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누가 있는데, 내가 아니야."

책 속 한 문장

by 느린 발걸음

"내 머릿속에 누가 있는데, 내가 아니야." 핑크 플로이드의 말이다.

데이비드 이글먼의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에 나오는 문장.

처음엔 재밌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한번 읽어보니 소름 끼쳤다.

'어, 어떻게 알았지? 누가 나를 관찰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구나 싶어서.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조금 전에 말하고 행동한 사람이 정말 나인가? 싶은 의문이 들 때가.

나라는 건 분명히 안다. 그런데 진짜 나라고 할 수 있나? 지금까지 내가 알던 나와 너무 다른데?

당황스러움이 앞선다. 내면에 저런 내가 숨어 있었다고? 이 상황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다고?

나 스스로도 낯선 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겠는데 타인에게는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솔직히 그 말과 행동을 할 때는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정말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드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정신이 퍼뜩 든다.

내가 저런 말과 행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하다.


솔직히 내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나 나다. 내 모습을 하고 내 목소리로 이야기했으니까.

그럼에도 부인하고 싶다.

누군가가 내가 방심한 틈을 노려 내 영혼을 침투해 나를 골탕 먹이려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나를 형성하고 있던 단어들의 견고한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생각지도 않았던 단어가 조금씩 내 삶에 침투할 것 같은 두려움에.

그러면 나라고 믿었던 사람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 버릴까 봐.


8년 전쯤인가. 좀 전의 내가 정말 나인가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적이 있다.

둘째 아들이 생후 5개월쯤 되었을 때였나 보다. 태어날 때부터 목소리가 우렁찼던 둘째 아들.

울음소리에 정신이 나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울음소리를 참아가면서 첫째 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하지 못했던 잠자는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안아서 재웠어도 될 일인데. 당시엔 두 살 터울 나는 형제를 계속 안아줘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내 손목이 남아나질 않던 시기였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쉬고 싶어서 책도 보고 영상도 보면서 하나씩 적용해보고 있었다.)

쉽지 않았지만 겨우 겨우 패턴을 잡아서 추석 때 시댁에 갔다.


하지만 시댁에 가는 순간 그때까지 내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둘째 아들이 울기만 하면 시어머님께서 안아줘라, 모유 주라는 말을 계속하셨기 때문이다.

말도 못하는 갓난아기가 의사표현을 울음으로 하는 건 당연한데 소리가 크다 보니 힘드셨나 보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수유 텀도 어느 정도 잡아서 갔는데 울 때마다 모유를 주라고 하니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됐다. 애가 정말 배가 고파서 우는 것도 아닌데, 울 때마다 그런 소리를 하시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직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먼 강원도까지 간 것도 힘들었는데, 가서도 쉴 틈이 전혀 없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하루는 애들 봐줄 테니 잠깐이라도 나갔다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30분도 채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둘째 아들이 운다고.

분명 수유를 하고 왔기에 배고파서 우는 건 아닐 거다. 그런데 어찌할 줄 모르겠으니 전화를 한 거다.

도착하니 아이를 안아주고 싶어도 아기띠가 없어서 (정신없어서 챙겨가지 못했다) 안아줄 수가 없다며, 왜 그런 걸 잊어버리고 오냐면서 나를 질책하는 듯했다.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시어머니는 원래 나를 잘 챙겨주신다. 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 힘든 상황이었기에 시댁의 모든 게 짜증 난 상태였다. 나를 전혀 이해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상은 그게 아닐 텐데. 아마 3년간의 육아로 집에만 있다 보니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져 있었나 보다.)

남편이랑 내가 번갈아가면서 안고 둘째 아이를 진정시켰다.


일은 시댁에 간 지 이틀 정도 지난 저녁에 벌어졌다. 분명 조금 전에 모유수유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또 우는 거다. (그러고 보니 얘는 왜 이렇게 많이 울었을까?)

