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때만 해도 초등학교 앞에 문구점이 2~3개씩 있었다.
대부분 문구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 문구점에서 찾는 물건이 없으면 바로 옆 문구점에 가서 사게 하기 위한 배려였을까.
그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학생 입장에선 여기저기 들락거리면서 사기에 편했다.
어릴 때 문구점은 없는 것 없는 천국이었다.
어린 마음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돈이 없는 걸 잊어버리고 물건을 집었다가 도로 내려놓은 경우도 있었다.
학교 준비물은 모두 학교 앞 문구점에서 샀고, 그곳에서 먹던 불량식품 또한 맛있었다.
가끔 문방구 사장님 중에 뽑기 판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물건을 사면 뽑기 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러면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살 게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를 마치면 잠깐이라도 기웃거렸다.
그렇게 나에게 학교 앞 문구점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남아 있다.
크면서는 대형 문구점이나 팬시점이라 불리는 곳에 많이 갔다.
그곳에는 이쁜 것이 더 많았고,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구경했다.
직장 다닐 때만 해도 직장 근처에 대형 문구점이 있어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곳에서 샀다.
아주 가끔 인터넷을 이용하긴 했지만, 직접 보고 사는 즐거움이 컸기에.
그러다 결혼하고 두 아들이 태어났다.
첫째 아들이 돌이 되기 전에 이 동네로 이사 왔다.
아파트 바로 맞은편에 초등학교가 있는 곳이었고, 초등학교 맞은편에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진 다른 아파트 근처에도 조그마한 문구점이 하나 있었고.
하지만 갈 일이 별로 없었다.
두 아들이 어려서 준비물이 필요 없었던 거다. 나도 별로 필요한 물건이 없었고.
두 아들이 어린이집에 가면서부터 필요한 준비물들이 생겼다.
문구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이 x, 큰 마트에 있는 문구점, 아니면 인터넷으로 준비물을 주문했다.
그게 편하고 가격도 더 싸서 별생각 없이 그렇게 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 학교 맞은편에 있는 문구점이 폐업했다.
사장님이 사정이 생겨서 더 이상 문구점을 하지 않으신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지만 자주 봐서 정겹던 곳이었는데 아쉬웠다.
그 자리는 태권도 학원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카페로 바뀌었다.
그렇게 학교 앞 문구점은 사라지고,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문구점 하나만 남았다.
그런데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쿠 x, 다이 x, 인터엣에서 계속 사게 됐다.
아이가 둘이어서 한꺼번에 사놓으면 편하기도 해서 그렇게 했던 거다.
그러다 가끔 두 아들과 문구점에 들러 뭐가 파는지 구경하고, 사기도 했다.
공책, 풀 등을 사고 둘째 아들이 구슬을 만지작거리니까 그건 서비스로 주기도 하셨다.
연세 드신 할아버지 사장님께서 그래도 그곳을 지켜주고 계셨기에 급한 준비물이 있으면 그곳에서 샀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이 문구점도 폐업한다는 안내를 보게 됐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대형 마트, 새벽 배송하는 업체들 등으로 인해 동네 문구점이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사라지다니.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두 아들과 함께 이곳이 마지막으로 정리하기 전에 필요한 것 있으면 뭐라고 사자고 했다.
폐업하기 전까지 총 두 번에 들러서 아이들은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샀다.
놀랐다. 이 작은 가게에 이렇게나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이들 만들기 할 때 할핀이 필요했는데, 동네 다이 x에 없어서 다른 곳 대형 문구점에 가서 샀었는데, 이곳에 있었다.
당연히 없을 거라 생각하고 건너뛴 곳이었는데, 정말 없는 게 없었다.
신기했다. 제대로 안 보고 지나쳤다는 생각에 조금 미안했다.
두 아들은 신나서 이것저것 담았다.
공책, 연필, 볼펜, 학종이 접는 색종이, 씨몽키 키우는 것, 해바라기 키우는 것, 자동 연필깎이 등.
현금으로 해서 50% 이상 할인해 주셔서 정말 정말 싸게 샀다.
아이들에게 사탕도 서비스로 주시고,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따로 물건을 담아주신 게 있어서 가면도 가져왔다.
감사하지만 씁쓸했다.
어릴 때 조그마한 문구점에서 무언가 고르던 기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나야 그런 기억이 남아 있는데, 아이들에게는 없는 것 같아서.
편리함만 추구하다 보니 정말 소중한 건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며칠 동안 물건들을 싸게 파시더니 지금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임대 문의'라고 쓰인 종이 한 장만 붙어 있다.
볼 때마다 조금은 아쉬운 감정이 든다.
있을 때 더 자주 들를걸. 없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느끼는 건 뭐란 말인가.
두 아들은 별생각 없어 보이긴 하지만.
나이 들어서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