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 문장
"어른이면 뭐, 어른들도 실수하고 멍청한 짓도 하고 막막하고 그런 거야."
김금희 작가의 『첫 여름, 완주』에서 어른인 손열매가 중학생인 양미에게 하는 말이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맞아, 맞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열매야말로 어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족한 걸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 아닐까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니, 보통 어른이라고 하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다.
[어른] 명사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보통 1번의 의미로 쓰는 단어가 '어른'일 거다.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건 알겠는데, 다 자랐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
내가 생각하는 건 신체적으로는 다 자랐으나, 정신적인 성장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부족하다는 걸 인지하고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어른이 아닐까.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내가 양미처럼 어렸을 때 바라봤던 '어른'은 어땠을까.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라는 책임도 있겠지만 자유를 훨씬 많이 누리기에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는 나이.
사춘기를 포함한 젊은 시절의 혼란스러움은 뒤로 하고 조금은 단단해지는 나이.
많이 배우고 경험한 만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도 넓어지는 나이.
양미처럼 어른이라면 실수하지 않고, 멍청하지도 않고, 막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음, 그런데 솔직히 주변 어른만 봐도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았을 텐데.
아마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어른'의 이미지를 덧씌웠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겁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마냥 어리게 있고 싶었는지도.
어쩌면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했다.
음, 그런데 내가 만나본 어른들은 내가 생각했던 이지미와는 먼 경우가 많았다.
간혹 넓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어른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어른은 만나기 쉽지 않았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교사들의 체벌이 문제가 되지 않을 때여서 감정적으로 학생들을 대하고 체벌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자신의 기분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투사했으며, 남탓하는 어른도 있었다.
나이 많음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행동했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인지 의문스러운 어른도 있었다.
그때 나는 많은 실망을 했던 것 같다. 어른이라면 저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살아온 시간이 있는 만큼 조금은 성숙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인 내가 나를 봤을 때, 나는 어떤 어른일까.
안타깝게도 나는 손열매 말처럼 실수하고, 멍청한 짓도 하고, 막막할 때가 많은 어른이다.
예전엔 어른이라면 저러면 안 되지 않냐고 생각했던 모습을 내가 하고 있는 거다.
혼란스러웠다.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성숙한 사람이 되리라 기대했는데.
아마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이만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현명, 지혜, 성숙 같은 단어가 따라오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정말 끊임없이 노력해야 겨우 얻어지는 거였는데.
그래서 어른다운 어른을 찾기 어려운 게 아니었을까.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예전에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들키기 싫었다. 완벽해 보이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이제는 잘 아는데, 예전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안전한 길로만 가려고 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볼 용기를 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쌓아온 게 별로 없었음에도 그게 무너지는 게 싫었던 거다.
그 벽이 얼마나 부실하고 얇은지 깨닫지 못하고서 말이다.
나는 지금도 어느 정도의 벽은 세우고 있다. 다만 예전보다는 틈을 많이 둔다.
그 틈으로 다른 생각들이 들어올 수 있게.
세상을 보는 폭도 좁았다. 내 주변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더 넓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 좁은 관계 내에서도 만족하면서 지냈으니까.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일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의 폭도 좁았으니까.
그런 내가 조금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 시점은 결혼하고 두 아들을 출산한 이후다.
결혼, 출산과 동시에 많은 이름이 덧붙었다. 그 이름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저절로 얻은 이름이지만,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건 쉽지 않았다.
나도 미성숙한 사람인데, 아이들을 양육해야 한다니.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갈수록 겁이 났다.
나의 못난 모습을 아이들이 그대로 닮을까 봐. 감정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어느 날 내 모습을 보는데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과는 너무 멀어져 있었다.
예전에 느꼈던 못난 어른의 모습이 내게 보였던 거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이런 내 모습은 어른이라는 단어에 한참 모자라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이라는 이름을 얻으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려웠다.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준 적 없었기에. 다행히 옆에 괜찮은 어른의 본보기가 될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남편. 남편도 실수도 하고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어른처럼 보였다.