시어머니가 아이가 우니까 또 모유수유를 하라고 하셨다.

모유수유 소리를 듣는 순간 그동안 내 이성을 붙잡고 있던 끈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과 함께 방에 들어오긴 왔는데, 순간 너무 짜증 나서 남편에게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모유수유 조금 전에 했다고요! 애가 우는 건 당연한데, 왜 자꾸 모유수유만 하라고 해요! 오늘 하루 모유수유만 몇 번 한 줄 알아요? 뭐만 하면 모유수유, 이제 제발 그만 좀 해요. 나도 힘들다고요!"

아무런 죄도 없는 남편에게 퍼부었다. 시어머니께 직접 얘기할 수 없으니 남편에게 소리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내가 예고도 없이 튀어나왔다.

진짜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지금껏 이성으로 꾹꾹 눌러왔던 악마가 이성의 끈을 놓는 순간 재빠르게 튀어나와 버린 듯했다.

거실에서 떠들썩하던 소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보인 적 없었으니 놀랐을 거다.

남편도 놀란 듯했고, 시댁에서 큰 소리를 내며 화를 낸 나 자신이 제일 놀랐다.

남편은 본인이 아이를 볼 테니 거실로 나가라고 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소리를 질렀는데, 시댁식구들이 모두 모여있는 조용한 거실로 가라니.

순간 퍼뜩 정신이 들어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남편더러 나가라고 했다. 내가 어떻게 얼굴을 보겠냐면서.

둘째 아들을 재우고 시댁 식구들이 모두 잠든 그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갔다.

나는 왜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그런 말을 했을까 한심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막막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래를 들으면서 밤하늘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다음 날, 시댁 식구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대했다. 그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집에 와서 시어머니께 전화해서 죄송했다고 말했다.

어머님은 오죽하면 그랬겠냐며 마음 쓰지 말라고 하셨다.

남편에게 들은 말인데, 막내 도련님은 내가 산후우울증 같으니 잘하라고 했단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니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왜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흑역사를 스스로 생성해 버렸는지.


이런 일이 그날 한 번은 아니다. 아주 가끔 내 이성이 탈주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저질러 놓고 퍼뜩 정신이 든다.

속으론 '내가 미쳤나, 왜 그런 소리를 한 거야.' 싶은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서 멍한 상태다.

내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내 모습에 따지지 않고 모른 체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얘기해 보면 얼마나 힘들면 그랬겠냐 싶은 마음이 들었단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아서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배웠다.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자고.

내가 경험해 본 결과 평소 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자아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새로운 이야기.

뇌는 '라이벌들로 이루어진 한 팀'이란 말. 보는 순간 뇌가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책에 의하면 뇌는 서로 분야가 겹치는 여러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단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의견을 제시하며 경쟁한다고 한다. 내 머릿속에서 어떤 게 나은지 서로 경쟁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유치하고 어리석은 영역을 담당하는 전문가도 있다는 걸까?

평소엔 존재를 숨기고 있다가, 어느 순간 모든 전문가들을 제치고 이번엔 내가 나서야 한다며 밀치고 나오는 걸까?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얻는 건 도대체 뭐길래?

나도 여기 있다는, 나를 무시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일까?

아마 사람마다 본인의 뇌에 있는 전문가의 종류는 다르지 않을까?

내 머릿속에 좋은 영역의 전문가들이 많으면 아무리 화가 나도 나중에 후회할 일을 덜하지 않을까.


저자는 질문했다.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인간은 의식하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다반사라면?

내면 시스템들이 벌이는 싸움의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날 뿐이라면?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라는 사람에 대해 혼란스러워졌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좋은 것들을 의식적으로 행해서 무의식으로 자동화하고,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질문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어렵다.

책을 읽으면 다짐하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버리고 예전의 내가 튀어나오니까 말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행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나 보다.


"내 머릿속에 누가 있는데, 내가 아니야."

이 말을 좋은 의미로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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