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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by 느린 발걸음

어느 날, 둘째 아들 유치원 하원시키러 가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할머니 한 분이 워커를 끌고 천천히 타셨다.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 후에 같이 타고 내려갔다.

이 아파트에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뵀던 분이어서 인사를 했다.

예전에는 아무런 보조기구 없이 혼자 다니셨던 분이셨는데, 몇 년 전에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와 워커를 타고 다니시는 모습을 봤다.

이제는 그때보다는 조금 괜찮아지셨는지 간병인 없이 혼자 워커에 의지해 다니신다.

인상도 좋으시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분이어서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먼저 내리시라고 말씀드렸다.

고맙다고 얘기하시며 말씀을 이어나가신다.

"아유, 고마워요. 나이가 드니까 내 몸도 내 맘대로 잘 안 되네요."

그래, 나도 예전만큼의 민첩성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나이 들어가는 것일까? 조금 서글퍼진다.

"내가 이렇게 나이들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예전엔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잘 몰랐어요. 많은 것을 겪어봐야 그나마 아는 것 같아요. 나도 이 나이 돼서야 조금 알 것 같거든요."

"아, 네.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지만 아직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지만 아직 노인이 되기에는 멀었기에 그분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나도 젊었을 땐 워커 끌고 노인들이 밖에 다니는 것을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런데 내가 지금 그러고 있네요.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거든요."

"그럼요. 저도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요. 밖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 조금씩 걷기도 하면서 나가시는 게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나와야 얘기도 할 수 있어서 그래요. 노인들이 밖에 나가는 것은 얘기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아... 그렇구나...

노인분들이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계신 것을 많이 봤다.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가끔은 비가 오는데도 지붕 있는 공원 평상 밑에 모여 계신 모습을 봤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야채를 다듬기도 하고, 그냥 누워 계시기도 하면서.

가끔은 이런 날씨에 왜 나와 계실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냥 집이 제일 편할 텐데 생각을 하면서.

집에만 있으면 얘기할 상대가 없어서, 외로워서 그렇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누군가가 그리웠던 거다.

나는 아직 두 아들이 어려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낄 새가 없어서 간과하고 있었다.

나도 혼자 살았을 때는 외로워한 적이 있었음을.


나이 들어서 건강하게 지내는 비결은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힘들다는 거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이때 깨닫는다.

가끔 혼자가 좋은 것이지 그게 일상이 되면 우울감이 생기는 것처럼.

젊을 때야 건강한 육체로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고, 바쁘게 일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그립지만, 그 모든 시간을 거친 후에는 다시 사람이 그리워진다는 것 아닌가.

북적북적대던 집안이 시간이 지날수록 적막감이 감돌면 쓸쓸할 것 같다.

함께 이야기할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고 있었는데, 할머님의 말씀을 들으며 다시금 새긴다.

더불어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시 다짐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내 주변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할머님께서 워커를 끌고 천천히 걸어가시는 모습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시면 웃음꽃이 만개하실 테지.

밖에 나와서 계절도 느끼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시면서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바람에 실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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