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새벽,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6시 15분. 12월이라 밖은 아직 깜깜하다.
더 자고 싶은데 아이가 우니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엄마, 엉엉, 나 일찍 일어나고 싶었는데, 늦었잖아요."
아니, 이게 뭔 소리람? 이것도 일찍 일어난 것 아닌가? 학교 가려면 2시간 넘게 남았는데?
"지금도 일찍 일어난 거잖아요. 거실에 나가서 하고 싶은 거 해요."
그렇게 말해도 속상하다면서 계속 찡찡거리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울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오늘은 형도 일어났잖아요.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그걸 못하게 됐잖아요. 엉엉엉."
아... 뭐라고? 혼자만의 시간? 초등학교 1학년이? 새벽에?
이게 뭔 소린가 싶어 생각해 보니 아마 전날 새벽에 일찍 일어났던 게 좋았던 모양이다.
그 전날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 주 일요일부터 밤 10시에 잠들어서 다음날 6~7시에 깨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3~4일 정도 그렇게 자다 보니 잠의 총량에도 한계가 있는 건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 일이 생긴 거다.
중간에 두 번 정도 깼었는데, 시간을 확인해 보면 아직 한창 더 자야 할 시간이었다.
그렇게 다시 잠들었는데, 새벽 3시 40분쯤 화장실 간다고 깼다. 덩달아 둘째도 눈을 떴다.
화장실 갔다 와서 둘째에게 너무 이른 시간이니 아직 더 자야 한다고 얘기하고 나도 더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정신이 너무 말똥말똥한 것 아닌가. 둘째 아들 잠든 것 확인하고 그냥 일어났다.
오랜만에 새벽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자 생각하면서.
낮에 혼자 있는 시간과 새벽에 혼자 있는 시간은 느낌이 좀 다르다.
모두 자고 있는 캄캄한 새벽에 혼자 깨면 조용하고 적막한 가운데 정말 오롯이 혼자 있는 기분이 든다.
그게 좋아서 한때 새벽기상을 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는 소리. 7시에 일어나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뭐 어쨌든, 양치를 먼저 하고 따뜻한 차를 타서 내 책상으로 갔다.
아직 깜깜하긴 하지만 밖은 어떤가 싶어 쳐다봤다. 가끔 멍하니 바라보면 좋을 때가 있어서.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에 빗방울도 맺혀 있었고.
이 조용한 새벽에 비가 오고 있구나, 나름 낭만적이다 생각하며 스탠드의 불을 켰다.
(이 스탠드도 새벽에 일어나면 사용하려고 산 건데, 몇 번 사용해보지 못했네.)
노트북을 켜고 나름대로 끄적거리며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쳐다보니 남편이 일어나서 내 책상 옆 본인 책상에 앉는 게 아니겠는가. 그때가 새벽 4시 40분쯤.
그러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나 혼자 뭐 좀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남편과 대화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가 이제 좀 들어가서 자라고 얘기했다.
새벽에 퇴근한 거 다 아는데 힘들 거라면서. (혼자 있고 싶다고요! 속으로는 이렇게 외쳤지만.)
그렇게 남편을 5시 조금 넘어서 다시 자라고 들여보내고 이제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5시 20분쯤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엄마가 옆에 없으니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언제부터 그랬다고? 혼자 잘 자면서.)
거실에서 누워 있으라고 하고 이불도 가져와서 덮어줬다. 그런데도 잠이 오지 않는단다.
그냥 일어나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얼굴이어서.
그렇게 둘째 아들이 일어나면서 나의 혼자만의 시간은 막을 내렸다.
조용하고 적막한 시간은 지나갔지만 각자 할 일을 한다면 문제 될 건 없다.
둘째 아들은 자기 책상에 앉아서 책 읽고 그림도 그리고, 이것저것 하면서 혼자 잘 놀고 있었다.
그런데 놀면서 둘째 아들의 우렁찬 소리가 몇 번 울렸다. 그 소리에 첫째 아들도 일어났다.
6시 조금 넘어서. 아, 이제 진짜 나의 시간은 끝이 났구나 직감했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일찍 일어나면 이 집 남자들은 왜 다 따라서 일찍 일어나는지.
나는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건가...
어쨌든 그때 일찍 일어나서 엄마와 둘이 조용히 있던 시간이 둘째 아들은 좋았나 보다.
그날 밤에 잘 때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내일 일찍 일어나면 꼭 나 깨워줘요."
"엄마가 오늘은 일찍 일어났지만 내일은 늦게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일어나는 대로 깨워줄게요."
그러고 잠들었는데, 자기가 깼는데 형도 깨니 혼자 조용히 있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거였다.
그런데 첫째 아들은 일찍 일어나도 혼자 조용히 책을 읽기에 시끄러울 일이 별로 없는데.
그냥 혼자 오롯이 있는 시간이 필요했었나 보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생각해 보니 내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해서 그런 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천천히 거슬러 가봤다.
두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 있다.
인간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나라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결혼 전에는 혼자 살았기 때문에 직장에 다니긴 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꽤 많았다.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는 있었지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더 컸다.
그래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해도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하는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성향이라기보다는 그냥 사람들 틈에 끼어 있어야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고나 할까?
긴 세월을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몰랐던 셈이다.
2년 터울의 두 아들을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혼자 있을 시간이 전혀 없었다.
처음엔 자각하지 못했다. 아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으면 누구든 한 명은 아이를 전담 케어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려고 휴직까지 했으니 내가 아이들 옆에 항상 붙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쳤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 나는 누구이며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의 마음. 처음엔 내가 이상한가 싶었다. 모성애가 부족해서 그런가 해서.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혼자만의 시간이 엄마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걸 몰랐던 거다.
거창하게 어디를 가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냥 1시간이라도 아이들과 떨어져서 혼자 걷거나 차를 한 잔 마시는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걸 전혀 하지 못하다 보니 힘든 게 쌓이기만 했었다.
남편 일이 바빴기에 아주 가끔 혼자 밖에 나가서 1시간 정도 걷다 들어갔다. 그렇게 리프레시를 한 셈.
뭐, 집에 가면 세 남자가 어질러놓은 걸 보면서 말문이 막힐 때가 많긴 했지만.
두 아들이 점점 커가면서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생겼다.
하루에 4~5시간이라도 그게 어딘가. 처음엔 그 아까운 시간을 집안일하는데 썼다.
그런데 그렇게 사용하다 보니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고는 나를 위해서만 쓰기로 했다.
아이들 보내놓고 운동하고, 산책하고, 차 마시고, 책 읽고, 글 쓰고, 북클럽 모임에 참석하고, 강의 듣고.
그렇게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남편의 출근 시간이 늦어서 같이 있는 경우가 많기에. 그러면 이것저것 챙겨줘야 하고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보내는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들에게도 항상 이야기했다.
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너희들이 건강해서 학교에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처음엔 내 말에 수긍하지 못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첫째 아들이 둘째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중에 놀아줄 테니까 지금은 혼자 책 좀 읽자."
아... 그래, 너도 그렇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지금부터 알게 됐네.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 생이어서 그런지 혼자 있는 것보단 누군가 함께 있는 걸 더 좋아했다.
그런데 둘째도 조금씩 커 가면서 혼자 하는 것들이 늘었다.
책 읽고, 그림 그리고, 이것저것 조립하고, 다트 던지고, 활 쏘고 등등.
그래도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그런데 이젠 둘째 아들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네.
내가 너무 그런 말을 많이 했나? 아니면 그런 시기가 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