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쑥빛으로 물든 기억

by 느린 발걸음

봄이 되면 겨울 내내 모습을 숨겼던 많은 것들이 저를 드러낸다.

파릇파릇한 새순을 자랑하는 나무에서부터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것 같은 풀까지.

그중에 내 시선을 오래 사로잡는 건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꽃이다.

각각이 가진 색과 모양, 간혹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까지.

그러다 가끔 들꽃을 구경하려고 고개를 아래로 향할 때가 있다.

하얗고 노랗고 파랗고 보랓빛을 품은 들꽃들 사이로 익숙한 풀이 하나 눈에 띈다.

바로 '쑥'이다.


내가 쑥을 잘 알아보는 건 어렸을 때부터 많이 봐서다.

많이 봤을 뿐만 아니라 쑥을 캐 봤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엄마와 함께 쑥을 캐러 다녔는지 그것까지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공부한답시고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는 함께 다니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쑥을 캤던 기억이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걸로 봐선.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장면은 이런 거다.

각자 손에 비닐봉지나 소쿠리, 좀 무뎌진 커터 칼을 들고 쑥을 캐던 장면.

처음엔 몰랐으니 엄마가 어떤 게 쑥이고, 어떻게 캐야 하는지 알려줬겠지.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나와 동생들은 어렵지 않게 쑥을 캤을 거다.

가끔 쑥 옆에 있던 냉이도 캤다.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도 일종의 놀이라 여겼다. 누가 누가 더 많이 캐나 내기하기도 하고.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엄마 혼자 열심히 쑥을 캤을 거다.

아이들의 집중력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을 테니, 우리 삼 남매는 쑥을 캐던 비닐은 한 곳에 제쳐두고 뛰어놀았을 거다.

어렸을 때 풀밭에서 뒹굴고, 메뚜기, 개구리 등을 잡았던 기억이 있으니까.


그렇게 몇 시간을 쑥을 캐서 오면 엄마는 그 쑥을 다듬고 씻으셨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데 그때는 잘 몰랐다.

엄마니까 저런 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걸로 생각했다.

지금 엄마가 된 나는 집안일하면서도 투덜댈 때가 많은데.

어쨌든 엄마의 손길로 깨끗해진 쑥은 두 가지 용도로 사용했다.

쑥국과 쑥떡.

엄마가 맛있게 끓여준 쑥국과 갓 한 쑥떡을 먹으면서 봄을 느낄 수 있었다.



KakaoTalk_20250425_125153039.jpg
KakaoTalk_20250425_125153039_01.jpg
길에서 본 쑥과 엄마가 끓여서 보내준 쑥국




삼 남매가 머리가 굵어지면서 엄마 따라 쑥을 캐러 갔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아주 가끔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엄마는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봄이 되면 쑥을 캐러 가셨다.

이모들과 함께 가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가기도 하고, 가끔 혼자 가기도 하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엄마에겐 휴식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어도 그 시간만이 엄마가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었을 시간이었을 테니까.

자식, 남편 생각하지 않고 봄의 향을 맡으면서 쉴 수 있는 시간.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그 시간이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자식들 먹일 생각에 힘든 것도 참으면서 하셨을지도 모른다.


내가 서울로 오면서부터 봄에 쑥국을 먹지 못했다.

엄마가 고생하는 게 싫고, 서울에도 먹을 것이 많았기에 음식을 해서 보내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찬 가게에서 사는 반찬은 처음에는 맛있는데 몇 번 먹으면 질렸다.

이상했다. 엄마가 해준 반찬은 항상 먹어도 질린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엄마도 내게 음식을 보내주고 싶은데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좀 서운하셨단다.

그게 엄마가 자식에게 보낼 수 있는 사랑인데, 내가 그 사랑을 차단하고 있었던 거다.

그 얘기를 듣고 엄마에게 반찬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틈만 나면 여러 반찬을 해서 보내주셨다.

매년 봄 나는 엄마가 보내준 쑥국과 쑥떡을 먹으며 봄을 느꼈다.


그런데 이제 엄마도 연세가 드니 힘드시고, 나도 내 가정이 생겼으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봄만 되면 엄마는 쑥국은 해서 보내줄까 물어보신다.

나도 쑥국은 어떻게 끓이는지도 모르겠고, 아이들도 할머니의 쑥국을 좋아해서 쑥국만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엄마의 쑥국은 맛있다. 된장과 조개와 함께 끓이는데 어떻게 끊이는지 모르겠다.

시어머님도 한번 맛보시더니 쑥국 이렇게 맛있게 끓이기 힘든데 맛있다고 하셨다.

두 아들도 할머님이 끓여주신 쑥국을 좋아한다.

쑥국이 있으면 다른 반찬도 필요 없이 쑥국에 밥을 두 그릇 정도 말아먹는다.

그만큼 맛있다고 한다.

어릴 때는 나 혼자 실컷 먹을 수 있는 쑥국이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에게 양보한다.

나는 많이 먹어봤으니까. 아이들이 조금 질릴 때쯤 먹는다.

어쩌면 어릴 때 먹었던 쑥국과 맛이 전혀 변함이 없는지, 신기하다.


가끔 길을 가다 보면 어딘가에 앉으셔서 쑥을 캐고 계시는 분들이 보인다.

저분도 자식들 해주려고 저러고 계시나 싶다.

나는 쑥이다 하고 그냥 지나가는데.

앉아서 쑥을 캐 볼까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도 이젠 엄마가 됐는데, 엄마라고 다 같은 엄마는 아닐 테니.

나는 지금 엄마가 나에게 해주는 것을 아이들이 컸을 때 해줄 수 있을까?

남편에게는 못하겠다고 하긴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가 받았으니 그대로 주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쑥국을 먹으며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쑥국 어떻게 끓이는지도 알아야 하는데.

알아야 할 게 참 많은데 계속 미루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왜 그렇게 벚꽃에 열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