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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두 어항

by 느린 발걸음


두 아들의 생일과 어린이날이 있는 5월. 그래서 5월은 분주하고 돈이 많이 빠져나간다.

4월 말부터 두 아들에게 이야기했다. 올해는 각자 10만 원으로 어린이날, 생일 선물을 다 하자고.

대신 원하는 걸 사도 된다고 얘기했다.

두 아들이 물고기를 사고 싶어 하는 걸 알고 한 이야기다.

물고기 몇 마리 사고 플라스틱 어항 사면 10만 원으로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솔직히 두 아들이 나눠놓은 풍선몰리 수조 3개(어미 1마리, 새끼 2마리 수조는 큰 아들 것, 새끼 1마리가 들어있는 수조는 둘째 아들 것)로도 벅차서 이제 그만 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자기네들이 청소하고 밥 주고 다 하니까.

그리고 초등학교 1, 3학년인 두 아들이 너무 좋아하는 걸 아는데 내가 귀찮다고 막기엔 너무한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아이들도 나름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라는 것도 받을 텐데, 자기가 좋아하는 걸로 위로받고 싶은 생각에 저러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아들이 무언가 키우는 걸 좋아한다면, 나는 반기지 않는 편이다.

두 아들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그럴까.

아니 원래 식물, 동물에 많은 관심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어렸을 때 집에 잠깐 꽃을 키웠던 걸 제외하고는 뭘 키워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식물이든 동물이든 우리 집에 왔으면 생명이 있는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잘 키우던 생물이 죽으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지금까지 두 아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방과 후 시간, 직접 사기도 한 것들 중 죽은 것들이 많다.

제브라 다니오, 금붕어, 가재, 애플크랩, 달팽이, 미꾸라지, 소라게, 여러 식물들.

잘 자라주면 좋겠지만 집에서 아무리 신경을 써도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원래 살던 자연에 놔두는 게 제일 좋지 않냐는 주의다.

아이들도 처음엔 관심을 두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이 조금씩 줄어드는 게 보이기도 하고.

그럴 바엔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는 게 저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냐고 생각하지만, 두 아들의 생각은 다르다.

좋아하니까 여기서도 보고 싶은 거다. 자기네가 잘 키울 수 있다면서.


어린이날을 앞두고 근처 대형마트에 물고기, 가재, 장수풍뎅이 등을 파는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사고 싶은지 고르라고 하고는 나와 남편은 그곳에 있는 것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이곳의 수조는 우리 집 수조와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집에 있는 수조는 플라스틱이라 아무리 아이들이 깨끗하게 청소해도 불투명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곳의 수조는 달랐다. 투명하고 깨끗해 보이고, 물고기들도 더 잘 노는 것 같고.

남편과 내가 신기해하며 보고 있으니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신다. 이건 수조를 씻지 않아도 된다고.

엥?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리 집 수조는 가끔 한 번씩 아이들이 돌까지 깨끗하게 씻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사장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바닥재부터 달랐다.

소일이라는 바닥재에 진짜 수초를 하나하나 심어주고, 여과기, 어항 히터, 전등까지 해 놓으면 2주에 한 번 물만 반 정도 갈아주면 된다고 했다. 오~ 이런 세상 편한 게 있었다니!

물고기 좀 키운다는 집의 수조는 다 이런 식이었구나! 그래서 매번 씻을 필요가 없었던 거였다.

아무리 우리가 수조를 씻지 않는다지만 이게 있으면 더 이쁘기도 하고 물멍 할 맛도 날 것 같다.


두 아들에게 이야기해 본다. 플라스틱 수조 말고 이걸 사는 게 어떻겠냐고.

돈은 엄마, 아빠가 보태줄 테니 둘이 이거 하나를 사서 하자고.

수조에 모든 게 세팅된 가격이 예상보다 10만 원 초과하는 거지만 그 정도는 괜찮겠다 싶었다.

우리도 가끔 물멍 하면 되니까.

그랬더니 첫째 아들 표정이 안 좋다. 자기는 자기 물고기랑 동생 물고기가 섞이는 게 싫단다.

몇 번 설득하려 했으나 아이 표정이 곧 울 것 같이 울먹울먹 한다.

아, 글렀구나. 이 아이 고집을 꺾기는 글렀구나 생각이 든다.

남편과 나는 어쩔 수 없이 수조를 2개 사고, 필요한 물품도 각각 따로 사겠다고 했다.

선물로 사주는 거니까 각자 잘 기르라고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니까 감사하게도 사장님께서 기본적인 세팅은 다 해주셨다.

집에 가서 수조에 물을 가득 채운 후, 미생물, 수질중화제, 수초영양제를 넣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물이 안정화된 다음에 물고기를 넣으면 된다고 하셔서 물고기는 다음에 사자고 했는데 요지부동이다.

풍선몰리 키우는 수조가 있으니 일단 거기에 넣어두고 싶단다.

어쩔 수 없이 비파 1마리씩만 일단 데려오기로 했다.

사장님께서 이건 서비스라며 두 아들에게 잘 키운 후 다음에 다른 물고기도 데려가라고 말씀하신다.


남편과 집으로 수조를 하나씩 들고 오면서 무거워서 혼났다.

플라스틱과는 무게감이 전혀 달랐다. 드디어 집에 가져와서 물을 채우고 사장님께서 하라고 한대로 다 했다.

두 아들은 세팅된 어항을 보더니 너무 좋단다.

의자를 앞으로 끌고 와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 책도 가져와서 그 앞에서 책을 읽는다.

이틀 후 원래 있던 수조에서 새 수조로 물고기들을 다 옮겼다.

다행히 잘 적응하면서 살고 있다.

여과기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도 가끔은 듣기 좋다.

나도 가끔 멈춰서 물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이건 부디 오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생각보다 지출이 많이 나가서 다른 예산을 줄여야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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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활기차진 두 아들의 수조



다음 주, 아이들이 물고기를 더 들여왔다.

원래 조금은 휑했던 수조가 조금은 다양한 물고기들로 채워지면서 활기차졌다.

주방에 있어서 나도 한 번씩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오래오래 함께 잘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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