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나는 어디 갔지?

by 느린 발걸음


때 이른 폭염으로 너무 더웠다.

지금은 장마로 비가 많이 내려 습한 기운이 나를 감싸고 있다.

덥고 습한 날씨에 주방에서 음식 하는 것 자체가 힘들 때가 많다.

아, 그러고 보니 꼭 날씨 때문은 아니다.

올해 들어 음식을 정성스럽게 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 위주로 많이 했다.

가끔 요즘 너무 한가? 싶을 때만 이것저것 음식을 한다.

반찬의 종류나 개수를 보면 문득 작년의 내가 떠오른다.


작년의 나는 올해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건강에 많은 신경을 썼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 어떤 음식을 먹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지 않는 거라고 했지.

어쨌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은 건 직접 음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참 부지런을 떨었다.

난생처음 김치도 담갔다. 백김치, 열무김치, 열무 물김치, 오이소박이.

처음 해봤는데 레시피대로 보고 해서 그런지 꽤 맛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정도면 나, 음식 잘하는 거 아니냐는 자신감도 뿜뿜 생기고.

그동안 어렵게만 여겨졌던 나물 요리에도 도전해서 여러 나물도 집에서 해 먹었다.


아이들 간식도 건강하게 해주고 싶어서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두부포 사서 물에 한번 헹군 후 물기를 짠 후 소금, 올리브유로 살짝 간을 한 후 오븐에 돌려서 바삭바삭한 간식을 만들었다.

감자를 삶아 으깬 뒤 소금 간을 살짝 해서 조물조물 동그랗게 만들어 오븐에 넣어 감자볼을 만들기도 했다.

연근대를 사서 얇게 썬 다음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기에 넣어 연근칩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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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부지런했던 나의 흔적 : 백김치, 열무김치, 오이 소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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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부지런했던 나의 흔적 : 아이들 건강 간식



그래, 그랬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많이 걸렸지만 재밌었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고, 집에서 해 먹으니 건강한 음식이라는 자부심도 느꼈었다.

그런데 올해는? 나물 반찬, 오이냉국, 국, 찌개, 볶음밥 등 몇 가지 제외하고는 하지 않았다.

김치는커녕 아이들 간식도 손수 만들지 않았다.

솔직히 건강하라고 만들어주는데 아이들은 처음에만 조금 먹고 안 먹는다.

어른들은 맛있다고 먹지만 아이들 입맛엔 아닌 거다.

그러니 아이들 간식은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른들 먹는 반찬은 집에서 하면 잘 먹는데.

무엇보다 항상 맛있다고 해주는 남편이 있는데도 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남편은 집안일 힘드니까 반찬을 사서 먹어도 된다고 하지만 가끔은 미안하다.

남편 앞에서는 당당하게 힘들어서 이번엔 반찬 좀 샀다고 얘기하지만.

어머님은 내가 요리를 할 줄 아니까 이것저것 농사지은 것들을 보내주시는데.

그때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귀찮아서 안 한다.


가끔 생각한다.

작년의 나는 어디 갔지?

음식 하는데 즐거움을 느끼고 시간과 정성을 들이던 나는?

지금의 나와는 전혀 딴판인데?

어디 도망갔나? 다시 부르면 오기는 하려나?

사 먹는 반찬이 편하고 맛있긴 한데, 가끔 지겨워질 때가 있다.

이젠 집에서 좀 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만이라도 조금씩 다시 해볼까?

하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하는데, 그 첫 시작이 하기 싫어서 계속 미루고 있다.


가끔 작년의 나를 갖다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요리에 열정이 넘쳤던 나를. 그러면 반찬 걱정은 별로 하지 않을 텐데.

오늘은 또 어떤 반찬을 해야 하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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