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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Jun 24. 2023

엄마도 잘 삐쳤다면서?



유치원생인 우리 집 둘째 아들은 잘 삐칩니다.

자신이 이야기한 것을 들어주지 않을 때 대부분 삐쳐요.

삐쳤을 때 엄청 티를 내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죠.

약간 씩씩거리는 소리를 내고 묻는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홱 돌려버려요.

그리곤 삐친 대상을 피해서 다른 장소로 발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쿵쿵거리면서 가버려요.

어떨 때는 그 모습을 보면 아직 아기구나! 생각하며 귀엽게 느껴져서 픽 웃음이 새어 나오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러면 매번 풀어주기도 그렇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가만 내버려 둘 때도 있어요.

혼자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거죠. 뭐, 저도 피곤할 때도 있으니까 귀찮을 때도 있기도 하고요. ㅎ

시간이 조금 지나 씩씩거림이 잦아들기도 하고, 아니면 더 씩씩거릴 때도 있어요.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살짝 와서 보고 다시금 고개를 홱 돌리고 나 삐쳤다는 것을 다시 제대로 어필하고 가요.


조금 시간의 텀을 둔 후에 못 이기는 척 둘째 아들에게 가봐요.

분명 제가 왔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면 이름을 부르고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 해요.

뭐, 이렇게 말해도 대부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 상태로 있지만요.

알고 있지만 왜 삐쳤냐고 물어보면 정말 사소한 것들이에요.

지금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데 오늘은 조금 쌀쌀한 날씨이니 내일 먹자고 이야기할 때, 지금 당장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았을 때, 형이랑 사소하게 다퉜는데 본인만 혼낸다고 오해했을 때(분명 둘 모두에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는데 말이죠;;), 장난감 사고 싶은데 안 사줄 때, 밥 먹기 싫은데 다 먹으라고 했을 때, 분명 자기가 한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대신했을 때, 정리하라고 했을 때 본인 나름대로 정리했는데 더 하라고 했을 때(물건들을 제자리에 두지 않고 한 곳에 쌓아놓는 경우가 많거든요;;) 등...

이러면서 서운했던 감정이 북받치면 눈물까지 글썽끌썽거리면서 이야기해요.

눈물 앞에서 조금 마음이 약해져서 안아주면서(완전히 삐쳤을 때는 안아주려고 해도 밀어버리며 안 안기려고 할 때도 있어요. 다시 이야기해서 안아주려고 하죠) 속상한 마음을 일단 인정해 주고, 왜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려고 노력해요.

어찌어찌 이야기를 통해 조금 풀어지기 시작하면 얼굴에 슬쩍 미소가 감돌아요.

이러면 거의 다 풀린 거라서 조금만 더 얘기하고 서로 꼭 안아주면서 끝나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잦다 보니 저도 지치더라고요. 그러면 그냥 내버려 두는데, 이럴 때는 자기가 먼저 살짝 다가오는 경우도 있어요.


어느 날 저, 두 아들, 아이들 이모(제 여동생) 이렇게 길을 가고 있었는데, 둘째가 사소한 걸로 삐쳤어요.

그러고는 고개를 팽 돌리고 앞으로 혼자 가더라고요.

저는 또 시작이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동생이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OO아, 너 진짜 잘 삐친다. 누굴 닮아서 그렇게 잘 삐치니? 너희 엄마도 어릴 때 엄청 잘 삐쳤는데... 똑같네! 똑같아."

이건 뭔 소리지? 아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왜 타깃이 나에게로?

두 아들, 이때다 싶은지 "엄마, 엄마도 어릴 때 잘 삐쳤어?" 묻기 시작합니다.

"몰라. 엄마 어릴 때라 기억이 잘 안 나." 이렇게 얼버무렸어요.

그리곤 내가 어릴 때 잘 삐쳤다고? 생각에 잠겼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얼핏 얼핏 스치는 삐쳤을 때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어요.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왜 저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기분 나빠." 이런 생각과 함께 말을 잘하지 않던...

음... 지금도 약간 그런 면이 없지 않기도 한가? 싶으면서도 지금은 거의 말로 풀려고 노력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https://pin.it/3 NqJFtl




그 이야기를 들은 둘째, 자기가 삐쳤을 때 "또 삐쳤니?"라고 물어보면,

"엄마도 어릴 때 잘 삐쳤다면서?" 되려 저에게 물어봐요.

이런... 지금, 이 이야기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나의 어린 시절을 소환해서 나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저 마음이 훤히 다 보여서 어이가 없어요.

그러면서 괜히 아이들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 아이들 이모가 조금 미워지는 순간이기도 해요. 아! 이런 것이 잘 삐친다는 것인가? 싶기도 하네요. ㅎㅎ


어릴 때 잘 삐쳤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내가 신경 써주는 만큼 상대도 그만큼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그게 잘되지 않을 때 서운함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아요.

아니면 내가 바라는 상대의 모습을 내 마음대로 그려놓고 그렇게 해주길 바랐던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이 참 좁았던 거라 부끄럽기도 하고 참 어렸구나 싶어요.

뭐, 지금도 둘째 아들이 삐쳐서 말을 이쁘게 하지 않고 (대부분 "나는 이제 엄마 안 좋아해!"라고 선언해 버려요) 씩씩거리면, "그래,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하곤 해요.

달래다 지쳐서 저렇게 내뱉고는 '나도 삐친 건가?' 깨달으면서 마음이 넓은 어른이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고 생각해요.


인생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어 내가 원하는 모습만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런 감정이 불쑥 올라올 때 아직은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여요.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런저런 생각의 단편들이 날아다녀요.

조금은 그런 감정들을 놓아주고 편해지고 싶은데 아직은 쉽지 않네요.

마음이 평온하고 넓은 어른이 되고 싶은데, 가능할까 모르겠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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