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어머님

by 느린 발걸음


8월, 일주일 간격으로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 두 분을 만났다.

평소 바쁘단 핑계로 잘 내려가지 못하는데 병원 진료 덕분에 이렇게라도 얼굴을 뵌 것이다.

어머님은 1박 2일로 검사 하셔야 해서 강원도에서 서울로,

엄마는 건강 검진하러 부산에서 경기도로 올라오셨다.


먼저 어머님이 올라오셨다.

원래 검사 날짜가 언제가 될지 확실히 몰랐는데, 기존에 있던 예약이 취소되면서 어머님이 하시게 된 것이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잘 되긴 했지만 솔직히 나쁜 마음이지만, 귀찮기도 했다.

어머님 검사는 1박 2일이어서 같이 잠을 자야 할 동성 보호자가 필요한데, 어머님은 삼 형제밖에 없으시다.

그래서 며느리들 중 한 명이 자야 하는데, 병원 관련된 건 장남인 남편과 맏며느리인 내가 거의 챙겼기에, 이번에도 내가 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아직 결혼하지 않으신 막내 도련님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둘째 서방님네도 간혹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긴 해도, 어머님 병원 진료 관계된 건 어째 매번 우리 몫이 되는 것 같은지.

이런 삐딱한 생각도 잠깐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게 표정으로도 드러났나 보다.

내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남편은 혹시 하기 싫으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본인이 어떻게든 알아서 하겠다며.

가만히 생각해 봤다. 만약 친정에서 이런 상황이었다면, 남편은 본인이 하겠다고 할 사람이다.

그래, 맞다. 솔직히 100퍼센트 좋은 마음을 갖지는 못했지만, 아이들 방학으로 내 시간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 거라고 얘기했다.

초등학생 3학년, 1학년인 두 아들만 놔둘 수는 없어서 여동생에게 부탁하고 남편과 둘이 병원으로 향했다.


동서가 오전 동안, 남편이 오후 동안, 내가 저녁 7시 넘어서 다음날 퇴원 시까지 같이 있기로 했다.

어머님과 함께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뭐랄까, 연세가 많이 드셨다는 게 느껴졌다.

며느리에게 이런 걸 하게 해서 미안해하시기도 하고. 괜히 찡했다.

어머님과 잘 지낸다고는 해도 며느리기에 조금은 불편하신 것도 있으실 테고.

병원에서 자는 잠이 편안하지는 않았기에 어머님도 나도 뒤척이면서 잤다.

다음날 아침, 피검사 후 다른 검사를 위해 이동했을 때 남편을 만났다.

어머님 검사하시는 동안 남편이랑 어제 어땠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검사가 다 끝나고 어머님이 씻으시고 옷 갈아입으시는 동안 옆에서 챙겨드릴 수 있는 건 챙겨드렸다.

어머님이 거의 다 혼자 하시긴 하셨지만. 확실히 예전에 비해 기억력이 안 좋아지긴 하셨다는 걸 느꼈다.

그 기억을 내가 붙잡아드릴 수도 없고...


어머님은 내게 고생했다며 몇 번을 말씀하시는데, 죄송스러웠다.

처음에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있었던 건 아니어서, 어떻게 보면 어머님이 내게 해주시는 걸로 봐선 이 정도는 당연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속 좁은 사람이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두 아들 때문에 집에 가야 해서 병원에서 인사를 드렸는데, 집에 가시면 또 혼자 계실 어머님 생각에 마음이 좀 그랬다.

그렇다고 우리가 내려가 살 수도 없고, 어머님은 이곳이 답답해서 싫어하시고.

그곳에서 오래 사셨기에 아는 사람도 다 그곳에 계시고, 밭에서 농사도 지으시고, 바쁘시기도 하고.

하지만 쓸쓸함이 느껴졌다. 혼자라는 쓸쓸함. 자식, 며느리, 손주들이 있지만 자주 못 가니까.

강원도에 갔다 집으로 올 때 혼자 계시는 어머님을 볼 때마다 찡한데, 이런 찡함이 또 느껴진 거다.


친정엄마는 남동생이 본인과 함께 건강검진 하자고 올라오시라고 했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엄마를 챙겨드리고, 나는 엄마 건강검진 끝난 다음날 같이 보기로 했다.

어딜 가면 좋을지 찾아보다 엄마가 몇 개의 선택지 가운에 광명동굴에 가고 싶다고 해서 그곳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그새 더 늙으셨다. 하긴 나도 늙고 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본인을 위해서는 돈 쓰시는 걸 잘 못하시는 엄마다 보니 예전엔 화장품도 옷도 챙겨드렸는데.

지금은 내 가정 꾸리기에도 바빠서 제대로 못 챙겨드렸다.

결혼한 후 두 아들이 어려서 정신없는데 여전히 첫째인 내가 많은 걸 하길 바라는 것 같은 동생들.

너무 힘들어서 동생들에게 너네가 이제 좀 하라고 한 이후 이전만큼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마음도 예전보다 덜 갔던 게 사실이다.

연락도 원래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필요할 때만 가끔 했는데.

그냥 엄마는 언제든 계실 것 같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거다.


여동생이 문진 할 때 옆에 있었는데 약간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일주일간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온 적이 있냐고 했을 때 있다고 대답했다면서.

아, 시어머님도 혼자 사시면서 우울증이 약하게 있다고 나왔는데.

엄마는 아버지가 계셔도 자기밖에 모르니 더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 얘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 봤다. 엄마의 인생은 도대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계실까? 자기 삶이라는 걸 살고는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연락 자주 드리고 자주 찾아뵙는 것밖에 할 게 없는데, 그것마저 귀찮다고 잘하지 않으니.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엄마방에서 TV 소리가 들린다.

두 아들도 언제 일어났는지 할머니 옆에서 TV를 보고 있다.

평소라면 많이 봤다고 이제 그만 나오라고 해야 하는데, 왠지 엄마에게 저 순간이 소중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손주와 함께 TV라도 보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두 아들도 아직은 어려서 할머니와 함께 TV를 보지만 조금 더 크면 그러지 않을지도 모르니.


예전엔 당연하게 엄마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다녔는데, 아이들이 생긴 뒤로 내 손은 두 아이들 몫이 되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엄마 손을 잡는 게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순간을 그냥 보내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용기 내서 오랜만에 엄마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이런저런 얘기를 함께 했다.

외로움을 느끼실 때도 있겠지만, 이모들, 친구분들을 자주 만나신다고 하셨다.

나이가 들어서 만나서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두 어머니를 보면서 엄마의 삶이란 어떤 건지 생각해 보게 됐다.

자신을 위한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오신 두 분.

여전히 자식들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무슨 일이든 하시려는 두 분.

해가 갈수록 세월의 무게가 얼굴에 조금씩 드러나는 두 분.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찌르르하게 아픈 두 분.


하지만 이런 생각은 두 아들과 함께 투닥거리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서서히 잊힌다.

그때 느꼈던 더 잘해드려야지 라는 생각도 점점 옅어지고.

참, 그런 걸 보면 사람이란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생각도 점점 덜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글이라도 남겨본다.

한 번씩 연락이라도 더 드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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