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생일상

by 느린 발걸음


일주일 전 남편 생일이었다.

남편 생일 6일 전은 내 생일이다.

내 생일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남편 생일이 있는 것이다.

남편이 내 생일날 어떻게 해주냐에 따라 남편 생일을 챙겨주려는 속 좁은 마음이 가끔 든다.

하지만 남편이 신경 써주지 않아도 나는 나름대로 어떻게든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라는 이름이 주어져서 그런가?


결혼 10년 차인데, 남편이 내 생일상을 직접 차려준 적은 없다.

아니,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미역국 하나라도 끓여주면 좋을 것 같은데.

남편은 미역국에 선뜻 도전하기가 겁난다고 항상 이야기한다.

신혼 때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에서 짐작할 수 없는 맛이 느껴져 둘 다 먹지 못하고 버렸던 기억이 있어서다.

아니 요즘엔 요리 영상도 넘쳐나서 보고 하면 되는데, 이건 분명 핑계다.

하지만 요즘 남편 일이 바쁘기도 했고, 시어머님이 남편에게 잔소리 폭격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섭섭한 마음을 아주 잠깐만 표현했다.


내 생일날엔 외식을 했는데, 남편 생일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한다.

올해 두 아들 생일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생일상을 챙겨줬기에 남편 생일도 좀 챙겨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요리를 하기 싫은 게으른 내가 떡 버티고 있어서 머리가 아팠다.

그 게으른 나를 몇 번 설득시킨 후 어떤 음식을 할 것인가 생각했다.

팥밥, 미역국, 나물 몇 가지, 고기, 잡채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당일날 아침에 하면 너무 정신없을 것 같아서 전날 어느 정도 해 놓기로 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건시래기가 있어서 물에 불려놓고 양념을 해서 된장 시래기나물을 만들었다.

소금, 물만 넣어서 만든 깔끔하고 시원한 무나물도 만들고, 시금치도 살짝 데쳐서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고, 냉장고에 숙주도 있어서 살짝 데친 후 양념을 넣어 나물을 만들었다.

미역줄기는 예전에 너무 많아 남은 것을 보관해 놓은 것이 있어서 다시 씻고 당근, 양파를 넣어서 볶음으로 만들었다.

나물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잡채는 고기를 넣어서 할지 어묵을 넣어서 할지 살짝 고민한다.

고기를 해동시켜 놓지 않았기에 이번엔 어묵으로 하기로 한다.

표고버섯, 파프리카, 팽이버섯, 시금치, 어묵을 미리 데치거나 볶아서 준비하고, 당면도 삶은 후 찬물에 헹궈놓는다.

양념장을 만들어 프라이팬에서 당면을 넣어 같이 버무리다가 준비해 놓은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어서 볶는다. 이렇게 잡채도 완성.


냉동실에 보니 지리멸치가 있다.

남편이 멸치볶음을 좋아하기에 지리멸치를 덖어 프라이팬에 떨어진 가루를 없애고, 견과류도 미리 덖어두었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넣고 마늘을 넣고 먼저 볶다가 멸치, 견과류를 넣고 양념을 해서 완성.

살짝 바삭바삭한 식감을 주기 위해 마지막에 설탕도 조금 넣었다. (보통 요리하는 데 설탕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넣어야 맛있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미역국은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한다.

아이들은 양지고기로 해줬는데 생각보다 기름기가 많아서 느끼했다.

이후에 가끔 미역국을 할 때 국거리용 한우를 미리 끓는 물에 20초 정도 데친 후, 미역과 물을 자박자박하게 넣어 10분 정도 끓이다 물을 많이 넣고 고기, 다진 마늘, 국간장, 참기름을 넣어서 했더니 깔끔하고 다들 좋아해서 이 방법으로 끓였다.

고기는 내일 생일상 차릴 때 구우면 되고, 팥만 삶아놓고 다음날 잡곡밥에 팥만 넣으면 된다.


케이크가 고민이었다. 두 아들 때는 해 줬다. 고민했다. 할까 말까.

전날 저녁 좋아하던 케이크 가게에 다음날 포장할 것을 주문하려 했더니 모두 품절이었다.

아... 어떡하지 싶어 쿠*에서 검색해 봤다. 냉동케이크가 꽤 나왔다.

맛있을까? 싶었지만 쭉 검색해 보니 초콜릿이 맛있기로 유명한 고*바 케이크가 보였다.

가격이 사악하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뿐인 생일인데 아이들도 함께 먹을 것이니 주문했다.

이로서 모든 준비는 끝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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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생일상과 선물



다음 날 토요일 점심이 다가오는 시간에 생일상을 차렸다.

아침엔 남편이 자고 있었고, 두 아들은 과일을 먹은 후 배부르다며 만들기 삼매경에 빠져 있어서. (덩달아 나도 붙잡혀서 도와주느라 힘들었다.)

드디어 내가 준비한 음식들로 남편 생일상을 차렸다.

고기도 굽고 한쪽에는 배달온 케이크까지.

이렇게 해놓으니 잘 차려진 한상 같다.

남편은 나에게 돈을 선물해 줬는데, 나는 지금 쉬고 있는 관계로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주기로 했다.

작년 일 년간 출판사 서포터스로 활동하고 수료 때 받은 볼펜이 있었다.

처음엔 만년필인줄 알았는데 볼펜이어서 사용하지 않고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나는 내가 쓰는 볼펜이 따로 있어서 잘 사용하지 않기도 했고 쓰기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남편에게 줬더니 바로 써보고는 부드럽게 잘 써진다며 좋아한다.

생일상도 고맙다며, 내가 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는다.

덩달아 두 아들도 잘 먹고.

이래서 생일상을 차리나 보다.

모두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서.

내년에도 차릴 수 있을까? 그건 장담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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