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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May 11. 2023

나는 왜 어지럽혀진 집을 보면 힘들까?



두 아들(초등학교 1학년, 유치원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안을 한번 휙 둘러봐요.

음... 오늘은 그나마 괜찮은데? 하루 지나면, 아... 언제 또 이렇게 물건들의 세상이 되어버렸지?

매일매일 물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리는 집은 말끔히 정리되어 있을 때가 별로 없어요.

아이들 있는 집에서 정리되고 깔끔한 집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대청소해도 하루, 아니 몇 시간만 지나면 조금씩 야금야금 어지럽혀져 있어요.

원래 그 자리인 것처럼 장난감들이 한자리를 차지하고는 저를 비웃는 것 같아요.

"에이, 청소하지 마요. 몸만 힘들지 어차피 똑같아질 텐데... 제가 안쓰러워서 하는 말이에요. ㅎㅎ"

장난감을 한번 째려본 후 (장난감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그래, 안 보인다고 생각하자 자기 암시를 해요.

'나는 저곳이 안 보인다. 안 보인다.' 생각하고 모른척해도 어느새 얼굴이 그 방향으로 향할 때가 있어요.

마치 '사과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사과가 더 잘 떠오르는 것처럼요.


'아이, 안 보려고 했는데, 휴............. 아, 머리 아파.' 한숨을 푹 쉬며 어지럽혀진 집안만큼 제 머릿속도 뱅글뱅글 도는 것 같아요. 그래도 바로 정리하지 않고 며칠은 놔둬요.

아이들 나름대로 논 흔적이고 며칠은 더 놀 거라고 얘기하거든요. 조금은 어지럽혀져 있는 공간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울 수 있으니 내버려 두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아무런 보수가 없는 집안일에 지치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예전엔 집안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온 식구가 같이 사용하는데 왜 나만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일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만 그런가요? ㅎㅎ)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면서 집안은 조금씩 더 물건들의 세상으로 변해가요. 장난감들은 저 자리가 행복할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쳐다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두통이 생겨요.


일주일 정도 되면 제 마음속에서 더 이상 저 공간을 볼 수 없다고 하도 요란을 떨어서 아이들에게 치우라고 하죠. 아이들의 정리라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단 서랍 속 아무 데나 넣고, 거실 한구석에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아요. 우와. 저게 뭐지? 저걸 정리라고 할 수 있나? 정말 신박한 방법인데?

혼자 생각하며 두 아들의 모습을 보면 빨리하고 끝내려는 꼼수가 다 보여요.

저러다 나중에 장난감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또 그러겠지? 싶으면서도 그냥 내버려 둬요.

여기서 간섭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제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정리가 안 되겠다고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제가 봤을 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는 정리하는 것을 도와줘요. 저의 손 몇 번 거치면 집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마법이 일어나죠.

두 아들은 제가 정리하면 "엄마, 이렇게 정리하니까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아! ㅎㅎㅎ" 이래요.

아니, 깨끗한 공간이 좋으면 너네도 좀 그렇게 하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게 쉽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는 말자, 생각해요.


그러면서 가끔 나는 왜 이렇게 지저분한 환경을 못 볼까 생각해요. 지저분해도 그냥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던데... 왜 혼자 사서 이렇게 고생을 할까 싶은 거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언제부터, 왜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그냥 지저분한 것이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부모님이 시키지 않아도 혼자 정리하고 청소하면서 나름 뿌듯함을 느꼈던 거겠죠. 깨끗해진 공간을 보는 기쁨을 알았던 것 같아요.

그건 나이가 들면서 더해져서 혼자 자취할 때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야 했어요. 물건들에 자리를 정해주고 그 자리에 놓아두는 것이 예의이고 꼭 그렇게 해야 하는 사람처럼요. 예전에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티슈를 쓰고 또 사용해야 하니 친구 옆에 놔뒀는데, 제가 바로 제자리에 갖다 뒀다고 몇 년을 얘기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모두 제자리에 있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심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예전 친구들이 지금 저희 집에 놀러 오면 깜짝 놀랄지도 몰라요! 너도 사람이구나! 이렇게 반응할 지도요. ㅎㅎ

결혼 초반에도 매일 정리하고 쓸고 닦고 했어요. 그땐 어지럽히는 두 아들이 없기도 했고, 첫째만 있을 때는 완전히 어릴 때라 어느 정도 수습이 가능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이 둘이 되고 조금씩 자랄수록 치우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막내 도련님이 처음엔 저희 집이 너무 깔끔해서 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아주 편하다고 하시더라고요. ㅎㅎㅎ 그만큼 제가 많이 놓았다는 증거겠죠.


제가 놓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편해져서 좋은 것도 있지만, 아직 너무 심한 어지럽힘까지는 허용하지 못하는 저도 보여요. 이 정도까지는 봐줄 수 있어! 이런 것도 제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되니...

이렇게 아이들이 어지럽히며 노는 것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지금은 제 옆에서 조잘조잘하면서 둘이 놀다가도 한 번씩 엄마를 찾는 아이들인데, 시간이 지나면 혼자만의 공간에서 치열하게 자아를 찾으려 할지도 몰라요. 그때 되면 되레 제가 거실에 나와서 좀 있자고 사정할 지도요. ㅎㅎ

그래서 저는 책상은 모두 거실에 놓을 생각이에요. 가족당 책상 1개씩 해서 4개를 붙여놓고 그곳에서 공부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거죠. 이건 남편과 제가 아이들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고, 지금은 두 아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방은 그냥 쉬는 공간으로만 하면 좋겠거든요. 아직은 아이들이 거실에서 더 놀아야 하니 조금 더 크면 책상을 들여놓자고 이야기했어요. 지금은 알겠다고 하는 두 아들인데 커서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이들이 자란 후 너무 깔끔해진 공간을 보면 저는 지금을 그리워하게 될까요?

아니면 원래 깔끔하고 정리된 환경을 좋아하니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까요?

몇 년 후 저는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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