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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Aug 15. 2023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고...


저는 수학을 어려워한 이과 여자예요. 학창 시절 나를 둘러싼 것들을 과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어느 정도 흥미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제 일상에 과학이 들어올 공간이 없어졌어요. 과학보다는 역사, 철학 등 인문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과학적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동안 외면했던 과학책도 조금씩 읽고 영상도 가끔 봐요.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도 있어서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요. 그래서 천상 자신을 문과 남자라고 소개하는 저자가 쓴 과학책은 어떨지 궁금했어요. 조금은 쉽지 않을까 기대되었거든요.


유시민 저자는 문과가 과학책을 읽으려면 방정식이 없어야 하고, 인문학이 있어야 수월하기에 뇌과학으로 이 책을 시작해요. 뇌과학을 알면 생물학에 호기심이 생긴다고 해요. 생명 현상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싶어서 화학을 들여다보게 되고, 원소 주기율표를 이해하려다 보면 양자역학과 친해지고, 양자역학을 알면 우주론이 덤으로 따라온다고 해요. 우주와 수학이 무슨 관계인지 궁금해져서 수학도 공부하게 되기에 책을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 순서로 했어요.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물리학뿐 아니라 인문학에도 관심을 가졌어요. 어느 날 그는 '평등의 윤리'를 주제로 한 학제적 토론회에서 '평등'이라는 주제를 먼저 명확하게 정의한 후 토론을 전개하자고 했는데,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는 인문학자들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믿는 '거만한 바보'라고 촌평을 날렸어요. 저자는 처음엔 파인만이 지나쳤다고 생각했지만, <코스모스>와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물질세계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무지한 자신이 '거만한 바보'였음을 인정해요. '난 아는 게 별로 없어.' 인정하고,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점검하는 습관을 익히기 위해 과학 공부를 시작해요.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과학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나누고, 모르는 것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해요. 인문학은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을 가르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에, 매우 그럴듯하거나 그럴 것 같기도 한 주장과, 별로 그럴듯하지 않거나 아주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있을 뿐이라고 해요.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이 생긴 이유가 과학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은 거만한 바보였기 때문이라고 해요. 인간을 이해하려면 과학, 인문학 모두 필요하다고 해요.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누구나 한 번쯤 해본 고민이 아닐까요. '나는 누구인가?'는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라고 해요. 수많은 철학자가 자기만의 사유로 답을 내렸어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해요. '나는 무엇인가?' 과학의 질문이 선행되어야 온전해진다고 저자는 말해요.

나를 온전히 알려면 인간의 본성을 알아야 해요. 그래야 내가 왜 그런지 알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발 딛고 선 물질세계를 이해해야 해요. 우주는 언제 탄생했고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입자가 어떻게 생명과 의식을 만들어내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왜 이런 방식으로 사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과학적인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나를 안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 대중의 최애 과학인 '뇌과학'. 그 이유는 생존과 자기를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해요. 

"뇌에 깃든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쉼 없이 흔들리고 부서지고 비틀리는 가운데 스스로를 교정하고 보강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견딘다. 자유의지는 그런 자아가 지닌 것이다. 자아가 불안정한데 자유의지가 어떻게 강고하겠는가. (중략)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몸에서 크기는 작지만 중요한 기관인 뇌. 알려진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미지의 분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뇌는 누구보다 논리적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변화를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라는 것을 최근 알았어요. 효율을 중시하기 때문이겠죠. 그것을 이겨내야만 변화가 가능하겠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리저리 흔들리는 저를 볼 때마다 에휴 한숨이 나왔는데 그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노력하고 새로운 것들을 주입하면서 조금씩 어리석음의 속도를 늦추고 싶다는 생각하게 되네요. 


화학으로 넘어가서 원자 이야기를 잠깐만 해볼까 해요. "원자는 최외곽 전자껍질을 채우려는 욕망 때문에 다양한 분자와 이온화합물을 만든다. 그 분자와 화합물들이 결합해 자기를 복제하는 유기분자를 형성했다. 단순했던 최초의 생명체는 자연선택이라는 필연과 유전이라는 우연을 통해 다양한 종으로 진화했다. 그 진화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 종이 탄생했고, 80억 호모 사피엔스의 한 개체인 내가 있다."(P. 184) 


이 문장 안에 다윈의 진화론과 화학, 생물학 등이 결합되어 있어요. 인문학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보다 과학을 접목하니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조금은 더 감이 잡히는 느낌이에요.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것은 지성의 가장 위대한 과업이다. 통섭은 통일의 열쇠다.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을 둔 이론을 연결해 지식을 '통합'해야 한다." (P. 200) 


저자는 통섭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해요. 분석은 과학적 방법으로 하지만, 통섭은 언어로 해야 하기에 과학과 인문학이 모두 필요하다고요. 진리를 따라 과감하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어요.


물리학 하면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이 떠오르죠. 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시세계의 운동법칙을 알게 해 준 양자역학.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수학적으로는 완전히 증명된다고 하죠.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엔트로피 법칙이 많이 와닿았어요.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우주는 점점 더 무질서해져 언젠가는 어떤 질서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고 해요. 이렇게 되면 모든 사람, 모든 생물은 언젠가 다 죽어 없어진다는 의미겠죠. 영원한 것은 없어요. 과학자들은 언젠가 우주 자체도 종말할거라고 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존재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고 해요.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지니까요. 


누구보다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저자가 스스로를 '거만한 바보'라고 칭해요. 인문학만 파고들었지 과학에 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의 표현이겠죠. 나 자신이 바보였음을 알고 바보를 면하는 것이 바보인 줄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 낫다는 저자. 그래서 늦은 나이에 과학 공부를 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조금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인문학과 함께 과학도 같이 공부하고 싶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돼요. 저 또한 한때 역사, 소설 등 한 분야만 읽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시기마다 관심이 생기는 분야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너무 전문적이지 않고 분산되어 있지 않나 생각도 했는데, 이 책을 통해 '통섭'이라는 단어를 보며 저는 그것을 향해 나아가려는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려면 많은 시간과 공부의 양이 필요하겠지만요. 내 것만 옳다고 여기기보다 다른 분야도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어요. 문과가 알아듣기 쉽게 텍스트 위주의 글이긴 한데, 그림이나 도표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들었지만, 지면을 아끼기 위해서 그랬다는 저자의 의견도 존중해요. 책에 저자가 과학 공부할 때 참고한 여러 책이 나와요. 수학은 신계의 영역이라는 저자의 말에 웃으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ㅎㅎ 책을 다 읽은 후 예전에 반쯤 읽다 포기한 '코스모스' 책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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