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발걸음 May 05. 2023

용기 한 스푼



앞으로 나아가야지 앞으로 나아가야지 머릿속으로 되뇐다.

생각만으로 나는 저만큼 앞서 걸어가고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왔겠지? 싶어 뒤를 돌아본다.

어? 이상하다? 나 조금은 앞으로 간 것 같은데 왜 똑같은 곳이지?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거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종종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네.

똑같은 곳을 맴돌면서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구나.


삶을 살다 보면 제자리걸음이라 느끼는 때가 꽤 있다.

분명 나는 움직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생각만 해서 그렇구나! 나중에야 깨닫는다.

이런저런 다양한 생각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내 머릿속은 용기 한 스푼이 들어갈 틈을 찾기 쉽지 않다.

여기저기 부풀려진 생각들이 뜬구름처럼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을 뿐...

이런 상태로는 머릿속이 희뿌옇게 변해버릴 것만 같다.

아... 이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용기 한 스푼이 들어갈 아주 조그마한 틈이라도 만들어줘야겠다!

아주 조그마한 양일지라도 용기는 내가 진짜 달라질 수 있게 만들어 줄 것만 같으니까.


뭐, 용기 한 스푼으로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아주 아주 작은 파문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용기라는 것이 가져온 그 자그마한 물결의 흐름을 한번 따라가 볼까 다짐하는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

용기라는 녀석의 침입을 알아차린 뜬구름들의 공격에 잠시 물결이 사라져 보일 수도 있다.

'귀찮아! 하기 싫어! 두려워! 무섭다고!' 이런 내면의 목소리들 또한 언제든 방해할 태세를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괜찮아! 한번 해봐! 도전해 보는 거야!'라는 위로의 목소리들도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용기라는 녀석을 한 스푼 집어넣어 보고 싶다.

뭐든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나.

한 스푼의 용기를 집어넣어도 제자리걸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스푼의 파문이 점점 전해져서 쌓이고 모이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삶을 살다 용기가 어딘가로 숨어버릴 수도 있다. 아무리 찾아서 꺼내려해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용기에게 잠깐의 시간을 줘도 되지 않을까. 숨 고르기 할 시간 말이다.

잠깐 멈춰서 바라볼 때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한번 점검하고 다시 기운을 내서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용기를 찾아내는 거다.

한번 찾았으면 다음부턴 조금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기 딴에는 꼭꼭 숨었다고 자부하는 용기에게 '난 이제 네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어. 나와 함께 다시 나가지 않을래?' 말을 전한다.

그러면 용기가 '그래, 지난번에도 했는데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거야. 난 혼자가 아니니까!' 이야기하며 살며시 고개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나에게 용기 한 스푼을 선물로 줘본다.

그것으로 어떤 파문이 일지 같이 지켜보자고 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나와 유머의 상관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