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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은 늘어나고, 내 인내심은 줄어든다

식물 사랑은 좋은데, 청소도 좀 하자!

by 느린 발걸음


두 아들은 무언가를 키우는 걸 좋아한다.

처음엔 생물에만 관심을 가지더니 2년 전부터 식물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니구나. 원래 관심이 있긴 했구나. 그게 학교, 유치원 등에서 받아온 것으로 그쳐서 그렇지.

그런데 2년 전부턴 관심이 본격화됐다. 화분을 본격적으로 하나 둘 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냐고 했다.

나는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고, 두 아들도 처음에만 관심을 가지다 보니 나중엔 말라죽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데 이번엔 다르단다. 잘 키울 수 있단다.

몇 번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꽃집이나 화분이 있는 곳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유심히 살펴보는데, 그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그래, 집에 초록 식물이 있으면 좋긴 하지.

내 마음이 살짝 기울고 있을 때 남편은 이미 아이들과 화분을 고르고 있다.

본인은 베란다에 나가는 일도 거의 없으면서 자기건 왜 고르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우리 집에 화분이 꽤 늘었다. 초록의 생명체가 함께 하니 좋긴 했다.

하지만 2년 전에 산 건 지금 많이 죽었다. 내 예상대로였다.

처음에만 관심을 가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물 주는 횟수도 줄다 보니 식물들이 말라죽은 것이다.

나도, 남편도 식물엔 별 관심이 없다 보니 온 가족이 식물을 내팽개친 셈이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래서 이렇게 할 거면 이젠 사지 말라고 했다.

너무 불쌍하지 않냐고. 그러면 애들은 할 말이 많다고 한다.

자기는 물을 줬는데도 죽어버렸다고 한다. 사실인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는데.


집에 있는 것을 먼저 잘 키운 후에 그 이후에 필요하면 사자고 해도 애들은 매번 부족하다고 느끼나 보다.

다이 x에 가서 무언가를 고를 때마다 식물을 고른다.

꽃, 상추, 적겨자, 그 외 다양한 것들.

나는 두 아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너희들이 산 것은 너희들이 알아서 키우라고.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둘이 집에 있는 화분에 흙을 채우고 물도 주고 씨앗을 심는다.

화분이 너무 작은 것 같으면 둘이 분갈이도 한다. (나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가끔 대견하기도 하다. 부모가 신경 쓰지 않으니 자기네들이 알아서 하는 모습.

(남편과 내가 산 건 하나도 없으니까 관심이 가지 않는 건가?)


그래. 다 좋다. 아이들의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

베란다에 초록한 생명들이 집을 더 생동감 있게 해주는 것.

아이들이 흙과 식물을 만지고 가꾸면서 자연과 접하는 모습.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베란다는 엉망진창이 된다.

흙이 널브러져 있고 화분에 흙을 담다가 떨어뜨린 것도 그대로 놔둔다.

자기들이 뭘 해 놓았는지 고스란히 베란다에 기록을 남기는 것인가.

그걸 보는 나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나는 한 발자국도 내딛기 싫은데 두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왔다 갔다 한다.

저 상태에서 물도 주고 앉아서 관찰도 한다.

정리 좀 하라고 하면 대충 옆으로 치워놓고 만다.

한 번은 물로 깨끗하게 치우라고 했더니 흙탕물만 생기고 물장난만 하고 있다.

하. 머리 아프다.

내가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치우지 않으면 저 상태에서 변화가 별로 없다.

아이들이 치운다고 치우는 건 내가 보는 입장에선 그냥 대충 끼적거리는 것밖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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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들이 있는 베란다 상태



결국 보다 못한 내가 한 번씩 정리한다.

엄청 툴툴대면서 치운다. 혼자 치우진 않는다. 두 아들에게 하나씩 일을 시킨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하고, 쓰지 않는 물건은 한 곳에 정리하라고 한다.

바닥에 흙은 빗자루로 쓸어도 안 돼서 한 번은 물청소를, 한 번은 걸레로 닦았다.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이젠 나도 늙어서 오래 청소하면 힘들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며칠만 지나면 또 지저분해져 있다.

그래서 짜증 난다. 못 본 체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가끔 치우긴 하는데 하기 싫을 땐 그대로 놔둔다.

누가 이기나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도 치우지 않아서 결국엔 내 몫이 되긴 하겠지만.

제발 깨끗하게 좀 사용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초록 식물들도 기분이 좋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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