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 문장
"아, 맞아! 나는 완벽하고 한계가 없는 갈매기야!"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조나단 리빙스턴이 하는 말이다.
저 문장을 읽는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완벽하고 한계가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기에.
늘 가졌던 생각은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 부족함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서는 전전긍긍했지만 그런 모습을 타인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왜 나는 나의 본모습을 그렇게 숨기고 싶었을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해 주고 봐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다.
어설픈 완벽주의. 그래서 생각만 하느라 허비했던 시간이 길었다.
조나단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나'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경험을 해봤기에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예전에 내 머릿속 갈매기는 바닷가나 강가 근처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존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는 존재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강이나 바닷가에서 사람들 주위를 맴돌며 과자를 받아먹는 모습을 보며 재밌기도 했지만, 저게 갈매기의 본성은 아닐 텐데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직접 먹이를 찾아 먹는 수고스러움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아마 대다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직접 하는 것보단 주어지는 것을 받아먹는 게 훨씬 편하니까.
그래서 조나단 같은 존재가 더 눈에 띄는 것일까.
모든 걸 이분법적으로 나눌 순 없겠지만, (원래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굳이 나눠보자면...
먹이를 먹기 위한 목적으로만 날개를 사용하는 갈매기 vs 날개가 왜 있는지 고민하고, 날기 위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려 배우고 성장하려는 조나단.
우르르 모여 다니며 나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무리 속에 존재하는 갈매기 vs 편한 길을 버리고 추방당하면서까지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선택하며 나 자신을 찾는 조나단.
나는 어떻게 살았지? 아마 다수의 갈매기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다수에 속해 있으면서 튀지 않고 평범하게, 내게 주어진 역할만 잘 하자 다짐하면서.
그렇게 오래 살아왔던 삶에 나는 만족했던가?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방황도 하고 번아웃도 자주 경험하고 그랬겠지.
진정한 나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피상적인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했기 때문에.
조나단의 경우처럼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가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모두에게 그런 순간이 한 번쯤은 오는데 대다수는 그냥 흘려보내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럴까? 그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때문 아닐까?
내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거듭되는 실패는 더욱 좌절하게 만들 테니까.
조나단도 그랬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자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심한다.
의심이 드는 순간 지금까지 왔던 길을 내버려 둔 채 다른 갈매기와 똑같이 되려고 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어렸을 땐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꿈에 부풀었다가 좌절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그냥 살아가자, 생각하는 것 같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별 고민하지 않고, 편한 방법을 찾으면서.
그렇게 대중 속에 휩싸여 내 체취를 지운 채 살아가다 어느 순간 이 길이 맞나? 다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것도 기존에 어느 정도 고민을 해왔던 사람에게 찾아오지 않을까 싶긴 한데.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는데, 미루고 미루기만 했던,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하면 '아!'라는 깨달음과 함께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어느 정도 떠오르는 것.
"이제는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나단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방향을 조금 틈으로써 조금씩 성장하는 거다.
하루하루 성장하면서 한동안 한계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발전하는 내가 보일 거다.
무언가에 취한 사람처럼 자기 계발을 하는데, 어느 순간 이게 끝인가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더 이상 해도 진전이 없을 것 같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나를 위로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려는 내가 있다.
이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제자리에 머물 수도 있고, 한 단계 점프업을 할 수도 있다.
고통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상태를 견뎌서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순간이 다가오면서 고민하게 된다. 그만둘까 vs 더 나아갈까.
그만두면 더 이상의 성장은 멈춘다. 그 시점의 관점과 시야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뭐라도 해봤고, 노력한 흔적은 분명 남아 있으니까.
이게 한계라고 규정짓고 안주하려 할 때, 내 한계를 깨부수며 한 단계 위로 성장시켜 주는 존재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멘토, 스승이라 불리는 그들. 어느 정도 준비가 갖춰진 이들에게만 생기는 기회 같은 것.
어떤 의미에서 보면 행운인 셈인데 그걸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느냐는 개인의 관찰력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제대로 봐야 한다고 얘기하나 보다.
멘토, 스승이 꼭 유명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어린아이에게서도 배울 게 있으니까.
나도 두 아들을 통해 배우는 것이 꽤 있다. 내가 이전에 보지 못한 것들을 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이전에는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자연 앞에서 멈춘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이제야 제대로 바라본다. 땅을 자세히 바라보지 않았는데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함께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관심을 가지고 찾아봄으로써 앎도 풍부해진다.
조나단은 스승, 멘토를 만나면서 그 상태에서 만족하지 않고 한 번 더 도전해 보기로 한다.
삶은 도전하는 자에게 더 많은 길을 보여주니까.
어느덧 많은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 조나단.
마음으로, 영적으로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조나단이 하는 말,
"아, 맞아! 나는 완벽하고 한계가 없는 갈매기야!"
그런데 나는 아직 이게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 제대로 모르겠다.
나를 믿고 긍정적인 확언을 하면 점차 그렇게 된다는데, 아직 그 단계에 이르기 위한 준비가 덜 된 건지.
처음엔 믿다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내가 보인다.
이게 진짜일까? 의심한다. 무턱대고 믿지 못하는 거다. 한때는 믿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젠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믿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에 따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력 없이 얻은 결과는 언제든 부서져 버려 남아있지 않으니까.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태가 될 테니까.
내 힘으로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야만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않을까.
한때 로또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헛된 기대를 품었는데, 지금은 내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닌 것에 내가 만족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뭐, 지금도 아주 가끔 로또 당첨의 꿈을 꾸니까 아직은 무임승차 같은 행운을 바라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조나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어느 정도는 맞겠지만, 결이 좀 다른 것 같다.
조나단처럼 무리에서 추방되고 고독하게 홀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너무 외로울 것 같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건 힘들지만 소수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조나단은 위대한 갈매기의 아들로 불리고 신격화된다. 조나단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저런 모습은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때는 유명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서 간접 체험하고 있으니까.
조나단의 모습에서 배울 점만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일단 지금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바쁘다고, 시간이 없다고 미뤄뒀던 나와의 대화를 해야 한다. 거창할 필요도, 시간을 많이 할애할 필요도 없다. 아주 조용한 시간, 10분이라도 오롯이 나만 생각하고 바라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예전에는 튀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중 속에 나를 숨기는 게 편했다.
튀지 않고 평범하게, 그냥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면 만족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왜 그런지 들여다봤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보다는 나를 먼저 갈고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주어지는 인생을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 그런데 나답게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내 존재 의미를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내가 스스로 정하는 거겠지. 남들이 정해준 길이 아니라, 편해 보이는 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길이 아니라, 두렵고 어설퍼도 내가 직접 헤쳐 나가야만 하는 길.
하나씩 직접 해보는 시간을 거쳐야 내게 남는 게 있겠지. 내 삶에 굳은살도 박일 거고.
그런 경험들이 하나 둘 쌓이면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윤곽이 보이지 않을까.
그런 길을 가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현실도 그렇지만 내 마음이 가장 큰 문제다.
어느 때는 가슴이 한껏 부풀어있다가 한순간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꺼져 버린다.
한번 꺼져 버린 마음을 다시 부풀리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이제는 잠시 멈춘다.
쉼을 통해 마음을 조금 회복하면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 "아, 맞아! 나는 완벽하고 한계가 없는 사람이야!"라는 믿음이 생길까?
꼭 저 지점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내가 만족하면 될 테니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저 지점에 도착하면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싶어서.
일단 나만의 길을 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더 가봐야 한다.
아직 흔들리고 주저앉을 때도 많으니까.
일단 더 가보자. 어떤 모습의 내가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