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내게 준 것

by 느린 발걸음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의 '결혼'.

결혼은 어떻게든 해야 하는 생의 과업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요즘엔 비혼주의자가 꽤 있지만, 나 때만 해도 흔하지 않아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답답했다.

결혼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결혼할 사람이 없어서 안 하는 거였는데.


나는 혼자 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멘털이 강한 편도 아니었고, 외로움도 많이 탔다.

직장 생활을 서울에서 하면서 20대 중반부터 혼자 살았는데, 처음엔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웠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빈집의 휑함과 차가운 공기가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상황도 차츰 지쳐갔다.

주변 친구들도 하나 둘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이룬 모습이 부러웠다.

(물론 싸워서 내게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 부러울 때가 있었다. 싸울 상대가 있으니까.)

나도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남은 생을 함께 의지하면서 걸어가고 싶었다.


간절히 원한 결과였을까.

남편을 만나 드디어 나도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

솔직히 결혼식날이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몸이 힘들었으니까.

그 당시 내 뱃속에 첫째 아들이 있었다.

결혼식 3주 전쯤 직장에서 무리했는지 소량의 출혈이 있어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듣고 움직이는 게 조심스러웠다. 입덧으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해 기운도 없는 상태였다.

결혼식은 해야 했기에 (솔직히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었다. 너무 힘들어서. 하지만 모두와의 약속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결혼식 전날 병원에서 영양 수액을 맞고 겨우 결혼식을 마쳤다.

그렇게 나는 결혼과 동시에 평생 내 편도 생겼고, 사랑스러운 아이도 함께 생겼다.


이제 햇수로 결혼 11년 차다.

솔직히 깜짝깜짝 놀란다. 결혼한 지 벌써 11년이나 됐다고?

남편과 나를 보면 처음과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두 아들을 보면 훌쩍 커 있다.

그제야 실감한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구나.

나는 결혼하고 뭐가 달라졌을까? 궁금해서 한번 생각해 봤다.


결혼하고 가장 먼저 실감한 건 이젠 든든한 내 편이 생겼다는 거였다.

그게 엄청난 심적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그제야 깨달았다. 결혼 전에 내 마음은 불안, 초조, 걱정, 막막함에 이리저리 날뛰었다는 걸.

물론 결혼했다고 해서 앞날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젠 혼자가 아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든든하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이전까지 나는 주위의 시선에 맞춰 사는 사람이었다. 그걸 결혼 후에 깨달았다.

직업도 수능 성적에 맞춰 취업 잘 되는 과를 선택했고, 정년이 보장되는 괜찮은 곳에 취직했다.

친정에 매달 돈을 부쳐야 했기에, 그곳에서 평생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남편 이야기를 듣고 차분히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보고 알았다.

내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니고 있었다는 걸.

많이 놀랐다. 그동안 나 스스로 나를 속여왔던 거였다.

솔직히 고비는 있었지만 누구나 그러니까 그러려니 했다.

일을 그만두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거다.

남편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격려해 줬다. 돈은 자기가 더 벌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했는데 성과가 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줬다.

내게 이런 얘기를 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항상 내가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게 눈물 났다.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고 이런 말을 해줄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남편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사람이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구나!라는 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는 기분이 많이 오르락내리락해서 남편이 버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차분하게 이야기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화가 날 만한 상황이어서 물어보면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는단다.

가끔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저래야지 싶다.

사람이 좋다 보니 그걸 이용하거나 뒤통수 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모든 사람을 좋게 보고 믿는 게 답답했는데, 지금은 남편 잘못이 아니라 그걸 이용한 사람이 더 나쁘다는 걸 알기에 인생 공부 한 셈 치라고 얘기해 준다. 나도 조금은 성숙해졌다.


남편은 궁금한 게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쏟아낼 때가 있다.

신기했다. 나는 그런 쪽으로는 머리가 전혀 돌아가지 않는다.

그냥 매뉴얼대로 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어서 다른 신선한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별로 없다.

남편 이야기를 들으면 말이 되나? 싶은 것도 있다. 그런데도 그런 얘길 신나서 하는 걸 보면 재밌다.

그러면서 알았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진다는 걸.

나는 내 전공 안에서 어떻게든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이제야 다른 곳으로 발을 디딜 용기가 조금 생겼다.


남편은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다. 자기 일을 제외하고는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 잘 잊어버린다.

결혼 초반에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늘이 며칠이냐 묻는 남편을 보며 이상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알았다. 오늘이 며칠인가는 남편에게 중요한 게 아니어서 잘 잊어버린다는 걸.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챙겨야 할 건 다 내 몫이다.

본인 약도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먹지 않으니 말 다 했지.

손발톱 얼마큼 길렀는지 확인하고 잘라주기, 두 아들 학교 관련된 일 챙기기, 놀라갈 때 장소 정하기, 짐 싸고 풀기, 집안에 필요한 물건 구매하기, 집안 물건 배치하기, 양가집 생일 챙기기 등부터 시작해서 남편 일도 일정 부분 내가 관리한다.

남편은 시간 있으면 집안 일과 육아를 하려고 한다. 시간이 별로 나지 않는 게 문제지만.

잘 표시 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를 하며 지친 내게 항상 고맙다고, 그게 가장 힘든 일이라고 말해준다.

자기는 하지 못할 일이라면서,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게 또 고마워서 어떻게든 하고 있는 나다.


사랑하는 두 아들이 생겼다. 남편과 내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아이들.

입덧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진통과 출산은 얼마나 힘든지, 매일 새로움을 선사해 주는 육아의 세계는 상상 이상이어서 진짜 나를 잊어버리게도 한다는 걸 알았다.

숨겨져 있던 내 민낯을 보고 깜짝깜짝 놀랄 때도 많았다. 나쁜 엄마인 것 같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엄마, 아빠가 처음이라 헤매고 버벅댈 때도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배우면서 함께 성장해야 함을 알았다. 아이만 공부해야 하는 게 아니라, 부모도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평생 공부해야 하는 거였다.

부모라는 이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알게 됐다.

그 무게를 혼자 감당하려 하면 안 되기에 가족이 서로 조율하고 도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러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졌다.

예전엔 우물 안 개구리였다면 그 너머에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도 하나 둘 이해되기 시작했다.

역시 경험해 봐야 안다고 했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드는 육아로 인해 심심할 틈이 없다.


시댁 식구들이 생겼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전혀 인연으로 엮일 일 없었을 이들.

그곳에서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가끔은 친정식구보다 시댁식구가 나를 더 생각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하는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항상 고맙다고 말해주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항상 웃을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항상 꽃길일 수만은 없으니까. 그래도 그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헤쳐나가는 걸 배우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결혼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두 아들과 몇 년을 붙어 있으면서 즐거울 때도 많았지만 힘들 때도 많았다.

엄마로서 자질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좌절할 때도 있었는데, 인간은 누구든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시간이 전혀 없었으니 스트레스가 쌓였던 거였다.

그래서 지금은 시간 날 때 도서관, 카페 등으로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렇게 충전의 시간을 거치면 조금은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걸 지키고,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따스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또 많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그런 바람을 가지게 됐다.

예전엔 잘 몰랐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엮일지 모르는 게 인간관계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을 서운하게 했던 일이 두고두고 내 기억에 남아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잘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는 거리를 둬서 나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


원래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쓰다 보니 길어졌다.

조금 짧게 다듬을까 생각하다 지금 이 생각을 간직하고 싶어서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몇 년이 지난 다음, 결혼이 내게 준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적으면 재밌을 것 같다.

지금과 비슷할지 아니면 새로운 내용들이 추가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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