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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Aug 03. 2023

실뜨기



2년 전쯤, 첫째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실뜨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장난감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는 요즘 아이들도 이런 놀이를 하면서 재미있어할까 내심 궁금했어요.

제가 어린 시절에는 장난감이 많이 없었기에 실 하나로도 즐겁게 놀았거든요.

비록 시간이 오래 지나 어떻게 하는 것인지 다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말이에요.

유치원에서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실뜨기가 재밌다면서 집에서도 해보고 싶다고 하길래 실을 주문했어요.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니 실 하나 가격보다 배송비가 더 들길래 넉넉하게 10개 정도 주문하고 친구들에게도 나눠주라고 했어요.

그런데, 실뜨기 실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치원에서 실뜨기 실 하나씩 나눠줬다고 가져오더라고요.

음... 이럴 거면 왜 샀지 싶으면서도 둘째도 있으니 같이 가지고 놀라고 했어요.

저와 실뜨기를 하자는데 간단한 것만 몇 개 기억나서 그것만 몇 번 해줬어요.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응용해서 이런저런 놀이를 하더라고요.

강아지 산책시킬 때 목줄처럼 인형 목에 매달아서 산책시키면서 놀고, 체포한다며 동물 피규어들을 묶고...

뭘 이렇게 다 묶어버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이 남자아이들의 놀이법인가 하고 내버려 뒀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우리 집 두 남자아이가 가지고 놀던 물건들에게 일어나는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물건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마법이 일어나는 거죠.

분명히 어딘가에서 놀고는 제자리에 두지 않아 못 찾는 것일 테지만요.

초반에 반짝 가지고 놀지만, 시간이 지나면 찾지도 않는 물건들.

물건들도 안쓰럽고 낭비라는 생각에 요즘엔 거의 사주지 않게 되네요.

실뜨기도 어느 순간 아이들의 흥미를 잃어 어딘가에서 꼬이고 엉킨 상태로 있다 도저히 못 풀겠다 싶어 제가 버린 것도 몇 개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실뜨기는 우리 식구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갔습니다.


올해 7월 어느 날, 다용도실에서 화장지를 꺼내는데 정말 갑자기! 실뜨기 두 개가 제 눈에 들어왔어요.

엥? 아이들이 예전에 언제 여기까지 와서 놀다 떨어뜨렸지? 생각하며 주우려다 그냥 내버려 뒀어요.

막상 줍자니 귀찮기도 하고 어디에 놔두어야 할지 생각하기도 싫었거든요.

하루가 지나니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첫째가 갑자기 실뜨기가 하고 싶다는 겁니다.

뭐지? 내가 어제 실뜨기 실을 발견한 것을 아는 것인가? 몇 년 동안 찾지 않던 실뜨기를 갑자기 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실뜨기 실을 왜 찾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너무 하고 싶어 졌대요.

가끔 아이들의 이 갑자기! 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있어요. 아무런 예고가 없거든요.

다용도실에 오랜 기간 숨바꼭질을 하던 실뜨기 실 2개가 드디어 햇빛을 보러 나왔어요.

두 아들에게 하나씩 주고는 마음대로 갖고 놀라고 했죠.

첫째는 저에게 주르륵 오더니 실뜨기하자고 합니다.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는데, 어느새 제 몸이 아주 아주 오래전에 했던 실뜨기를 기억해 내곤 의지와 상관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실뜨기의 지옥에 갇혔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실뜨기하자 들이밀더라고요. 엄마도 엄마 할 일이 있으니까 몇 번만 하자고 다짐을 한 후에야 했어요.


실뜨기하자고 내미는 둘째 아들



옆에서 보던 유치원생인 둘째, 자기도 하고 싶은가 봅니다.

그런데 방법을 잘 모르니 "엄마, 나는 못 해."라고 하더라고요.

첫째 아들에게 조금 가르쳐주라고 했더니 자기가 못했던 것은 기억하지 못한 채, 몇 번 가르치더니 못 하겠다고 했어요. 시무룩해 있는 둘째에게 천천히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줬습니다.

손가락 길이가 짧고 아기 같은 손으로 이리저리 해보는 것이 귀여웠습니다.

차근차근 알려주니 어느새 다 익혔더라고요. 나름 응용도 하고 말이에요.

제가 바쁠 때면 두 아들에게 하라고 했더니 둘이 하면서 첫째는 둘째가 잘한다며 칭찬도 해주더라고요.

둘이 계속하면 좋겠지만, 각자 하고 싶은 것이 다를 때도 있으니 가끔 저를 찾아와서 실뜨기를 내밉니다.

그러면 몇 번 할 것인지 약속을 하고 최선을 다해서 해줘요. 그렇지 않으면 끝도 없을 테니까요.


7월 말에 시댁에 다녀왔는데, 둘째 아들은 할머니, 막내 삼촌, 작은 아빠, 작은 엄마, 사촌 누나 가리지 않고 실뜨기하자고 내밀더라고요. 다들 이런 것도 할 줄 아냐며 말하니 더 신났던 것 같아요.

고집도 세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애교를 부리는 둘째에게 다들 넘어간 거죠.

그 덕에 시댁에서 저는 거의 안 했던 것 같아요. 그 며칠간 다른 분들 덕에 해방감을 맛본 거죠.

이제 집에 돌아와서 하루에 몇 번씩 실뜨기하자고 내미는 두 아들.

이 실뜨기 사랑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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