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른이 되기 싫어."

책 속 한 문장

by 느린 발걸음

"난 어른이 되기 싫어. 난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아 재미있게 살고 싶어."

제임스 매튜 베리의 <피터 팬>에서 피터 팬이 하는 말이다.


피터 팬은 왜 어른이 되기 싫다고 했을까? 왜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고 싶다고 했을까?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다. 어린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상상력과 자유를 잃고 싶지 않아서, 어른으로서의 책임이 무거워서, 상실의 경험을 피하고 싶어서, '영원한 소년'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서, 바람직한 어른을 보지 못해서 등.

궁극적으로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 몸과 마음이 성장한다는 건 결국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변화는 이전과는 다름을 전제하기에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거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느니 그냥 지금 이대로 만족하면서 살고 싶다는 외침은 아닐까.


<피터 팬>의 피터 팬처럼 어린 시절에 머물고 싶어 하는 심리를 가리켜 <피터팬 증후군>이라 한다.

어른이 되는 것을 회피하고, 성장에 따르는 책임을 부담스러워하는 심리적 경향.

공식 정신의학 진단명은 아니라고 하는데, 심리학, 대중심리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이란다.

나도 스스로 피터팬 증후군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20대 중후반까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피터 팬처럼 어린아이로 남아 재미있게 살고 싶은 것보다는 어른이 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는 건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데 왜 나는 어른이 되는 게 싫었을까?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아마 고등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성인이 되기까지 남은 기간은 딱 3년. 비록 수능이라는 거대한 문을 통과하기 위해 공부만 해야 했고, 학생이라는 신분에 얽매여 제약이 많은 삶이었지만, 그래도 집, 학교라는 거대한 울타리가 있었다.

그 울타리가 너무 갑갑해서 벗어나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맞이하게 될 변화보다는 그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서웠던 것 같다. 성인이 되면 내 인생을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내 힘으로 모든 걸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누군가 정해준 삶이 아니라 이제부터 스스로 찾아서 이뤄나가야 한다는 두려움. 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냥 사회에 내던져지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갑갑한 제약에서 벗어나 술, 연애 등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꿈꾸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그렇게나 좋을까 의아함을 가졌다.

아마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어른을 만나지 못한 것도 있고.


그때 책을 많이 읽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지금 책을 통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아는 힘이 조금씩 길러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 당시엔 내가 경험한 게 적으니 느끼고 받아들이는 폭도 좁아서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고전을 몇 권 읽긴 했지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왜 이런 걸 읽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으니까.

그냥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을까? 10대 때 느끼는 30이라는 나이는 엄청나 보였다.

젊음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나이, 밝고 싱그러움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 나이로 접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젊음, 활기와 작별하고 점차 세상에 찌든 채 살아갈 텐데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당시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는데, 시, 서사도 좋았지만 젊음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이 든 작가들에 비해 젊음의 푸릇함만이 기억에 남는 셈이었으니.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늙을 때까지 오래 사느니 젊을 때 죽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

그냥 늙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싫었던 것 같다. 언제나 젊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철없었다. 그때여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조금씩 다른 생각이 나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진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내가 돈을 벌어 혼자 힘으로 생활하기 시작한 때.

아마 이때부터 내 진짜 인생이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집, 학교라는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 혼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사회 초년생 때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나 스스로 돈을 벌다 보니 쓰기 바쁘기도 했고.

그때도 인생을 길게 보지 않았다. 미래의 나를 위한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젊음을 소비하고자 했다.

이 젊음이 언제까지 지속되리라 착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30이라는 나이에 접어들자 삶의 무게가 달라졌다.

나의 청춘이 끝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철없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도 생겼다.

진짜 어른이라는 나이를 맞이한 것 같은 중압감.

그랬던 것 같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면서 뭔가 가슴을 내려앉게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시기도 참 젊었다. 어쩌면 내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많이 안다고 착각하던 시기. 정말 부족했는데 그걸 제대로 보지 못했던 시기.

그 부끄러움의 시기를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내겐 오지 않을 것 같던 마흔이란 숫자를 맞이했을 때 난 정신이 없었다.

늦게 결혼해서 아이 출산과 육아로 정신없던 때였으니까.

마흔이 되면 마음이 또 한 번 휘몰아친다던데 그걸 느낄 새가 없었다.

서른이 되었을 때 느꼈던 가슴 철렁함을 마흔이라는 나이에는 일상의 정신없음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가 결혼도 하고 두 아들의 엄마가 됐다니.

가끔은 이게 정말 현실인가 싶은 적도 있었다. 내 이름 앞에 붙여진 수식어가 하나씩 늘어갔다.

딸, 학생의 역할만 하면 됐는데, 어느새 자식, 며느리, 아내, 엄마, 학부모, 어른 등의 이름이 앞에 붙어 있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춘기 때처럼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 인생, 삶에 대해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혼돈의 시기.

직장도 10년 넘게 다녀보고, 7년이 넘는 휴직기간에 이은 사직, 출산, 육아, 집안일에만 전념하면서 살아오면서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졌다.


그러다 이런 질문도 하게 됐다. 나는 왜 그렇게 어른이 되기 싫었던 걸까?

그제야 알았다. 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살아가고픈 마음이 커서였다.

나 혼자 힘으로 자립해서 뭘 할 수 있는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은? 그냥 내 나이가 좋다. 솔직히 더 젊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건 욕심이라는 걸 알기에.

나이가 들면서 경험하는 것들이 하나둘 쌓이고, 주변을 바라보던 시선도 점차 바뀌고,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기로 했다.

누군가 시간을 되돌려 갈 수 있다고 한대도 어릴 때(10대, 20대 초반)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별로 없다.

내 자유의지가 별로 없었으므로. 어딘가로 탈출할 곳도 없었으니까.

그 갑갑함에서 해방되어 내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훨씬 좋다.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기만 했던 내 마음도 조금씩 안정되기도 했고.

뭐, 여전히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강도도 기간도 짧아졌음을 느낀다.


아마 나를 힘들게 하는 인연들과는 거리를 두고 좋은 인연들을 만나면서 더 그러지 않았을까?

피터 팬도 좋은 어른이 곁에 있었다면, 마냥 어린아이로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옆에서 차근차근 가르쳐주며 멋지게 나이 드는 게 어떤 건지 보여줄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서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두 아들에게 심어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변화가 두려워 마냥 어린아이로 살고 싶던 피터 팬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진다.

많은 기억을 잊어버리면서 유지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에 피터 팬도 조금은 지치지 않았을까 싶어서.

나도 그랬던 것 같으니까. 어리게만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조금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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