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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May 09. 2023

나만의 도서 리뷰 : 불편한 편의점

 

‘편의점 : 고객의 편의를 위하여 24시간 문을 여는 잡화점’

편의점의 사전적 정의와는 거리가 먼 제목인 불편한 편의점, 누구에게 어떻게 불편한 것일까?     


김호연 작가의 장편소설인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은 만나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잔잔하면서도 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의점이기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공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 있겠구나 알았다. 물건이 필요해서 찾게 된 편의점에서 따스함을 느끼고 내 삶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잊지 못할 장소가 되지 않을까?   

  

책이 내게 조금 더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편의점의 배경이 청파동이어서 그런 것 같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곳이 청파동이다. 처음엔 혼자였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둘이 되고, 첫째 아들 5개월까지 산 곳이다. 나에게는 혼자였다 셋이 되어 나온 곳으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ALWAYS 편의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공무원 준비생인 편의점 오후 아르바이트생인 시현, 편의점 오전 아르바이트생으로 아들과 갈등 중인 오선숙 여사, 40대 쌍둥이 딸의 아버지이자 의료기기 영업직으로 본인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에 헛헛함을 느껴 참참참을 먹는 경만, 배우에서 극작가로 전향했지만 번듯한 작품 하나 내놓지 못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청파동에 온 인경, 염영숙 여사의 아들로 하는 사업마다 망하고 이혼 후 염 여사의 편의점을 팔아 사업을 재기하려는 민식, 전직 경찰이었다 흥신소를 하며 민식의 부탁으로 독고 씨를 미행하는 곽 씨 등. 어쩜 인물마다 어! 저 사람과 비슷한 사람 알고 있는 데라는 생각이 드는지.     

 

본인의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들의 쓸쓸함에 독고 씨가 건네는 작은 관심이 그들의 삶에 조금씩 변화를 일으킨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면서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독고 씨의 모습에 그들이 처음 가졌던 그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옅어지고, 그들 나름대로 본인의 삶을 위해 조금씩 노력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독고 씨는 독고 씨대로 본인의 과거를 기억해 낸다.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대구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이 문장이 마음속에서 깊은 울림을 줬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이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목표로 정해서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가고 있는 이 길 자체가,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매 순간 진심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특히 뒤 문장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을 텐데 그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한 번의 말, 행동을 보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인 양 치부했던 일들이 참 부끄러웠다. 독고 씨 같은 노숙자들에 대해서는 열심히 살 기회가 있을 텐데도 그것을 거부하면서 사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멋대로 생각하지 않았던가. 아직 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지 못하는구나 깨달았다. 나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처럼 나도 그럴 텐데 왜 그렇게 함부로 단정 지었던 것일까. 타인의 친절과 관심에 기분 좋았던 경험이 있기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결국 가까운 사람들과의 진심 어린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돈, 명예, 성공 등도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할 수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 

예전엔 사람과의 관계가 뭐 그리 중요할까 생각하며 우선시하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삶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결국 가까운 사람들의 위로와 관심이었는데 그 당시엔 잘 몰랐던 거다. 최근 많이 깨닫고 있는데,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마음이 힘들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닥토닥해 주는 사람 덕분에 기운을 내고 조금은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많이 주저앉았을 때 누군가의 위로 한마디에 내가 왜 이러지 싶을 만큼 눈물이 펑펑 쏟아진 적이 있다. 그 사람의 관심 덕분에 사람의 정을 느끼면서 마음을 조금은 추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염 여사님의 친절이 독고 씨에게 전해지고, 독고 씨의 느리지만 따스한 배려가 독고 씨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비효과같이 퍼지지 않았을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조금은 변화된 모습으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희망은 있으니까.     


성공하고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동기부여가 되고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는 반면, 나는 왜 이럴까 비교하면서 기분이 축 처질 때가 있다. 흔한 소재에 주변에서 봤을 법한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위로받는 이유는 우리의 삶도 그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아닐까?     


기술이 발전하면서 무인 가게, 셀프 주문, 셀프 계산 등 기계가 사람을 많이 대체하고 있다. 편하고 인건비가 절약되는 반면 사람다운 따스함은 사라지는 것 같아서 한편으론 아쉬움도 있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사람의 따스한 정이 그리워서 이 책을 읽고 마음속이 찡해지는 울림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술술 읽히면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소설 한 권으로 약간은 쌀쌀해진 가을을 마음만은 따스하게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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