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책 속 한 문장

by 느린 발걸음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양귀자의 <모순>에 나오는 문장으로,

스물다섯 해를 살았는데 인생의 부피가 너무 얇다는 걸 깨달은 안진진의 다짐이다.


처음엔 문장이, 나중엔 그런 다짐을 한 나이가 눈에 띄었다.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을 때. 그때 안진진 같은 다짐을 하게 된다.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어보자!" 그리곤 아주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계획을 하나 둘 세운다.

차일피일 미루다 겨우 겨우 시작했는데 작심삼일로 끝나는 게 문제지만.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난 언제 처음 했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빨라도 이십 대 후반이다.

그 이전에도 그런 생각을 몇 번 하긴 했겠지만,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머릿속에 생각만 가득한 채 행동은 하지 않고,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걸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기대하면서.

당시 여러 고민도 했겠지. 생각이 많았으니 머리로만.

하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 인생의 부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으려나.

스물다섯 살이면 사회 초년생이니까. 직장생활에 적응하기에도 바빴던 시기니까.

그래서 저 스물다섯이란 숫자가 조금 생소했다.

다른 사람들은 저 나이 때 저런 고민을 하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라는 다짐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 첫 번째 시기는 스물여덟 살 때쯤.

그 당시 나는 뭐랄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에서 전공한 걸 직업으로 택했고, 신규 시절에는 적응하느라 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자 다른 생각이 스멀스멀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가? 생각보다 재미가 없는데? 다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는 걸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그런 걸 찾는다면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할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런 건 어떻게 찾는 거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어느 순간 나를 찾아오는 걸까? 살다 보면 그런 번뜩이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걸까? 그렇다면 기다려보자.'

정말 가만히 누워서 저런 생각을 했다. 몸은 움직이지도 않고. 뭔가를 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고.

참 순진하고 어렸던 시절이었다. 마냥 뭔가가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만 했던 시절.

시간이 지나도 날 찾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동기들 만나서 술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다 한 권의 책을 읽게 됐다.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자기 계발서였다.

그전에도 책을 읽긴 했지만, 소설, 한국사 위주의 책만 읽었다. 자기 계발서는 처음 접한 셈.

평소라면 전혀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어찌 된 일인지 그 책이 내 눈에 크게 띄었다.

나를 꼭 읽어야 한다고 손짓하는 듯했다. 뭔가에 홀린 듯이 그 책을 사서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가만히 있는다고 찾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뭐든 해봐야 안다는 걸.

내가 원하는 걸 찾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해봐야 어떤 게 나에게 맞는지 안다는 걸 알았다.

아! 그걸 깨닫자 나는 당장 뭘 해야 할까 고민했다. 원래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생각만 하고 있으면 또 흐지부지 될 게 뻔했다. 그래서 당장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해보기로 했다.


내가 그때 생각할 수 있었던 최선은 비슷한 종류의 일을 찾는 것이었다. 그땐 생각의 폭이 좁았으니까.

다른 곳에 지원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봤는데, 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이 붙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정보처리기사, 컴퓨터활용능력 1급에 도전했고 붙었다.

영어 공부도 하면 좋을 것 같아 기초 회화와 토익 학원에 등록해서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이렇게 뭐라도 하면 기회가 왔을 때 조금은 유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삶에서 조금은 다르게 나를 변화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직장 내 부서를 옮김으로써 내가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어 이직 생각은 접었다.

새로운 부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일이어서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과 관련된 공부만 하다가 조금 적응된 후에는 직장 내 온라인 강의, 토익 학원을 다니면서 뭔가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뭘 원하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 같은 느낌만 들었다.

일을 그만둘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삼십 대가 넘어가면서 다른 시도를 한다는 게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슬럼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꾸역꾸역 다녔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조금은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곧바로 출산과 육아의 세계로 들어갔다.

동시에 긴 휴직이 시작됐다. 안 그래도 일을 쉬고 싶었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어릴 때 한때 꿈꿨던 현모양처가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육아 삼 년 차에 두 아들의 엄마로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되면서 깨달았다.

나는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걸. 말도 안 통하는 아이들과 있는 것보단 말이 통하는 직장 동료들이 그리웠다. 그래서 막연하게 휴직 기간이 끝나면 예전 직장에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러다 산후우울증과 나는 왜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겹치면서 힘든 시기가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가득 채우고 어둠의 기운을 내뿜고 다니던 시절.

그때 남편이 한 권의 책을 권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삶을 채우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서.

그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생각을 달리했다. 나와 거리가 멀던 긍정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정말 다르게 살아보자!"라고,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다짐을 한 시기가 4년 전쯤이었다.

생각에 그쳐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걸 알기에 뭐든 해보자 생각했다.

임용에 도전해 볼까 해서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을 봐서 1급에 합격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와 맞지 않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금세 알아서 교육학 공부까지는 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걸 먼저 해보자 다짐하고 그동안 읽기만 했던 책에 기록을 더하기로 마음먹었다.

공부도 해보고 싶어 온라인 대학에 가입해서 듣고 싶던 강의를 들었다.

그즈음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이전에는 SNS는 낭비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온라인 대학 과제 제출용으로 시작한 셈) 그곳에 과제와 도서 리뷰를 쌓기 시작했다.

용기 내서 온라인 대학 내 카페에도 가입하고 그곳에서 온라인 북클럽 모임도 참석하기 시작했다.

북클럽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나 내향인이고 말도 제대로 못 해서 나는 절대 못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정말 용기 내서 도전한 셈.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운명이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다 보니 내 일상 이야기도 남기고 싶어 글을 조금씩 쓰다가 브런치 작가가 됐다.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책과 강의를 읽고 나에 관해 기록하면서 조금씩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됐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이제야 조금 감이 잡히기 시작한 거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안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든다. 그 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해보고 있다.


비록 환한 빛이 비친 건 아니다. 아직 깜깜한데 그래도 희미한 빛 하나 의지해서 가보려고 한다.

예전에는 빨리 뭐든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있었는데 그걸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누구든 때가 있다는 말을 이제는 믿기로 했다. 비록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서 답답할 때는 있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내 모습에 조금은 가까이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건 안다. 아직 5년도 되지 않았는데 삐걱거릴 때가 많으니까.

아직도 이게 진정 내 길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조급함이 드는 거다.

그래도 지금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십 년 넘게 했던 전공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행동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4년간 쌓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을 테니까. 그것이 하나로 합쳐질 때가 언젠가 오지 않을까.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안진진이 스물다섯 살에 했던 다짐. 안진진은 그 다짐으로 결혼할 사람을 선택했다.

나는 이 다짐으로 내 인생의 방향을 선택했다.

살다 보면 또 이런 선택을 할 날이 올까? 그것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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