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발걸음 May 15. 2023

술은 답이 아닙니다



2023년 1월 어느 날 두 아들과 영화관에 뽀로로 극장판을 보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영화 시작하기 전에 광고를 보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광고는 참 오랜 시간 동안 하는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갑자기 제 눈에 들어온 광고 문구가 보였으니 바로 '술은 답이 아닙니다'였어요.

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데?라는 생각에 괜히 반가웠어요.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저도 대학교에 가서 처음 술을 먹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귀밝이술, 대입 100일 전 술이라고 한 모금 마신 것을 제외하면 말이죠.

대학교 동아리 MT에서 처음으로 많은 술(아마 소주 1병도 안 되었을 거예요)을 마셔봤고,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선배들을 놀라게 했던 기억이 나요. 그 이후 선배들은 저에게 술을 먹이지 않았죠. ㅎㅎ

저도 아... 나는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아주 가끔 맥주 1잔 정도 마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직장 생활을 위해 서울로 오면서 조금씩 술을 마실 기회가 많아졌어요.

음... 기회가 많아졌다기보다 기회를 만들었다고 봐야겠네요.

27살 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당시 저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술을 먹고 슬픔을 조금이나마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당시 근무하던 곳이 동기들이 많은 곳이어서 매일 어울려 다니면서 술을 마셨죠.

그렇게 3년 정도를 지내다 제 생활도 해야 했고, 근무 부서도 바뀌면서 술자리는 조금씩 줄어들었어요.

몇 년 후 친한 친구와 같은 부서가 되어 다시 많이 마시게 되더라고요. 둘 다 술을 좋아해서 ㅎㅎ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저는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을까요. 

술을 먹고 실수한 적도 있고, 다음날 너무 힘들어서 거의 하루 종일 시체처럼 누워있기도 했는데...

술을 마시면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고 생각했나 봐요.

평소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저인데, 술에 좀 취하면 다른 분들 말씀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그렇게 원샷을 하라고 했대요.

다른 사람들과 원샷을 그렇게 주고받으며 집에 와서 완전 뻗어버리는 거죠.


그렇게 기분 좋을 때도 한 잔, 기분 나쁘니까 한잔 이런 날이 지속되었어요.

갑자기 어느 날 이러다 알코올중독이 되는 건 아니야? 걱정이 들 때쯤, 한 권의 책을 보게 되었어요.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술을 마신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분이 더욱 안 좋아진다는 거예요. 무슨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다음 날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더 안 좋다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생각하면서 조금씩 줄여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다 임신을 한 이후부터 술을 먹지 않았어요.

입덧으로 다른 음식들도 제대로 먹지 못했기도 했지만, 술은 정말 전혀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 알코올의 향이 어쩜 그리 싫던지...

두 아들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했기에 임신해서부터 약 5년 정도는 술을 먹지 않았어요.

그러다 아주 가끔씩 주변에서 이젠 먹어도 되지 않냐고 한잔하라고 권해서 일 년에 10회 미만으로 먹었는데, 현재는 거의 먹지 않아요. 

술이 전혀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옆에서 먹고 있어도 먹고 싶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고요.

술을 마시면 좋아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알아야 그런가 봐요.


남편은 예전엔 매일 맥주 1캔씩을 먹었어요. 

맥주 1캔은 술도 아니라면서 하루의 피로를 다 풀어버릴 수 있다면서 먹더라고요.

저도 예전엔 그런 생각을 했기에 이해는 되는데, 저는 다른 방법을 찾은 것이고, 남편은 아직은 술이 주는 위안이 좋았던 거죠. 

저도 아주 가끔은 맥주 한 캔이 생각날 때도 있긴 하거든요.

하지만 술은 답이 아님을 알기에 먹지 않으려는 거죠.

지금은 맥주 1캔도 제대로 다 못 마시는 알쓰가 되어버렸는데...

예전에 술을 많이 먹었던 생각을 하니 지금 알코올 냄새가 풍기면서 머리가 어지러워지네요.


극장에서의 저 문구가 저뿐만 아니라 첫째에게도 인상적이었나 봐요.

어느 날 아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면서 저렇게 이쁘게 봉투까지 만들어서 아빠에게 주더라고요.

첫째가 아빠에게 준 편지


봉투에 술을 그려놓고 X라고 해놓은 것이 보이시나요? ㅎㅎ

내용은 '아빠에게. 하나만 진짜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술은 답이 아닙니다.'에요.

너무 귀엽지 않나요? 전 너무 웃겨서 넘어갔고, 남편은 하하하 멋쩍게 웃었답니다.

그 이후 술 먹는 것이 좀 줄었냐고요? 남편은 금주 선언을 했습니다!

두 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아빠, 술은 답이 아니래. 아빠 술 좀 끊어." 계속 얘기했거든요.

술을 먹은 것을 안 다음날이면 폭풍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서 남편이 끊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거죠.

본인이 술을 마시면 저, 첫째, 둘째 아들에게 벌금을 내겠다고 이야기하길래 영상으로 남겨놨어요. ㅎㅎ


남편은 금주 약속을 잘 지키고 있을까요? 

한 달 정도는 아예 안 마시더니 그 이후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끔 마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꼭 저와 아이들에게 들켜요. 하려면 제대로 하던지... 

벌금이 조금씩 쌓이고 있는데, 두 아들은 그걸 잊어버리지도 않으니... 남편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어지럽혀진 집을 보면 힘들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