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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곱슬이다

by 느린 발걸음

나는 반곱슬이다.

평소에는 고데기를 사용해서 어떻게든 조금은 차분하게 보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가 있다.

바로 비가 올 때다.

처음엔 고데기로 곱슬기를 어느 정도 눌러주고 있는 듯해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카락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진다.

나는 원래 곱슬머리로 태어났는데, 왜 네가 마음대로 나를 다르게 보이게 하냐고, 내가 창피하냐고 항의라도 하는 듯, 제 본모습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

내 마음도 모르고, 말이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있으니 내 모습이 그렇게 잘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타인은 나에 대해 별 관심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그런데 문제는 내가 내 모습을 보며 흠칫 놀란다는 거다.

머리카락이 붕 떠 있고 곱슬기가 스며 나오면서 지저분해 보인다.

그것도 개성이라면 개성일 수 있지만 나는 정돈되지 않은 걸 싫어한다.

그게 머리카락에도 적용되나 보다.


그제야 매직을 언제 했는지 따져 본다.

일 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두 달 전까지는 머리카락이 길었다는 것도.

긴 머리카락 아랫부분에 매직기가 남아 있어 나름 찰랑거렸던 머리카락을 단발로 자르면서 싹둑 함께 잘라냈다.

긴 머리카락을 2년 넘게 했더니 지겨워서다.

머리카락을 좀 가볍게 하고 싶었다. 그러면 내 마음도 가벼워질 것처럼.

그런데 단발로 자르면서 반곱슬이던 내 머리카락의 정체성이 단번에 드러난 것이다. 그걸 잊고 있었다.

그때부터 머리카락은 가볍지만 무거운 게 되어 버렸다.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매직해야 한다는 걸. 고데기 하는 것도 귀찮으니까.

매직하면 그래도 1년은 어느 정도 차분하게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미용실에 한번 가는 게 왜 그리 힘든지.

두 아들 학교 갈 동안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아깝다.

유일하게 혼자 있는 시간인데, 2~3시간 정도를 미용실에서 보내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도 쉽지 않고.

나를 위해 쓰는 돈은 또 그렇게 아까운지.

그 돈이면 가족을 위해 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럴 때 실감한다. 내가 정말 결혼했다는 걸.

혼자 살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돈인데, 이제는 계산하며 쓰고 있으니까.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남편은 안쓰럽게 바라보며 나를 위해 돈을 쓰라고 한다.

그러려고 자기가 돈 버는 거라면서.


그래, 그래야겠다. 며칠 내로 미용실에 가야겠다.

내 반곱슬 머리카락은 기분 나빠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깔끔한 게 좋으니까.

이번에는 책을 들고 가야겠다. 긴 시간 무료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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