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독감에 걸려요.
나는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이었다.
자주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한 번 걸리면 증상이 일주일에서 심하면 한 달 넘게 지속됐다.
남들이 보기엔 감기에 자주 걸린다고 착각할 정도로.
어렸을 땐 약을 따로 챙겨 먹지 않았다. 면역력으로 충분히 이겨내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약을 먹지 않으면 일에도 지장이 가고 무엇보다 몸이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약국에서 약을 사서 먹었다. 그래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병원에 갔다.
심할 때는 병원에서 수액도 맞고 약 처방도 받았지만, 꽤 오래 끙끙 앓았다.
아마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여서 푹 쉬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으니 빨리 낫지 않았나 보다.
남편과 연애할 때 추위도 잘 타고 감기로 콜록거리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약하다고 놀렸다.
자기는 감기 따위는 절대 걸리지 않는 강철 체력이라고 하면서.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진짜 남편은 아프다고 얘기한 적이 없었으니까.
술도 꽤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사람인데, 타고나길 체력이 좋은 것 같았다.
몸에 근육량도 많았다. 그에 비해 나는 근육량이 현저히 적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거였나.
결혼하고 뱃속에 첫째가 있을 때였다. 추운 날씨였는데, 12월 말에서 1월 초였던 걸로 기억한다.
감기가 살짝 왔었던 것 같은데, 그때 임신 휴직 중이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감기에 한번 걸리면 엄청 오래가더니, 휴직하니 골골대는 기간이 짧아졌다.
입덧으로 잘 먹지도 못할 때였는데,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다 보니 조금은 튼튼해졌나 보다.
임신해서 약도 함부로 먹지 못해서 걱정했는데, 며칠만 따뜻하게 지내니 괜찮아져서 다행이었다.
그런 나에 비해 남편이 기침을 하면서 몸살 증상을 보였다.
나는 약을 먹던지 병원에 가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는데, 뭐 이런 걸로 병원에 가냐고 했다.
조금 자면 나을 거라고 하면서. 그렇게 이틀 정도를 버텼나 보다.
그런데 증상이 전혀 호전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얘기했단다. 엄청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견뎠냐고. A형 독감이라고 했다.
남편이 그 얘기를 하는데 (전화통화로 했다. 바로 격리를 해야 했기에. 내가 임신 중이어서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오빠, 오빠는 감기 따위 걸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감기는 안 걸리고 더 심한 독감에 걸렸네요."
"그러게요. 그래도 감기에는 안 걸렸잖아요."
뭐, 이런... 그날부터 격리 해제되는 5일 동안 남편과 방을 따로 썼다.
입덧으로 음식 냄새도 잘 못 맡는데, 남편은 밖으로 나오질 못하니 따로 밥상을 차려줬다. 간단하게.
임신해서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벅찬데, 어찌 이럴 때 독감에 걸리는지.
감기 따윈 자기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할 것처럼 하더니 더 큰 독감이란 녀석을 데려올 줄이야.
이걸 계기로 남편도 깨닫는 게 있을 테지. 건강은 자만하면 안 된다는 걸.
뱃속에 있던 첫째 아들이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그 사이 둘째도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그 사이 나는 독감에 한 번 걸렸다.
내 시간이라고는 전혀 없는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졌던 거다.
그 외에는 감기 몇 번 앓았다. 이젠 증상이 시작될 즈음 알아차리고 먼저 차비를 한다.
보통 목의 통증으로 감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목이 따끔거린다 싶으면 꿀물을 마시고 목수건을 한다.
그러면 가볍게 지나가기도 하고, 조금 심할 때는 병원에 가서 약 처방을 받으면 며칠 내에 괜찮아진다.
직장에 다닐 때는 그렇게 안 낫던 감기가 이제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끔 놀랍다.
그만큼 제대로 쉬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심했던 건가 싶다. 당시엔 잘 못 느꼈는데.
집단 속에 있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던 게 밖으로 나오니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남편은 그때 독감에 걸린 이후로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
다만 감기는 잠깐씩 걸렸는데 보통 약까지 먹지 않고 나았다.
예전보다 체력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튼튼한가 보다 생각했다.
올해 11월 초부터 독감이 유행이라는 말이 들렸다.
조심해야지 생각하고 있던 차에 둘째 아들이 독감에 걸렸다.
전날 저녁부터 기침을 하더니 다음날 아침에 열이 조금 오르고, 몸이 힘들다고 해서 바로 병원에 갔다.
A형 독감이었다. 완전 초기에 가서 이튿날 해열제를 추가로 두 번 정도 복용한 것 외에는 잘 넘어갔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만 격리할 수는 없어서 내가 조금 떨어져서 함께 잤다.
집에 같이 있을 때는 마스크를 쓰고 밥은 따로 먹었다.
첫째 아들은 마스크를 낀 채 둘째와 함께 놀았다.
그러다 첫째도 증상이 감기인지 독감인지 헷갈릴 지경이 됐다.
열이 확 오르지는 않는데 기침하고 목이 아프다고 했다. 병원을 두 번 갔는데 다행히 독감이 아니었다.
목감기로 열이 간간히 오르는 거였다. 감기약 먹으면서 조금씩 호전됐다.
나는 다행히 아무 증상이 없었다. 첫날 몸살기가 좀 있나 싶었는데 열은 나지 않았다.
남편은 둘째 아들과 오래 있지 않았다. 출근을 하다 보니 짧은 시간 함께 있던 게 다였다.
그런데 다음날 밤부터 남편이 독감 증상이 나타난다고 얘기했다.
어차피 혼자 자서 해열제 먹으라고 하고 다음날 병원에 가라고 했다.
독감이란다. 타미플루 처방받고 몸살도 심해서 엉덩이 주사도 한 대 맞고 왔다고 했다.
그날부터 격리 해제될 동안 밥을 따로 차려서 남편에게 갖다 줬다.
이렇게 따로 챙겨주고 있으니 신혼 때 임신해서 내가 남편 밥을 따로 챙겨줬던 기억이 났다.
우리 남편, 감기 따윈 안 걸린다고 하더니, 이번에도 감기 대신 독감에 걸렸다.
남편에게 그렇게 얘기했더니, 맞단다.
자기는 감기 따윈 걸리지 않지 않았냐고. 다만 더 독한 독감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다니.
남편이 왜 독감에 걸렸나 생각해 보니 면역력이 한참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
일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독감 걸리기 이틀 전 임플란트를 해야 해서 치아 2개를 발치해서 힘들어했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여서 바로 걸렸던 것 같다.
내가 세 남자를 보면서 (독감 걸린 남편과 둘째 아들, 목감기 걸린 첫째 아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에휴, 약한 남자들. 면역력을 좀 키워요!!"
내년엔 독감 예방 접종도 미리미리 하고, 체력을 좀 키워야겠다.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별 힘을 쓰지 못하고 도망가게.
나는 최근 헬스를 하면서 그나마 체력이 올라왔었나 보다.
둘째 아들 옆에 있다가 코로나19도 옮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번엔 잘 넘어갔다.
내가 독감에 걸리면 남편 말대로 집안이 마비가 될 테니까.
아파도 안 되는 게 엄마라니. 좀 서글프지만 그래도 건강한 게 제일 좋은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