는데 나는 성심성의껏 대꾸를 해주고 있다.

"아니, 그 클럽이 아니잖아요. 북클럽이라고요! '북'자를 다시 집어넣으라고요!"

남편, 여전히 못 들은 체다.

"아, 나는 클럽 한 번도 안 가봤는데 너무 자주 가는 거 아니에요?"

"엥? 클럽을 한 번도 안 가봤다고요? 그 나이 되도록 뭐 한 거예요?"

"그러게 말이에요. 맨날 술만 먹었지 그런 곳은 가보지도 못했네요."

"그래요? 그런데 나도 한두 번밖에 안 가봤어요. 너무 시끄러워서 나랑은 안 맞더라고요."

"나는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오빠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나는 귀가 예민해서 그런지 도리어 스트레스 받더라고요. 거기서 신나게 놀고 스트레스 푸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즐기지 못했어요.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이는 것도 그리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그런데, 가만 갑자기 얘기가 북클럽에서 클럽으로 뛰고 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니, 그런데, 그 클럽이 아니잖아요! 오전 10시에 문 여는 클럽도 없어요. 나는 북클럽에 간다고요!"


남편, 나를 더 놀릴 것이 없는지 찾는 분위기다.

그런데 하필 그때 입고 있던 티셔츠에 묶어놓은 매듭이 풀리면서 속살이 조금 비쳤다.

내가 알아채고 매듭을 빨리 묵었지만, 남편, 그것을 재빠르게 캐치하고는 말한다.

"이제 보니 옆트임 클럽녀네요. 옆에 속살은 드러내놓고 클럽에 가니까요."

어이가 없다. 이 남자 재밌다는 표정이다.

더 이상 대꾸를 하다가는 저 페이스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이럴 땐 재빠르게 각자 갈 길로 가는 것이 상책이다.

"오빠, 이제 얼른 출근해요. 나는 둘째 데리러 갈게요. 운전 조심해요!!"

그러고는 나름 빛의 속도로 차에서 내리고는 남편에게 인사한다.

남편,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가득한 채 내게 인사한다.

난 그렇게 남편에게 옆트임 클럽녀가 되어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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