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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May 06. 2023

나는 주말마다 도시락을 싼다


나는 주말마다 도시락을 싼다. 

음... 1년 반 정도 되어가는 것 같다. 이 도시락은 나를 위한 것은 아니다.

매일 하루 세끼를 고민해야 하는 입장에서 나를 위한 도시락을 쌀 기력까지는 없다.

누가 싸 준다면 감사히 먹겠지만... ㅎㅎ


도시락의 주인공은 남편으로, 남편에 대한 안쓰러운 감정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면서부터 주말 도시락 싸기가  시작되었다.

작은 학원의 원장이자 국어 선생님이기도 한 남편은 과목 특성상 주말에 수업을 한다. 결혼 초에는 수업을 하지 않고 운영만 했다가 학원이 어려움을 겪은 후 직접 수업을 한다. (본인은 운영도 재미있지만 수업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고 이야기한다.) 본인 학원에서 뿐 아니라 다른 학원을 돌아다니면서 수업하는데, 보통 주말 오전 8:30~9:30쯤 집에서 나가 밤 10~11시 정도에 돌아온다. 

일에 빠지면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는 타입이라 가끔 전화해서 밥 먹고 일하라고 알려줘야 한다. 주말에는 바쁜 것을 아니까 되도록 연락을 하지 않는데, 주말 밤마다 남편이 집에 와서 배고프다며 야식을 많이 먹는 거다. 말을 많이 하면 원래 배고파서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날 밥은 뭘 먹었는지 물어봤더니 안 먹었다는 거다.

엥? 아침만 집에서 먹고 갔는데, 그럼 점심, 저녁 모두 굶고 일했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아니 왜 밥도 안 먹고 일해요? 밥을 먹어야 기운도 나죠." 

"밥 먹을 시간이 없어요. 이 학원 저 학원 이동하느라 시간 걸려서 식당 갈 틈이 안 나요."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짠했다. 지금은 간헐적 단식을 하며 배고픔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 나지만, 반년 전까지 난 배고픔을 참지 못했다. 너무 배고프면 극도로 예민해져서 별것 아닌 일에도 짜증을 내곤 했던 나이기에 남편도 힘들겠다고 느꼈다. 사실 남편은 배가 고파도 감정의 변화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안 되겠어요! 내가 주말마다 도시락 싸 줄 테니까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먹어요!" 

음... 그런데 도시락으로 뭘 싸줘야 하지? 보통 차에서 먹어야 하니 간편한 것을 준비해야 했다.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 레퍼토리가 한정되어 있다. 아주 가끔 볶음밥을 하고 나머지는 주먹밥, 초밥, 김밥으로 했다. 한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팠으나 결혼 6년 차 정도에 난 요리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되지 않는 것에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결혼 초반 가끔 남편 학원 선생님들과 나눠 먹으라고 김밥을 몇 번 싸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아주 가끔이었으니 괜찮았는데... 솔직히 이건 주말마다 해야 하니 조금씩 벅찰 때도 있다. 나도 컨디션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컨디션이 정말 별로일 때는 가끔 싸주지 못한다. 그러면 남편은 식당에서 간단한 것이라도 사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대부분 먹지 않고 집에 오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종류를 달리했던 도시락의 메뉴가 하나로 통일되어 갔다. 몇 달간 계속 유부초밥만... 몇 달간은 계속 주먹밥만... 그러다 한 번은 남편이 주먹밥을 남겨왔다!

이런... 너무 한 메뉴만 계속 싸줬나? 남편은 일하다 보면 입이 꺼끌 해서 잘 안 들어가서 그랬다고는 하는데... 음... 김밥을 싸줄까 물었더니 힘든데 괜찮겠냐고 물어본다. 자기는 주먹밥도 괜찮다고... 가만 생각해본다. 나도 똑같은 메뉴 먹는 것 싫어하는데 남편도 그렇겠지. 내가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되니까 김밥을 메뉴로 정한 지 3주 차다.  

밥하고, 재료 준비하고, 김밥 싸고, 썰어서 도시락통에 넣기까지 1시간 정도가 걸린다. 남편 도시락으로만 김밥을 6~7줄 정도 싸고, 남편 아침, 아이들과 내가 먹을 것까지 싸면 총 12줄 정도 싸는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꼼짝없이 김밥을 싸고 있으면 나중에 허리가 무지하게 아파온다. 

그런데, 아침으로 김밥을 먹으면서 남편은 엄지 척을 날려준다.

"집에서 싼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 난 이제 파는 김밥은 못 먹을 것 같아요." 너스레도 떨어준다.

"나는 파는 김밥 먹을 수 있어요. ㅎㅎ" 말은 하지만, 가슴속엔 몽글몽글 기쁨이 퍼져 나온다.

아... 그래... 남편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보기 좋아서 나는 계속하는 거구나 느낀다. 


매번 주말 아침 고민하긴 한다. 오늘은 좀 간단한 것으로 쌀까? 나도 힘든데 오늘은 좀 사 먹으라고 할까?

그런데 남편의 잘 먹는 모습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도시락 쌀 준비를 하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텀블러에 냉커피까지 챙겨서 오늘도 도시락을 싸줬다.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동안엔 즐겁게 해야겠다. 

매번 항상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해 주는 남편을 위해서... 


오늘 남편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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