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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Jun 12. 2023

뱀이다!!



며칠 전 두 아들과 집 근처 놀이터 겸 작은 공원에 갔어요.

각자 학교와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와서 가방을 내려놓고는 "엄마, 물놀이터에 가자! 자전거 타고 싶어."

최근의 일상이기에 "그래, 가방 정리해 놓고 가자" 이야기했어요.

가방을 뚝딱 정리하고 각자 물통에 물을 담은 후 자전거를 끌고 놀이터에 갔어요.


저는 그날 오전에 걷기 운동을 1시간 했기 때문에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둘째가 "엄마, 나 따라와~!!" 이러는 거예요.

음... 나의 휴식 시간은 두 아들이 돌아오면서 끝나는구나! 생각하면서 "알았어! 뒤따라갈 테니까 먼저 가고 있어." 말하고는 아이 자전거 뒤를 터덜터덜 따라 걷고 있었어요.

둘째, 저만치 앞서 가면서 "엄마, 좀 더 빨리 와!!" 이야기하길래,

"너는 자전거 타고 가지만 엄마는 걸어가잖아! 뒤따라갈 테니까 먼저 가!!" 이야기하고는 나름 조금 속도를 내서 걸어갔어요. 걷는 사람도 좀 생각해 줘야지 혼자 구시렁대면서요.

둘째와 같이 돌고 있었더니 첫째도 자기 뒤를 따라오라고 합니다.

"음, 그래. 알았어. 먼저 가." 말하고는 첫째 뒤도 따라 걸었어요.

둘 다 자전거를 타고 쌩 달리길래 중간 사잇길로 통과해서 가려고 했더니 둘째, "엄마, 그렇게 가면 반칙이지! 여기 다 돌아야지." 말합니다.

아니, 이건 무슨 경주도 아닌데 왜 굳이 그래야 하나 싶으면서도, 아이들이 간 길 그대로 따라서 몇 번 걷고는 "엄마는 이제 너무 힘들어! 여기 앉아서 조금 쉴 테니까 둘이 타고 갔다 와." 이야기했어요.


첫째는 몇 번 타고 오더니 힘들다고 제 옆에 앉아서 쉬고, 둘째 혼자 쌩쌩 달리고 있었어요.

몇 바퀴 돌고 있던 둘째가 "엄마, 형~~~ 저기에 뱀이 있어! 할머니들이 저기에 뱀이 있다고 해서 봤는데 진짜 뱀이야! 한번 와서 봐봐."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웬 뱀? 이렇게 생각하며 둘째 아들이 말한 곳으로 첫째와 함께 가 봤어요.

할머니 네 분께서 벤치 두 곳에 앉아 계셨는데, 한 벤치 아래에 진짜 뱀이 있는 거예요!

벤치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뱀을 툭툭 치면서 장난을 치고 있고, 뱀은 귀찮은 듯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고양이를 위협하듯 하고 있었어요.

길을 지나가다 뱀을 본 것이 처음이었기에 잠깐 가까이 다가가서 뱀 사진을 찰칵 찍었어요.


근처 공원 벤치 아래에서 발견된 유혈목이



첫째는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고, 둘째는 계속 보자고 하고... 일단 그곳을 잠시 피해 다른 벤치에 앉았어요.

그러고는 남편에게 물놀이터에 이런 뱀이 나왔다며 신기하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그런데 남편이 그건 '유혈목이'라고 하는 독사니 빨리 소방서에 신고하고 거기에서 피하라고 하는 거예요.

엥? 독사? 검색해 봤더니 진짜 유혈목이더라고요.

일단 뱀이 그곳에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러 갔더니 할머니들께서 옆에 나무들 속으로 숨었다는 거예요. 소방서에 일단 신고하고 할머니들께도 위험하니 피해 있으라고 말씀드렸어요.

두 아들은 뱀이 있는 쪽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전거를 타게 하고 소방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조금 있으니, 소방차가 도착했고, 소방관 네 분이 내리셔서 걸어오시길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어요.

제가 찍었던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런 뱀이라고도 알려드렸고요. 한 분이 유혈목이인가 말씀하시길래 저희 아이들 "맞아요! 유혈목이요."라고 말했어요.

할머니들께서 그 벤치에 그대로 앉아 계셨기에 어디로 도망갔는지 이야기를 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분명 독사라고 피하라고 말씀드렸는데 거기에 그대로 할머니 네 분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셔서 한편으론 놀라웠습니다.)

소방관 네 분께서는 뱀이 발견된 곳 근처를 샅샅이 뒤졌는데 뱀이 그새 도망간 모양이더라고요.

결국엔 뱀은 찾지 못하고 혹시라도 또 발견되면 신고해 달라고 말씀하시고는 가셨어요.


소방관들이 가시고 나서 첫째는 독사는 무서운 것이니 얼른 집에 가자고 하고, 둘째는 더 놀고 가자고 하고...

저는 내가 겁도 없이 뱀 근처에 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구나 생각하고...

한편 소방관들은 정말 하는 일이 많으시구나! 고생이 많으시겠다! 생각도 하고...

두 아들에게 엄마가 소방서에 신고해서 소방관이 출동한 건 처음이라고 이야기해 주니...

두 아들도 본인들도 처음 봤다며 신기해하고...

저는 약간 멍한 상태로, 두 아들은 재잘거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첫째가 얼른 가자고 해서 그래, 가자! 그러면서 집에 왔어요.

근처에서 도마뱀, 두꺼비, 사마귀, 달팽이 등을 본 적은 있어도 뱀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신기하면서도 조심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기사를 찾아보니 4월부터 10월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유혈목이는 국내에서 흔하게 눈에 띄는 뱀이라고 해요. 도심 속에서 발견된 것은 최근 2~3년 사이에 부쩍 잦아졌다고 하네요 음식물 쓰레기로 쥐 등 설치류가 많아지면서 이를 포식하는 뱀이 번식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 근처 공원에는 음식물 쓰레기 등이 거의 없어서 도대체 어디서 온 건지 더 궁금했어요.

야외활동 중에 뱀을 만났을 경우 돌을 던지거나 건드는 행위 등으로 자극하지 말고 피해 가라고 해요.

특히 도심에서 뱀을 발견한다면 119에 신고하는 것이 좋다고 해요. 포획한 뱀은 절차에 따라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다고요.


그 이후 물놀이터를 몇 번 더 찾았는데 뱀을 다시 보지는 못했어요. 그 유혈목이도 자기가 원래 살던 곳으로 잘 돌아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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