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이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수면 부족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예전엔 하룻밤 정도 안 자는 것쯤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이젠 아니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내 몸이 하는 얘기가 들린다.
제발 자라고. 그래야 하는 거 잘 알지 않냐고.
물론이다. 잘 안다. 나도 자고 싶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는 것을 어쩌랴.
아무리 잘 자는 법에 관한 책을 읽으면 뭐 하나.
속이 답답하고 복잡해서 제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것을.
아니, 적용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책도 안 읽히고, 글은 더더욱 써지지 않고.
솔직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직은 내 손길이 필요한 두 아들을 돌봐야 하고, 집안일도 많은데 말이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어수선한 마음도 조금은 정리되지 않을까.
지난주 월요일부터 집안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가득하던 거실을 책장과 책상, 의자가 있는 공간으로 바꿀 참이었다.
가족 수대로 책상과 의자를 놓아 그곳에서 함께 공부하고 책 읽기로 한 것.
나와 남편의 로망이었으며 최근 아이들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동의한 내용이다.
인테리어 새로 할 곳의 수치를 모두 재서 새로 들일 책장, 책상, 의자의 배치를 정하고, 거실에 있던 수납장도 모두 다른 방으로 옮기기 위해 그곳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머릿속으로 구상한 후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한다.
부피가 큰 소파가 제일 일 순위 처리 대상.
8년 정도 사용한 가죽소파인데, 두 아들이 많이 뛰어놀아서 곳곳이 해지고 구멍도 났다.
낙서도 되어 있고.
첫째 아들은 그곳에 누워서 책 읽는 것을 즐겨했지만 이젠 안녕해야 할 시간이다.
소파가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시청 홈페이지에서 대형폐기물 배출신고를 한 후 5,000원 결제하고 화요일로 수거 날짜를 정했다.
월요일 오후에는 아이들이 많이 올라가서 놀던 (이젠 커서 삐거덕거려 위험한) 원목 놀이기구를 다 분해해서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였다.
화요일에 소파와 아이들 놀이기구가 사라진 거실은 정말 넓어 보였다.
그곳을 쓸고 닦으면서 비웠으니 이제 하나씩 채우기 위해 며칠 전에 결제했던 책장, 책상, 의자를 기다렸다.
목요일 오후 책장 4개 중 어른들 용 높은 책장 2개가 먼저 왔다.
슬라이딩 책장으로 겉으로는 책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깔끔해 보여서 선택한 것이다.
아주 많은 내 책 중 일부를 그곳에 옮겨놓았다. 남편, 아이들도 함께 도와줬다.
이곳엔 고전, 다시 읽을 만한 책 위주로 옮겨뒀다. 언제든 읽어볼 수 있는 책으로.
다음날인 금요일 오전 의자 4개가 왔고, 아이들 용 낮은 책장 2개도 왔다.
책장 1개씩 각자가 사용하고 관리하기로 했다.
자기 것이라 애정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고 내가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다.
금요일 아이들이 학교, 유치원에 간 시간 동안 주방 수납장이 갑자기 마음에 걸렸다.
아무렇게나 정리해 놓아 지저분해 보였다. 싹 다 꺼내서 하나하나 정리했다.
모든 물건을 꺼내놓으면 이걸 언제 정리하나 막막하다.
내가 괜한 일을 벌이는 건 아닌지, 힘들게 언제 정리를 다 하지 싶을 때도 있지만, 안다.
이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해지면서 내 마음도 산뜻해진다는 것을.
오전 내내 주방 정리를 한 후 오후에 아이들이 집으로 오면서부터 책장 정리가 시작됐다.
서재방, 회전책장에 있던 책 중 두 아들에게 자기들 책장에 넣을 것을 정리하라고 했다.
나는 서재방 책장을 정리하고. 서재방에도 책장이 아이들 것 2개, 내 것 3개가 있었다.
내 책은 너무 많아 제목이 보이지 않게 쌓아두고 있었는데 그것을 다 정리하고 배치도 새로 하기로 한 것이다.
책장에서 책을 빼서 한 곳에 쌓아두는 것도 일이었다. 책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었다.
모든 책을 다 꺼내서 쌓아둔 후 책장 배치를 옮겼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특히 아이들 책장이.
하나는 혼자 끙끙대며 옮겼는데, 두 번째 것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고사리 같은 두 아들 손을 빌렸다.
몇 번 시도 끝에 드디어 내가 원하는 위치에 옮겼다.
사용하지 않는 책들은 노끈으로 묶어서 재활용할 곳에 두고, 중고매장에 팔 것은 도화지로 위아래를 싸서 노끈으로 묶어 다른 곳에 놔두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으면서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
아이들을 먼저 재우고 계속 정리하려고 했는데 첫째 아들이 같이 자자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재우고 다시 서재방으로 가서 나머지 정리를 시작했다.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정리가 끝났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내 손으로 (물론 두 아들도 나름 도와줬다) 이렇게 깔끔한 공간을 창출했다는 사실이.
이전보다 방도 더 넓어 보였다.
남편이 12시 넘어 퇴근하면서 달라진 공간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혼자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다 했냐고, 자기 있을 때 같이 하지 그랬다고 한다.
음... 솔직히 가끔은 혼자 하는 게 편할 때가 있다.
내 생각대로 정리하면 되는데 옆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귀찮을 때가 있으니까.
그래도 책장, 책들이 무거워서 함께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긴 하다.
남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바꾸고자 하는 의지에 놀랐다고 한다.
아니, 이건 의지를 넘어서서 집착인 것 같다고 했다.
정리하겠다는 생각에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그런가? 하루 종일 정리에만 매달려 어떻게든 결과를 냈으니 말이다.
그날 온몸이 아파서, 특히 팔이 너무 아파서 자다가도 몇 번을 깼는지 모른다.
너무 무리했나 보다.
그런데 다음날 난 오전부터 오후까지 다시 거실에 있던 나머지 수납장과 아이들 옷장을 싹 정리했다.
남편과 두 아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깔끔해진 공간을 보며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이제 책상만 거실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끝난다.
새롭게 바뀐 공간은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몸은 피곤하지만 딴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정리된 공간이 주는 안정감 또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