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수술

by 느린 발걸음

1월엔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진다.

똑같은 날의 하루일 뿐인데 새해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의미부여를 하는 거다.

올해에는 이전까지 하던 루틴(운동, 책 읽기, 글쓰기)을 더 강화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짐이 무색하게 루틴이 무너지는 계기가 갑작스레 찾아왔다.


1월에 맞은 첫 일요일, 조금은 느슨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면 조짐은 있었는지 모른다.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일어나자마자 허리가 아프긴 했는데 잠을 잘 못 잤나 보다 하고 넘겼다.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갑자기 복통이 시작됐다. 그때가 오전 9시 정도.

조금 누워 있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누워 있었는데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직감했다. 누워 있는다고 나아지지 않을 복통이라는 걸.

예전에 장에 가스 찼을 때처럼 앉아도, 일어서도, 누워도 통증이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평일이었으면 집 근처 내과에 갔을 텐데, 일요일이라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내가 힘들어하니 남편이 근처에 응급실 있는 병원을 찾아서 함께 갔다.

갈 때는 얼른 X-ray 찍고 약 받아와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약 먹는다고 바로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하루 정도만 지나면 그래도 괜찮아질 테니까.


응급실에 가서 문진을 하고 신체검진을 했다.

아랫배 전체가 아프다고 했더니 눌러보면서 어디가 더 아픈지 물어봤다.

예전에는 눌렀을 때만 아팠는데, 이번엔 누를 때도 아팠지만 뗄 떼가 더 아팠다.

피검사, X-ray, CT를 찍어보자고 했다.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지만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피검사하면서 주삿바늘을 연결해서 수액을 맞고, 진통제도 맞았다.

진통제가 들어가니 심한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복부가 묵직하고 불편한 느낌은 남아 있었다.

검사 결과가 나와서 남편과 함께 들었다.

소장과 충수에 염증이 있다고 했다. 충수 크기가 원래 4~6mm가 정상인데, 나는 현재 8mm라고 했다. 10mm가 되면 보통 터진다면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장에 가스가 차서 그런 줄 알고 약만 받으면 가려고 했는데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니.

응급실 의사는 초음파를 찍으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초음파는 월요일에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원해서 금식하고 수액 맞으면서 있다가 월요일 초음파 검사를 할지, 아니면 집에 갔다가 내일 다시 와서 검사를 할지 결정하라고 했다. 되도록 병원에 입원하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다시 통증이 생기면 병원에서는 처치가 가능하니까.

남편과 상의하고 입원하기로 했다. 뭐, 별 일이야 있겠어 싶은 마음이었다.

초음파만 하면 바로 퇴원할 것 같으니까 짐도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다음날 오전 초음파 검사를 한 후 담당교수를 면담했다.

CT,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면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안 그러면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아, 그렇구나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의외로 담담했다.

두 아들이 방학중이어서 남편이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보호자가 없어도 되냐고 물었다.

내가 입원한 병동이 간호통합병동이기도 해서 보호자는 필요 없다고 했다.

그날 오후 바로 수술하자고 해서 동의서를 작성한 후 병동에 가서 남편에게 전화로 이야기했다.

남편은 아이들 데리고 잠깐이라도 들르겠다고 했다. 아마 수술 다 끝나고 도착할 거긴 했지만.

그렇게 그냥 담담하게 병실에 있었다. 남편은 잘 될 테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했지만, 걱정 같은 것도 별로 들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수술해야 하는구나, 수술하는구나라는 생각만 했을 뿐.

오후 2시경 수술장으로 갔다. 마취한다는 얘기를 듣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있었는데 기억이 끊겼다.

내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회복실이었다. 주변이 어수선했고 추웠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에 병실로 갔다. 남편과 두 아들이 와 있었다.

