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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Jun 21. 2023

내가 엄마랑 아빠랑 묶어줄게!



몇 주전 첫째 아들 운동화를 사러 온 가족이 집 근처 아웃렛으로 향했어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2년 전부터 키도 발도 쑥쑥 커버려서 분명 반년 전에 산 신발인데도 작아서 잘 안 들어가더라고요.

예전에는 인터넷으로 제가 알아서 사줬는데, 사이즈 확인도 어렵고, 직접 신어봤을 때 편한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본인들 것은 스스로 고르고 싶어 해서 매장에 같이 갔어요.

둘째는 아직 사이즈가 여유 있는 것 같은데도 형이 사면 본인도 꼭 사야 한다고 주장해요.

저는 중간에 커트하는 경우도 있는데, 남편은 아이들 말이라면 거의 다 들어주려 노력하기에 알았다고 할 때가 많아요.

두 아들도 이제 그 사실을 알고는 저에게 말해서 안 통한다 싶으면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애교와 반 협박(뽀뽀 안 해 줄 거야! 등)을 섞어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요.


신발 매장 3군데 정도를 돌아다닌 후에야 아이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찾았어요!

30분 정도를 돌아다녔는데, 결국엔 아이들이 항상 사는 매장에서 사게 되더라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여기를 갈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새 신발을 고르고 계산한 후에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 산 신발을 신고 매장을 나왔어요.

이제 뭐 하지 하면서 밖으로 나왔는데 이벤트 매장이 보여서 남편과 한번 들어가 보자고 했어요.

남편 여름 반팔티가 많이 없어서 사야 했는데, 많이 할인된 가격의 제품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남편에게 반팔 티셔츠 사이즈 좀 보고 몇 개 사서 가자고 했어요.


들어온 지 3분이 지났을까요, 둘째 아들 여기서 뭐 하는 거냐며 나가자고 합니다.

이런... 자기들 운동화 살 때는 몇 십 분을 돌아다니면서 샀구먼...

아빠 티셔츠 몇 개만 빨리 골라서 가겠다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 안아줘" 하면서 아빠에게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하... 몇 가지 후다닥 골라서 사이즈 좀 맞춰보게 했어요.

그리고 제 것도 남편과 같은 걸로 고르면서 커플티로 사야지라고 말했더니 빤히 쳐다보고 있던 첫째,

"엄마, 내가 엄마랑 아빠랑 같이 묶어줄게. 그러면 둘이 항상 같이 있을 수 있잖아. 그렇게 좋아하면 끈으로 내가 묶어줄게."라고 얘기해요.

"뭐래, 아무리 좋아도 항상 붙어있는 건 싫거든." 제가 이렇게 말하면,

"왜? 엄마랑 아빠 서로 좋아하잖아. 커플티도 사고, 손도 잡고 다니고, 어? 그러면 둘이 묶어서 다니면 항상 같이 다닐 수 있고 얼마나 좋아?"

남편은 "어! 그거 좋은 방법인데요?" 라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고...

둘째는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거냐면서 아빠를 억지로 밖으로 끌고 나가려고 하고...

첫째는 옆에서 아빠랑 엄마를 묶어주겠다는 이야기를 종알종알거리면서 저를 쫓아다니고...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는 걸까?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이에요.

얼른 사서 후다닥 밖으로 나오면 그제야 그나마 평화가 찾아와요.


가끔 첫째의 저 말을 생각해 봐요. "내가 엄마랑 아빠랑 묶어줄게"

다시 생각해도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연애할 때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우리 이렇게 꼭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는 했죠.

그때는 각자의 집으로 가야 하니까요. 눈에 하트만 뿅뿅 날아다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양육하느라 두 아들과 몇 년을 붙어살다시피 하니까 서로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각자의 경계를 존중해 주면서 사랑하면서 사는 것, 이게 진정한 사랑 아닐까 싶어요.

가끔 내가 너무 낭만이 없나? 맞장구를 쳐줬어야 하나? 싶다가도 아이들이 진짜로 그래 버릴 것 같아서 못 하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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