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삐치는 사람이었구나!

by 느린 발걸음

둘째 아들은 잘 삐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삐쳐서는 고개를 휙 돌리곤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아니, 조금 전까지 잘 놀았는데... 왜 갑자기 저러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

저런 걸로도 삐친다고? 이런 생각이 들 때도 꽤 있고.


어릴 때는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웃겨서 아이 모르게 조금 웃다가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면 보인다. 누가 들어오나 안 오나 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들어가면 고개를 휙 다른 곳으로 돌리는 걸.

아직 삐친 상태라는 걸 시위하듯 약간 씩씩거리는 소리도 내고, 얼굴은 사선으로 향하고 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왜 속상했는지 얘기를 한다.

솔직히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었겠다 공감해 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한 번은 생각해봐야 한다고 얘기해 주고 안아주면 금세 풀린다.

어쩌면 자기를 봐달라는 시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살살 달래주면 못 이기는 척 나온다.

삐친 정도가 약하면 나올 때 슬쩍 미소를 짓고, 삐친 정도가 강하면 나오긴 하지만 표정은 풀지 않는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면서 논다.

가끔 감정의 변화가 심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그랬던 둘째 아들이 이젠 초등학생이다. 학교에 들어가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웬걸.

삐치는 건 그대로다. 성격이 뭐 쉽게 바뀌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 자주 삐쳐서 그런지 달래줘야지 싶으면서도 귀찮을 때가 있다.

'왜 또 저러는 거야.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이런 생각이 들 때.

그러면 그냥 놔둔다. 삐쳐서 들어가서 문을 닫아 버려도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자기 고집대로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보여서. 나도 할 일이 있고 매번 달래는 것도 좋은 건 아닌 것 같고.

그러면 시간이 조금 지나면 슬쩍 문을 열고 나온다. 그리고는 나를 한번 보고는 고개를 휙 돌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나 삐쳤는데 왜 알아주지 않냐고 표정으로 얘기하듯이.

그래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 내버려 두려고 한다.

그러면 또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거실로 온다. 아직 삐쳤다는 걸 알아달라는 듯이 약간 씩씩거리면서.

하지만 처음에 비해 강도가 줄어들어 있다.

그러면 아이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얘기하기 싫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기도 한다.

이 정도 했으면 풀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을 때 내 기분도 썩 좋진 않아서.


가끔 생각한다. 저 아이는 왜 저렇게 잘 삐칠까?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러다 어느 순간 알았다. 아, 날 닮았구나. 나도 잘 삐치는 사람이었구나.

솔직히 나는 내가 잘 삐친다는 걸 몰랐다. 여동생이 아이들에게 그런 얘기를 할 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생각했다. 내가 뭘 잘 삐친다는 건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삐치는 건가? 이런 생각이 잠깐 들긴 했다.

그래도 나 정도면 뭐, 괜찮지 않냐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내가 잘 삐치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거다. 그러다 어느 날 인정했다.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


삐친 대상은 첫째 아들이다.

첫째 아들은 느리다. 집에 있으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누워서 책 읽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그런지 체중이 많이 늘었다. 체중이 늘면 아이에게 여러 모로 좋지 않기에 일주일에 두 번, 줄넘기 학원을 1년 넘게 다녔다. 그렇게라도 운동을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런데 이런... 줄넘기 학원이 문을 닫았다. 다른 운동을 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싫단다.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세 번 집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줄넘기를 하는 걸로 대체하기로 했다.

두 아들이 자기네끼리 함께 가면 좋겠지만 이 아이들은 항상 나를 끌고 간다.

나가면 둘째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운동한다. 매번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아이니까.

첫째는 잘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

아주 천천히 걸어 다니거나 뭘 관찰한다고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때가 많아서 답답할 때가 있다.

운동하러 나왔으면 운동을 했으면 좋겠는데 저러고 있으니 말이다.

운동의 의미는 전혀 없이 그냥 시간 때우는 것 밖에는 되지 않으니까. 내 입장에선 그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걷기, 자전거 타기를 하더라도 줄넘기는 1,000개는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왜 줄넘기 1,000개를 해야 하냐며 중얼거린다. 그런 얘기는 없지 않았냐고 하면서.

조금씩 쉬었다 하면 20분도 채 안 걸리는데 투덜거리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

어떤 날은 대충 줄넘기 1,000개를 하고는 다 했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아주 천천히 돌아다니기만 하는 거다. 원래 학원에 가지 않는 대신 땀이 날 때까지 운동하기로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며칠을 하다 보니 갑자기 짜증이 났다.

그날 내 컨디션이 별로였다. 첫째 아들을 보니 몸운동은 하지 않고 또 입운동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얘기했더니 구시렁대면서 설렁설렁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하라고. 네 건강하라고 하는 건데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엄마는 더 이상 스트레스받기 싫다고. 네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고. 난 이제 네가 운동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그러고 집에 와서 밥 차려주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필요한 말만 했다.

자려고 누웠는데 첫째 아들이 자기 전에 뽀뽀를 하려고 하는데도 싫어서 그냥 자라고 했다.

감정이 상해서 풀리지 않는 상태였던 거다. 그날 밤에 자면서 알았다.

나 첫째 아들에게 삐쳐서 지금까지 이러고 있구나. 나 잘 삐치는 사람이었구나.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속 좁은 사람이었으니까.


미안하긴 했지만 아이와 이야기하면 또 감정이 상할 것 같아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남편이 첫째와 이야기하고 일주일에 세 번 1시간 정도 운동을 꾸준히 1년간 하면 뭔가를 사주기로 했단다.

보상이 걸리니까 그제야 할 마음이 들었나 보다. 하지만 항상 운동하러 데려가는 건 내 몫이다.

남편이 시간이 없으니까. 그래서 가끔은 갑갑한데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두 아들을 데리고 운동하러 간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지붕은 있고, 사방은 그물 같은 걸로 막혀있는 배드민턴장이 가까이 있어서 거기로 갔다.

다행히 밖보다는 훨씬 괜찮아서 그곳에서 줄넘기를 하려고 했는데 배드민턴을 치고 싶단다.

그래서 배드민턴을 1시간 동안 10분씩 돌아가면서 1:2로 한다.

땀이 그렇게 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운동을 꾸준히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사소한 걸로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내가 이야기한 걸 건성으로 듣고 대답만 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좋게 좋게 이야기하면 좋다는 건 알겠는데 왜 그게 쉽지 않을까.

그냥 놔두면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 자기 물건을 여기저기 놔두는 건 싫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리정돈의 벽을 많이 허물었음에도 어느 정도 까지라는 게 있지 않나.

내가 정한 한계가 넘어가면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하게 된다.

매일 똑같은 걸로 얘기하는 게 지칠 때가 많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상해서 삐치게 된다.

하... 이 나이에 이렇게 삐치다니. 둘째가 잘 삐친다고 뭐라 할 게 아니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좀 넓게 가져야 하는데... 어렵다... 진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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