마취가 깨서 그런지 복부에 통증이 그대로 전해졌다. 자가통증조절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두 아들은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는 모습이 낯설었나 보다. 4인실이어서 다른 환자들이 있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커튼으로 쳐져 있다고는 해도 아이들은 모든 게 이상하게 여겨졌나 보다.

괜찮냐고 물어보고는 아빠에게 집에 얼른 가자고 이야기한다.

아직 어려서 엄마가 아픈 게 어떤 건지 아직 제대로 모르는 건지, 남자애들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아주 조금 서운하긴 했다. 엄마가 아파서 누워있는데 아주 잠깐 얼굴만 보여주고 가겠다니.

그래도 아이들이 병원에 오래 있어서 좋은 일도 아니니까 나는 남편에게 가라고 했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어서 시간이 좀 지나면 화장실 가러 혼자 일어나기도 해야 해서.

지금 이 복통으로 가능할까 싶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무통주사를 누르면 될 테니까.

그렇게 남편과 아이들은 가고 혼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잠이 스르르 왔다.

한잠 자고 일어나 보니 통증이 조금은 덜했다. 저녁부터는 가스도 나오면서 통증이 조금 더 줄었다.

혼자 일어나서 화장실도 갈 수 있을 정도가 됐고. 그런데 피곤했는지 계속 계속 잠만 왔다.

다음날부터는 물 마시고 죽도 먹으면서 조금씩 움직이기도 했다. 병원이 너무 갑갑했다.

남편은 저녁에 아이들 이모가 아이들 봐주면 병원에 잠깐 들렀다 얼굴 보고 일하러 갔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집안일 하고, 두 아들과 놀아주기도 하느라 남편도 힘들었을 거다.


일요일에 입원해서 수요일 드디어 퇴원했다. 화요일 오후부터 병원이 너무 지겨웠다.

어머님이 예전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게 얼마나 지겨운 줄 아냐고 했었는데 그걸 새삼 느꼈다.

나도 예전에 수술한다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하지 못한 것들이 마음에 걸렸다.

퇴원만 하면 운동 제외하고는 어떻게든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내 마음과 달리 몸은 쉼을 필요로 했다.

책상에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으면 힘들었다. 어지럽고 몸이 쉼을 요구하는 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누워 있으면 또 잠이 왔다. 정말 잠을 실컷 자는구나 생각했다.

원래 두 아들과 함께 잤는데, 두 아들이 내 배를 찰 위험이 높아서 혼자 자고 있다. (이건 너무 좋다.)


수술한 지 10일 정도 되어가는데 아직은 몸이 회복되지 않음을 느낀다.

이젠 실밥도 다 빼고 샤워해도 되는 게 개운하긴 하다. 복대는 탈장의 위험이 있어서 2주는 더 해야 한다고 했다. 헬스장 가서 운동하는 건 3주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컨디션을 보다가 2월부터 무리하지 않게 조금씩 해봐야겠다.

보통 때라면 낮잠 자지 않고 집안일, 책 읽기, 글쓰기, 운동 등으로 하루가 빽빽하게 찼었는데.

지금은 틈이 중간중간에 많다. 힘들면 바로 누워야 그나마 체력이 회복된다.

젊었을 때 수술했을 때는 금방 괜찮아졌던 것 같은데. 이젠 나도 나이가 먹었나 보다.

그래도 나를 배려해 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힘들다 그러면 들어가서 쉬라고 얘기해 주고, 집안일도 거의 하지 않는다.


너무 급하게 가려고 해서 조금 브레이크가 걸린 것일까.

처음엔 갑갑하기만 했는데 그냥 이런 쉼도 필요한 거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록 속도는 늦더라도, 이러면서 내 속도를 다시 조정하는 거겠지.

왜 충수염이 갑자기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를 한번 돌아보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조금 더 회복에 중점을 둬야 할 때다.

그래서 책도 천천히 읽고 있고, 힘들면 놓아버리고 잔다.

언제까지 이럴지는 모르겠지만 2월 되면 그래도 많이 회복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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