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유독 운이 좋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한 노력의 크기와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 채, 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끔 이 사람은 정말 운을 타고난 것인가? 의문이 드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바로 남편이다.
나를 만나서 결혼한 것부터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쓰면서도 양심이 콕콕 찔린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우긴다. 나도 남편을 만나 운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니까. 서로서로 운이 좋은 것으로)
남편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기는 항상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신이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잘도 한다. (종교도 없으면서)
긍정의 힘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지 않나 싶을 때도 있는데, 가끔 보면 이 사람은 진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한 두 번이면 우연이려니 하겠는데 가끔 남편을 물끄러미 쳐다보게 될 때가 있기에.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주차장에 차가 빼곡한데 남편이 주차하려고 가면 건물 출입문 근처에 자리가 갑자기 생긴다거나.
남편이 가는 길은 유독 차가 덜 막힌다거나.
조금 전까지 비가 내렸는데 남편이 나가려고 하면 갑자기 비가 그치고 날씨가 좋아진다거나.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아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거나.
음식을 해 놓으면 그 타이밍에 들어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먹는다거나.
특히 두 아들이 어렸을 때, 나 혼자 억울해한 적이 꽤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둘이 같이 있었다. 두 아들을 돌보면서.
그런데 남편이 담배를 피운다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어쩜 두 아들은 그 타이밍에 똥을 싸는지.
바로 씻겨야 하니까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내가 치운 적이 꽤 된다.
남편이 들어오면 어쩜 그리 타이밍을 잘 맞추냐고 조금 억울해하면 자기가 알고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거란다.
그런데 남편 어린 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우여곡절이 꽤 많았다.
남편 초등학생 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서울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했단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강원도에서 생활하셨다.)
어머님 혼자 삼 형제를 키우셔야 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남편 혼자 고시원 생활도 꽤 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했단다.
삼 형제가 다 서울에서 살 때는 맏이여서 그런지 집안 생활비 등을 남편이 다 냈다고 한다.
그러니 자기 앞으로 돈이 모일 틈이 없었을 거다.
앞날의 빛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날들이었을 것 같은데, 남편은 그래도 언젠가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런 믿음의 바탕에는 남편 할머님의 사랑이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한다.
글자도, 숫자도 할머니가 다 가르쳐주셨단다.
옆에서 항상 크게 될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던 남편에게 힘이 되어줬단다.
초등학교 운동회에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못 오셔서 아버님이 오셨는데, 할머니가 오시지 않아서 시무룩하게 있었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도 할머니를 무척이나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었다는 남편.
혼자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빗나갈 수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큰 사랑을 떠올리며 버텼다고 한다.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남편을 보며 많이 느낀다.
남편 삶을 보면 운이 좋았다기보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바탕에는 무한한 사랑을 주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계셨고.
(돌아가신 아버님이나 어머님도 나름의 사랑을 주셨을 텐데 남편에겐 할머니라는 존재가 많이 컸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운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누군가에게 언제나 네 편이라는 든든한 지지와 사랑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어서일 수도 있다.
(물론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잔잔했고, 엄마도 삶의 굴곡이 꽤 많으셨으니까.)
남편을 만나고 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나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남편을 만났고, 사랑하는 두 아들도 만났다.
거기에 내 생각을 많이 해주는 시어머님과 시댁 식구들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보라고 지지해 주는 남편이 있기에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것보다 마음의 여유가 나에겐 필요했나 보다. 경제적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조금씩 노력하고 있으니)
내 일을 찾을 때까지는 남편 일을 도와주면서 개인사업에 대한 것도 조금씩 알게 되고.
세상을 보는 폭이 조금씩 넓어짐을 느낀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도 예전보다 얼굴이 더 좋아졌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이 그만큼 예전보단 편안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물론 여전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도 많고, 여러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어떻게든 헤쳐나갈 힘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내가 조금씩 이런 생각을 가지는 만큼 두 아들은 아빠의 영향을 받아서 어릴 때부터 긍정적인 마인드를 장착했으면 한다. 나도 더 노력할 테고.
그래서 우리는 운이 좋은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