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젊은 시절

by 느린 발걸음

누구나 사회 초년생일 때가 있다.

아무것도 몰라서 어리바리할 때. 새로운 환경, 사람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을 때.

프리셉터의 도움 없이는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을 때.

나중에 혼자 일하게 되면 내가 한 사람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만 앞서는 때.

그때 선배들이 엄청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척척 해낼 수 있을까.

나도 과연 저럴 수 있을까. 나만 시간이 지나도 어리바리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걱정에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았지만, 피곤해서인지 곯아떨어지던 날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적응하기 시작한다. 일에도, 사람에도, 직장에도.

처음에는 프리셉터가 가르쳐준 대로 일하다가 점점 내 스타일을 찾기 시작한다.

처음의 어리바리함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어설픈 모습도 점차 사라진다.

나도 잘 몰랐는데, 나는 생각보다 일에 적응이 빠른 편이었다.

보통 신규들이 완전히 적응하는 데 6개월이 걸린다고 하던데, 나는 3개월 만에 적응을 끝냈다.

급한 성격이 한몫했을 수도 있다. 빨리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손도 빠른 편이어서 남들과 같이 시작해도 빨리 끝낼 때가 많았다.


12년이 넘는 직장생활동안 총 네 부서에서 근무했다.

1년 2개월, 1년 6개월, 2년 5개월, 마지막 부서에서는 휴직에 들어가기까지 7년 6개월간.

잘 적응해서 일에 많이 익숙해져 있을 때 다른 부서에 가게 되면 또 적응기간을 거쳐야 한다.

다른 환경, 사람, 일이기에. 그래도 한번 해봤다고 한 달 정도만 있으면 바로 적응했다.

이젠 신규가 아니라 나름 선배니까 말이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중간 연차 정도가 되었을 때.

일이 익숙해지면서 내가 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신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으니까. 나도 그랬고.


그런데 나보다 나이도 있고 경력도 많은 선배들이 답답해 보일 때가 꽤 있었다.

20대 후반,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까마득히 어린 나이다.

선배들이 봤을 때 얼마나 어린애 같았을까. 거기다 결혼도 하지 않아서 육아 등에 대해선 전혀 모를 때다.

그래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것, 아이를 챙기는 것, 양가 집안을 신경 써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

내가 직접 겪어본 일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려는 노력도 많이 안 했던 것 같고.

나는 한창 젊었으니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던 때다. 체력도 괜찮았다.

출근 시간 30분~1시간 전, 직장에 미리 가서 그날 해야 할 일을 대강 파악한 후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대충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러다 보면 보인다. 앞 타임이 놓친 것들이. 몇 개 없으면 이야기한다. 해결해 놓고 가라고.

그런데 내가 컨디션이 별로거나 놓친 것이 많으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야기조차 하기 싫었던 거다.

기분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타입이라 내가 그러고 있으면 선배들도 눈치를 봤다.

그땐 그렇게라도 해서 본인들이 빼먹는 걸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연차는 쌓여서 나보다 월급도 훨씬 많으면서, 뒷타임에게 일을 이렇게 떠넘기다니. 기분이 별로였다.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을 아주 느긋하게 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는 일이 거의 비슷한데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인가 싶어서.

그때 난 각자의 속도를 인정하지 않았던 거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이 있는데, 효율성만을 따졌다.

하루는 어떤 선배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어제 몇 개 빼먹고 갔더라. 미안해. 일 하면서 왜 저러나 했겠다." 이런 뉘앙스의 말을.

그 당시 내가 어떻게 반응했지? 그것까진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말로는 괜찮다고 했겠지만 표정은 아니었겠지.

속으로는 '이제 그만 좀 잊어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요'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한 두 살 나이 먹으면서 조금은 이해의 폭이 넓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30이라는 나이와 함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부서로 갔다. 그곳은 내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 곳이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라 적응하는 데 좀 걸리긴 했지만 그 시기가 지나자 괜찮아졌다.

그러면서 근무시간에 집중하면 다 끝낼 수 있는 일을 굳이 남아서 하는 선배들이 이해가지 않았다.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 외 근무를 해야 할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날도 많았는데.

마감이 다가와서야 부랴부랴 하는 모습을 보고 왜 저러지? 싶었다.

나는 미리미리 해놓는 걸 선호하기에 닥쳐서 한 경우가 없었으니까.

속으로 참 많이 답답해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정말 부끄럽다.

나도 나이가 들어 보니 그때 선배들이 이해 가기 시작했으니까.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도치 않게 깜빡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잘 챙긴다고 챙겼는데도 잊어버리는 것들이 생겼다. 특히 두 아들을 낳은 이후.

집안일, 육아만 하는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힘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직장을 다녔던 선배들. 그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게 된 것이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각자 성향과 속도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각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있으며 그걸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그런 걸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내 잣대로만 판단하려고 한 거였다.


선배들 입장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가 일 조금 잘한다고 잘난 척하는 꼴이지 않았을까.

그때가 가끔 생각나면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다.

내가 그렇게 미숙하고 못난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이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내가 그 선배들 나이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책, 영상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조금은 생겼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둔 나와는 달리, 여전히 커리어를 쌓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요즘 후배들이 무섭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똑같구나 싶다. 그 나이 때 가질 수 있는 생각인가?

젊음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볼 줄 알면서 많은 걸 안다는 착각에 빠지는 시기.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몇몇 사람들도 젊은 시절 자기 모습이 부끄러웠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비슷한가 보다.


그러면서 하나씩 배워가는 거겠지.

그래, 부끄러워할 줄 알고 이젠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나아진 게 아닐까.

자기 위로일 수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나를 조금은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일 테니.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 지금을 회상했을 때, 조금은 덜 부끄러운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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