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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May 02. 2023

나와 유머의 상관관계

나는 진지한 사람인가? 싫은데?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사람이 있다. 듣는 사람의 미소를 디폴트로 가져가는 능력자들.

그런 사람은 유머라는 유전자를 다량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질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 줄도 모르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엄~~청 부러운 감정이 든다.

나도 유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내면에서 강력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나의 유전자에는 유머가 꽉 붙들려 있지 않고 달랑달랑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언제라도 미련 없이 나는 이곳을 떠날 거야!'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왜? 왜 그렇지? 나도 재미있는 거, 웃긴 거, 유머 있는 거 좋아하는데...

왜 자꾸 나를 떠나려고 하는 거야? 흑흑...


재미있고 재치 있고 게다가 유머러스한 사람의 말을 듣고 글을 읽으면 '오~~ 나도 한번 저렇게 해봐야겠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뿜뿜 뿜어져 나온다.

그 기분에 취해 얼른 노트북을 켜고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 이야기나 쏟아내기 시작한다.

분명 처음에는 나름 재미있게 시작한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이 진지해진다.

어... 내가 원하던 글의 방향이 아닌데? 그냥 계속 재미있었으면 좋겠는데, 왜 항상 진지해지지?


내가 그렇게 진지한 사람인가? (보통 이런 질문이 중간에 끼어들면서 진지함이 시작되는 것 같다. 이런...)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뭐 나름의 서사는 가지고 있지만 많은 감정이 한데 뒤섞여 있다.

밝음, 웃음, 사랑, 행복, 귀여움, 긍정, 설렘, 좋음, 두근거림, 부정, 우울, 불안, 슬픔, 화, 분노, 두려움 등의 감정까지 아주 골고루...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러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의 무게를 견디며 살고 있고, 인생의 굴곡 몇 번쯤은 가지고 있지 않나.

그 굴곡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의 차이일까?

힘들었던 순간조차 즐거운 인생 경험으로 보느냐 힘겨운 암흑 터널로 볼 것이냐의 차이일까?

아... 이것 봐라... 또 글이 진지함으로 흐르고 있다.


진지함이 나라는 사람의 중간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서는

"나 진지해. 나 진지하니까 다른 것들은 다 저리 비켜!"라고 외치는 것 같다.

진지함의 호통에 유머, 재치, 재미 이런 아이들은 주눅이 들어 저~~~기 보이지도 않는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를 낸다.

"아니야. 주인은 재미있는 거 유머러스한 거 좋아해. 예전엔 유머집도 찾아보고 그랬다고. 그러니까 나도 진지함 네 옆으로 좀 가야겠어."

그 말을 들은 진지함은 콧방귀를 뀌며 대꾸한다.

"아, 그러셔? 그런데 이를 어쩌나? 처음엔 너희의 도움이 필요해서 찾다가도 결국 마지막엔 나를 찾는다고. 그런 걸 보면 너희보다 나를 훨~~씬 좋아하는 게 분명해! 그러니 종알종알 시끄럽게 굴지 말고 저쪽에 찌그러져 있어! 가끔 필요할 때, 그럴 때만 나오란 말이야. 내가 부를 때 말이야!"

진지함의 말에 뭐라 대꾸하고 싶지만, 또 한 소리 들을까 봐 겁이 나서 자기네들끼리 중얼중얼하고 있다.

아... 구석으로 밀려나 제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을 보니 안쓰럽다.

안 되겠다 싶어 어깨를 토닥여 위로해 주고, 잘 보이는 곳에 살짝 놔두면 진지함이 어느새 내쫓아 버리는 것 같다.

음... 진지함의 횡포에 언제까지 이렇게 휘둘릴 것인가?


세상을 조금 밝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세상엔 진지함도 필요하지만 밝게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니까.

긍정의 힘이라고 하지 않나. 책과 영상 매체를 통해 긍정의 힘을 접하면 '맞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야!' 다짐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다.

이것이 이 진지함 녀석 탓이다. 아니 내가 이 진지함이라는 녀석을 이렇게까지 키운 거겠지.

이제는 진지함의 사이즈를 줄이고 밝음에 해당하는 감정들을 조금씩 키워나가고 싶다.

그래서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에는 진지함이, 어느 순간에는 유머와 재치, 밝음이 드러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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