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불러, 또 불러, 자꾸 불러
어디선가 들었다.
가전제품을 10년 정도 사용하면 바꿔야 한다고.
그때쯤 되면 고장이 잘 나기도 하고, 10년 정도 사용하고 새 걸로 바꿔야 회사에 이익이 나니 일부러 그렇게 만든다나? 설마 싶으면서도 그럴듯하게 들려서 찾아봤다.
1924년, 필립스, 오스람, GE 등 주요 전구 제조사들이 결성한 Phoebus 카르텔은 전구의 수명을 2,500시간에서 1,000시간으로 제한하여 판매를 촉진했다고 한다. 이러한 수명 제한은 제품 수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해 소비자의 반복 구매를 유도한 대표적인 계획적 진부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그 외 Apple의 '배터리게이트(Batterygate)', 프린터 제조사의 소모품 제한 등의 사례도 있었다.
아... 다른 제품에도 해당하는 일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회사들은 소비자가 자주 물건을 구매해야 이익이 날 테니까.
다른 이유도 있는지 찾아봤다.
전자기기의 내부 부품은 사용 중 열과 전기 스트레스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능이 저하되며, 이는 고장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한다.
또 습기, 먼지, 온도 변화 등 외부 환경 요인은 전자기기의 내부 부품에 손상을 줄 수 있으며, 이는 장기 사용 시 누적되어 고장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아... 그럴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부터 가전제품들이 하나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에어컨이었다. 재작년에 에어컨이 한번 고장 났었다.
A/S 기사님을 불러서 분명히 수리했는데 작년에 또 고장이 났다.
그것도 한창 더웠을 때. 메인보드를 교체해야 한다고 해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고쳤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가전제품에도 메인보드가 있구나. 그게 고장 나면 아무것도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행히 고친 후 잘 작동됐다. 그렇게 에어컨은 일단락됐다.
그런데 올해 햇수로 10년 차인 세탁기와 건조기가 말썽이었다.
우리 집에 뜬 에러 코드가 어떤 의미인지 찾아보다가 에러 코드가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다.
가전제품도 나이가 들면 사람처럼 아픈 곳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인지.
아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 집도 세탁기 겸용 건조기가 작년에 고장 났었다는 걸 알게 됐다.
A/S 기사님을 불렀는데 메인보드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단다.
곳곳에 메인보드가 말썽이다. 메인보드 교체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그 집은 메인보드 교체 비용과 새로 사는 게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그냥 새로 샀다고 했다.
나는 일단 어떤 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세탁기에 물과 함께 젖은 세탁물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IE 에러 코드가 떴지만, 뭐 어떻게든 될 거라는 심정으로 다시 동작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다시 세탁되긴 했다. 세탁기 밑으로 물이 좀 줄줄 새서 그렇지.
몇 년 전에 호수가 터졌을 때 교체하기 전까지 빨래방을 다녔던 것보단 나으니 그나마 괜찮다고 여겼다.
그런데 세탁기 밑에서 물이 줄줄 새고 시간은 오래 걸리고 에러 코드 때문에 외출할 수가 없었다.
건조기도 마찬가지. 다시 작동하면 되기는 하는데 너무 귀찮았다.
한 번에 되어야지 내가 중간에 몇 번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신경도 쓰이고.
이 에러 코드가 나중에 어떤 고장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래서 며칠 전에 A/S 기사님을 불렀다.
세탁기는 호수 패킹 부분 문제와 세탁조 고무 패킹이 찢어져서 수리, 교체했다.
건조기는 연통 청소와 센서 교체했다.
냉장고 주변도 보시더니 전력 소비도 줄이고 좀 더 오래 사용하려면 주변에 먼지를 없애야 한다고 해서 냉장고 주변도 세척했다. 냉장고는 냉장고만의 공간이 있어서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무겁기도 하고) 한 번씩 이렇게 청소를 해줘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렇게 한 번에 싹 수리하고 나니 다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다.
비록 비용은 들었지만 새로 사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나으니까.
그런데 며칠 전, 멀쩡하던 밥솥도 갑자기 에러가 뜨는 거다.
너무 황당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밥이 잘 됐었는데?
밥솥도 에러 코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E01 에러로 찾아보니 내부 전선이 끊어져서 생긴 에러였다.
하, 이건 밥솥을 다 해부해야 할 판이었다. 내가 하기엔 너무 귀찮아서 남편에게 부탁했다.
남편은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들여 끊어진 전선을 찾아내서 전선테이프를 붙였다.
다행히 그 이후엔 작동이 잘 된다.
이렇게 한 번씩 말썽을 부리던 가전제품들을 손봤다.
새로 사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데까지 사용하고 싶다.
가전제품 새로 사는 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귀찮다.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비교해봐야 하니까.
예전엔 나름 재밌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이제 고장 없이 잘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