그래, 나는 먼저 감정을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버럭이' (남편 한정이긴 했지만)라는 별명에 서서히 작별을 고하고 싶었다.
남편의 모습을 보고, 책을 읽고 영상을 보면서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쉽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이젠 잠깐 멈출 줄 안다. 감정에 완전히 휩쓸리지는 않는다.
뭐, 가끔 두 아들을 보면 속에서 뭔가가 올라와서 그걸 참지 못하고 내뱉을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믿는다. 남편도 그렇게 얘기하니까.
인간관계도 조금 넓어졌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마주하게 되는 관계들이 있었다.
남편과 결혼하고 나서 시댁 식구들, 남편 지인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알게 된 학부모들.
많은 관계를 맺는 건 힘들어해서 소수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전보다는 넓어졌다.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육아의 세계를 알게 되고 경험을 하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도 조금은 넓어졌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하나하나 배운다.
내가 지금까지 스쳐 지나갔던 것들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다시 한번 보는 거다.
그러면 여기에 이런 것들이 있었구나 감탄하면서 바라보게 된다. 특히 자연, 동물.
예전엔 어떤 나무, 어떤 꽃, 어떤 동물들이 주변에 있는지 몰랐는데, 아이들과 함께 다니면서 하나씩 알게 됐다. 계절마다 기다리는 꽃이 있게 됐고, 그냥 지나쳤던 지렁이, 매미, 사마귀, 여치 등도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자연의 신비함을 알게 됐다. 이 사소한 관심 하나가 자연에 대한 궁금증을 이어져 책도 읽게 되고.
그게 하나씩 쌓이면서 시야가 조금씩 트이는 기분이다.
결혼, 육아도 내 삶의 폭을 넓혀줬지만, 내가 선택해서 조금씩 넓어진 것도 있다.
책 읽고 리뷰 쓰기, 강의 듣기, 북클럽 가입하기, 글쓰기. 이건 내가 나를 알고 싶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들.
북클럽은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성적이고 나서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그러다 뭐에 홀린 듯 온라인 북클럽에 가입하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들이 꽤 있다. 사람마다 성격, 상황 등이 다 다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된다는 것.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다는 건 신기했다.
사람마다 지금까지 겪은 경험이 다 다르고, 현재 관심 있는 주제가 다르기에 같은 책 안에서도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 거였다. 학창 시절 배웠던 공통적으로 교과서에 밑줄 긋는 게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느슨한 인간관계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예전에는 소수의 친한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제일 중요한 건 나였다. 내가 힘들면 조금 쉬고 거리를 두면 됐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괴로워했다면, 이젠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바뀌는 것도 쉽지 않은데 타인을 바꾸는 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왜 저런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지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냥 더 나가지 않기로 했다.
생각을 해봤자 서로 고통스럽고 힘들어질 게 뻔하니까.
이런 걸 하나하나 배우고 있다. 책을 통해 간접경험하고, 내가 글을 써보면서 글 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됐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말로만 이러쿵저러쿵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멀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도 많고, 내 관점에서만 생각할 때가 많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그걸 인정해 주자 다짐하면서도, 가끔 답답하다.
이런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괜찮은데, 나도 모르게 표정과 말투에 고스란히 아직은 드러난다.
그래서 아직은 제대로 된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이래서야 내가 죽기 전에 진정 어른다운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날이 올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열매의 저 말이 와닿았다. 어른이라고 완벽하진 않다는 말. 어른도 서투르다는 말.
하지만 그걸 하나씩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내가 부족한 게 뭔지 안다. 다행이지.
두 아들에게도 어른도 모르는 게 많다고 했다. 그래서 평생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고.
같이 배우자고 말이다. 지금 이 마음을 평생 간직하면서 나이 들고 싶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라는 단어에 조금은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