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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May 19. 2023

저금통에 잠들어 있던 500원의 쓰임새



결혼하기 몇 년 전부터 저에게는 동전 저금통이 있었어요.

500원, 100원, 50원 & 10원을 따로 보관하기 위해 총 3개의 저금통을 소유하고 있었죠.

저금통을 만든 이유는 간단해요. 거스름돈이 귀찮았기 때문이에요. 지갑에 넣어 다니려니 부피와 무게를 차지하고, 아무 데나 넣어놨더니 잊어버리고... 한번 따로 보관해 보자 생각하고 저금통을 구매했어요. 500원짜리 모으는 저금통은 예전에, 어딘가에서 받은 돼지 저금통으로, 나머지 동전통은 다이소에서 1,000원씩 주고 구매했어요. 가끔 현금을 사용했기에 어느 순간 저금통이 무거워졌어요.


남편도 결혼 전부터 사용한 아주 커다란 돼지 저금통이 있었어요.

남편은 지폐, 동전 마구 섞어서 넣었더라고요. 그렇게 우리 집에는 총 4개의 저금통이 존재하게 된 거죠.

남편과 나의 저금통


가끔 동전이 필요할 때 조금씩 빼서 사용했지만 그래도 부피가 많이 줄지는 않았어요.

은행에 가서 바꾸면 되는데 그게 귀찮아서 그냥 그대로 놔두고 조금씩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죠.

저금통이라는 좁은 곳에 동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답답하기도 했을 거예요.


시간이 지나 두 아들이 태어나고 어린이집에 다닐 때였을 거예요.

어느 날 두 아들이 500원짜리 동전이 있는 제 돼지 저금통에 있는 동전을 다 꺼내서 놀고 있더라고요.

500원짜리만 보관되어 있던 제 돼지 저금통은 앞쪽의 코 부분을 돌리면 돈을 뺄 수 있어서 아이들이 하기에도 쉬워요. (아마 빼는 방법은 남편이 알려준 것 같아요) 거기에 있던 많은 동전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빼서 방에 쏟아놓고는 높이 탑을 쌓고, 여기저기 다양한 곳에 쑤셔 넣고, 동전 숨바꼭질 등을 하면서 놀고 있더라고요.

동전 하나로 다양한 놀이를 하는 두 아들을 보면서 신기하다 생각하면서 잘 가지고 놀고 제자리에 넣어 두라고 했죠. 아이들은 모두 저금통에 넣었다고 했는데 가끔 청소하면 500원짜리가 어디선가 '나 여깄 어요!' 하며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 어딘가에 놀다 잊어버린 거죠. 그렇게 제가 찾은 500원도 꽤 될 거예요.


작년부터 두 아들이 뽑기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관심이 없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마트, 문구점 등에 뽑기 기계들이 꽤 있더라고요.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돈으로 그냥 비슷한 장난감을 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렇게 뽑기를 좋아하더라고요.

요즘 뽑기는 다양한 가격에 다양한 제품이 많더라고요. 500원부터 시작해서 3,000원까지 있는데 3,000원짜리는 둘이 하면 벌써 6,000원을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 500~1,000원 사이에 있는 것을 뽑도록 하고 있어요.

그때부터 제 저금통에 그동안 잠들어 있던 500원짜리 동전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죠.

초반엔 아이들이 원할 때 가끔 뽑게 해 줬는데, 지금은 한 달 동안 첫째는 20일 이상 운동, 둘째는 20일 이상 짜증 내지 않기 등으로 스티커를 붙이고, 그 개수를 채웠을 때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 해줘요.

원하는 것에 장난감은 안 되지만(집에 아이들 장난감이 너무 많아요ㅠㅠ) 뽑기 정도는 괜찮다고 했더니 3월에는 책을 고르더니 그다음부턴 뽑기를 적더라고요. 그 뽑기가 뭔지 스티커를 채우겠다고 노력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고 주어진 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뽑기.

500원이라는 돈보다 뽑기를 하기 전까지의 설렘, 뽑기 기계 여러 대 중 어떤 것을 선택할까 고민하는 신중함(?), 뽑기를 할 때 드르륵드르륵하면서 돌아가는 기계의 감촉, '통'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밀폐된 둥근 통에 담긴 미지의 물건, 원하는 것이 나오면 엄청나 좋아하고, 별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조금 실망하기도 하는... 더 하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리는 절제(?)까지 많은 것이 담겨있구나! 생각했어요.


저도 어렸을 때 많이는 아니지만, 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게 뭐라고 그렇게 설레고 즐거웠을까 싶은데 아이들만의 상상과 설렘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그 돈을 모아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적이면서도 어쩌면 낭만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도 드네요.

초반에 횟수 제한을 두지 않고 좀 자주 하게 해서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뽑기 금지를 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자신이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가끔 가는 근처 이비인후과에서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병원 한쪽에 뽑기 기계를 뒀더라고요. 진짜 동전이 아닌 뽑기 전용 동전을 줘서 아이들에게 뽑기를 하게 하는데, 마이쭈와 비타민이 들어있어요. 그게 뭐라고 아이들은 또 엄청나게 즐거워하고 신나 해요. 그 이비인후과보다 소아과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가끔 그 뽑기를 하고 싶어서 이비인후과에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의 뽑기 사랑 덕분에 제 돼지 저금통에 있던 500원도 제 쓰임새를 찾아서 즐거워할까요?

정들었던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난 500원들은 다른 곳에서 또 자신의 쓰임새를 찾고 있겠죠?

제500원은 줄어들고 있지만 아이들의 행복이 그만큼 올라간다면 500원도 기꺼이 행복해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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