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모임에서 들은 얘기다.
"OO님 글을 보면 모범 답안지 같아요."
내가 쓴 글(책을 읽기 전, 읽으면서, 읽은 후 몇 가지 함께 이야기 나누려고 적는 글)을 읽는데, 내 이야기를 듣던 북클럽 멤버 중 한 분의 얘기다.
당황스러웠다. 모범 답안지 같다고?
어디가? 어떤 점이? 나름 유머도 곁들였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읽어본다. 아, 모범 답안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뭔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런데 나는 진짜 내 생각을 적은 건데. 그렇다면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게 모범생적인 삶이랑은 다른데?
가끔은 틀에 박힌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데?
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틀에 박혀 있다는 방증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학창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그래, 맞다. 나는 모범생이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어떤 친구가 나에게 했던 얘기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그 친구가 전학 왔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다들 눈 감고 얼마간 있으라고 한 적이 있단다.
다른 애들은 다 눈을 떴는데 나 혼자 뜨지 않았다고 담임 선생님께서 칭찬해 주셨다는 이야기.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친구는 그게 엄청 신기했나 보다. 오랜 세월 기억하고 있던 걸 보면.
고3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소위 노는(?) 친구와 한 번 놀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내가 너무 모범생처럼만 생활하는 게 답답해 보이셨을까.
그 친구가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었지만 무서워서 싫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오락실을 처음 가 본 건 고3 때다. 공부 스트레스를 친구들과 오락실에 잠깐 가서 풀었다.
만화책을 처음 본 건 대학생 때. 노래방을 처음 가 본 것도 대학생 때다.
이전에는 그런 걸 하면 안 된다고 들어와서 그대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갑갑하기도 한데, 그때 나는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얌전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선생님은 아주 높게만 보였고 선생님이 하는 말은 다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선생님들도 계셨는데, 그때 사회적 분위기는 그랬다.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 MT때 선배들이 주는 술을 조금 먹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술도 거의 먹지 않았다. 선배들도 나에게는 권하지 않았고.
그렇게 조금은 갑갑하고 답답한 생활을 했다.
그런 내가 싫을 때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성격을 바꿔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으니까.
직장 생활하면서 조금 바뀌긴 했다. 이때는 집을 벗어나 혼자 살 때다.
술도 진탕 마셔보고, 밤새 놀아도 보고.
그래도 근본적인 모범생적은 면은 바뀌지 않았다.
직장 생활 12년 정도를 하면서 (휴직 기간 제외) 지각은 5번 내외로 손에 꼽을 정도였고.
직장에서 공부해야 할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찾아가면서 이해될 만큼 공부했다.
놀기도 했지만 가끔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 자격증도 따고 영어 공부도 했다.
영어 학원에 다닐 때 크리스마스이브날에도 학원에서 공부한다고 친구한테 한 소리 듣기도 했다.
그 친구와 나중에 영어 학원에 다닐 때 다른 친구들이 같이 저녁 먹자고 꼬시는 걸 내가 안 된다고 학원 가야 한다고 같이 간 적도 있다.
그렇다. 모범생적인 면은 변하지 않았던 거다.
그렇다면 지금은?
결혼하고 두 아들을 양육하느라 오래 휴직했던 직장도 그만둔 지금도 그런가?
글쎄, 잘 모르겠다.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한다.
처음에는 즐겁게 했다면 지금은 그 즐거움이 많이 감소됐을 뿐이다.
매일 하던 청소를 정말 내가 힘겨울 정도가 되면 한다던가, 음식 하기 귀찮을 땐 배달시키거나 반찬을 사 먹기도 한다.
나를 위한 공부를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아이들이 학교 간 틈에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내 글도 가끔씩 쓴다.
좋은 강의가 있으면 인터넷으로 신청해서 듣고, 북클럽 모임에도 꼬박꼬박 참석한다.
그렇다 보니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제외하고는 뭔가를 계속하고 있다.
한 번은 남편이 그런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정말 부지런하게 산다고. 어쩜 그렇게 가만히 있지 않냐고.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 같다고. 나 진짜 부지런한 것 같다고.
조금씩 여유를 가져도 될 텐데 왜 이럴까?
나는 조금은 느슨한 삶을 살고 싶은데 전혀 그런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내 천성이 그런가? 내게 주어진 삶을 모범적으로 살아야 할 의무 같은 거라도 느끼고 있나?
남편에게 북클럽에서 누군가가 내게 모범답안지 같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좋은 말로 했을지 몰라도 나는 내가 조금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기에 조금 충격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글에서조차 그런 게 보이는 거냐고.
그랬더니 남편은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그만큼 잘 썼다는 이야기 아니냐고. 모범 답안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구나 싶으면서도 씁쓸했다.
내 삶을 모범생적인 테두리 내에 가둬두고 사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이게 내 삶인데 왜 굳이 바꾸려고 생각하는가 싶기도 하다.
그냥 지금 나를 인정해 주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