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책 속 한 문장

by 느린 발걸음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에 나오는 질문이다.


이 문장을 보면서 '어떤 사진을 담아야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일까?' 생각하는 내가 보인다.

갑자기 껄끄러워진다. '누가 봐도'라는 단어 때문에.

내 행복인데,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핵심인데, 이런 것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건가 싶어서.

그렇다면 껄끄러운 단어를 빼고, 순수한 내 생각만으로 채워진 내가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음... 고민된다. 여러 장면이 떠올라서.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

고개를 돌리면 공원, 바다 등이 보이는 책이 많은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책을 읽는 모습,

작은 정원이 있는 집 마당을 바라보며 따스한 햇살을 느끼며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긴 모습,

맑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떠 있는 햇살 따스한 날에 나무와 꽃이 많이 있는 공원을 천천히 걸으면서 꽃 향기를 맡는 모습,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손을 잡고 웃으면서 걸어가는 모습,

해변가 모래사장에 앉아서 멍하니 파도가 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

문구점에서 문구류를 이리저리 구경하는 모습,

전시회에 가서 작품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모습,

서점 한 공간에 서거나 앉아서 읽고 싶었던 책을 훑어보는 모습,

우리나라나 외국의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모습 등이 떠오른다.

현재 가능한 것도 있고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되어야 가능한 것도 있다.


위에 떠올린 여러 장면을 하나의 사진에 분할해서 담고 싶은데 그건 욕심이겠지?

하나를 고르라면 뭘 골라야 할까? 고민된다. 상황에 따라 다른 사진을 선택할 것 같으니까.

지금의 나는 '고개를 돌리면 공원, 바다 등이 보이는 책이 많은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책을 읽는 모습'을 고르겠다.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하기에 그런 바람을 담고 있는 사진이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에 가깝게 느껴져서.

아마 아이들이 조금 더 크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다른 모습을 담은 사진을 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항상 똑같지는 않지 않을까? 아닌가? 똑같은 사람도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사진에 담을지 궁금하다.


<행복의 기원>에서 저자는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다."

엥? 그게 전부라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정말 그런가?

그래,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긴 하다.

아이들과 복작대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행복할 때도 분명 있으니까.

가만 생각해보니 혼자살 때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먹는 밥이 쓸쓸하게 느껴져 누구가와 함께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일상이 되어버린 이후 함께 음식을 먹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행복이란 건 조금 더 거창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럼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언제부터?

어렸을 때는 분명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내 삶의 중심에 놓여있던 적이 많이 없었다.

뭐, 물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행복한 가정, 이런 건 꿈꿨으니까.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냥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았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내 삶의 변두리에 있다가 잊을만하면 가끔 나를 찾아오는 느낌?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행복'이라는 단어가 삶의 중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보였다. 행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넘쳤다.

왠지 조바심이 났다. 저기에 끼지 않으면 행복이 나는 비껴갈 것 같아서.

그래서 지금과는 다른, 내가 원하는 미래 언젠가의 내 모습을 그렸다. 그걸 이루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으면서.

그때부터였다. 가볍게 느껴졌던 '행복'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해진 것이.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로 웃음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 연상된다. 몸과 마음이 더없이 가벼울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실상 내 모습은 어떤가? 내 어깨를 짓누르고 마음속에 돌덩이 하나가 들어앉은 것 같다.

왜 그럴까? 아마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현재의 행복을 가벼이 여겨서 그런 것 같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이길래 행복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처럼 여겨지는 걸까?

왜 현재의 내 모습에서 행복을 찾지 않고 먼 미래로 내 행복을 미루고만 있을까?

그러니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했다. 내가 정해놓은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먼 길을 가야 하니까.

지금 느끼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미래의 어느 한 지점으로만 모든 정신이 집중되어 있으니 현재는 버겁기만 했다. 그러니 이런 버거운 상태가 반복되어야만 닿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더없이 무거웠던 거다.

그런데 왜 그럴까? 왜 행복을 무언가를 이뤘을 때의 모습만이라고 생각했을까?


그건 책에서도 나오듯이 2천 년 전부터 쭉 이어져 온 엘리트주의적인 행복관 때문인 것 같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귀족 가문에서 최고만을 누리며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

그가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단언하면서부터 행복을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모든 인생사가 향하는 최종 종착지로 본 것이다.

그 이후 수많은 책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의미를 찾아라' '가진 것에 만족해라'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같은 조언을 했다. 즉 내가 가진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한 것이다.

생각을 바꾸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설령 생각을 바꿨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거다.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인데, 생각은 아주 일부분이니까.

그래도 나는 조언에 따랐다. 일단 생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오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아직도 행복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서 그럴까? 그렇다면 조금은 무게를 가볍게 해볼까?


현재, 지금 이 시점으로 행복을 끌고와보자. 이 순간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생각해보는 거다.

감사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행복감과 관계가 있는 것 같으니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걸 생각해보자.

일단 따스한 햇살이 내리비쳐서 행복하다. 추운 날씨지만 햇살 덕분에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몇 시간이라도 있는 것이 행복하다. 조용히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 무거웠던 마음의 무게를 운동하면서 조금 덜고 오는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어서.

따스한 핫초코를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어서 행복하다. 내 머릿속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는 생각들이 글자로 전환되어 나오는 과정이 신기하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다. 자연을 보고 힐링한다는 게 어떤 건지 깨닫고 있다.

내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 수고스럽지만 그 과정이 즐거울 때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행복한 순간은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행복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넣지 않았을 뿐. 행복이라는 카테고리를 크게, 유연하게 만들어놔야겠다. 많은 순간이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저자는 이야기한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음식과 사람이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그래. 그렇다.

저자가 이야기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이걸 제일 행복으로 여기기엔 아직 멀었나 보다.

먹는 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게 좋긴 하지만, 아직은 다른 것이 우선시되나 보다.

출산때부터 지금까지 혼자만의 시간의 부족으로 인한 갈증이 더 커서 아직은 혼자 있는 시간에 느끼는 행복이 좀 더 큰 것 같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달라지면 또 달라지겠지.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들에 행복이라는 단어만 붙여도 될 것 같다.

아니,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기분 좋다, 즐겁다 이 정도여도 충분할 것 같기도 하고.

굳이 행복이라는 단어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쁜 순간들이 모이면 내가 찾지 않아도 행복은 어느새 내 곁에 와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 굳이 행복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자.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그런 뿌듯함이 나를 즐겁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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