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사직원을 제출했다.
12년 6개월 근무 + 5개월 임신 휴직 + 6개월 분만 휴가 + 6년 육아 휴직 +1년 간병 휴직 = 총 20년 6개월의 직장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다는 서류를 제출한 것이다.
음...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뭔가 복잡한 감정이 들면서 내 직장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20대 중반 시작한 직장 생활.
휴직 한 번 하지 않고 12년 동안 쭉 다니면서 옮긴 부서는 총 4곳. 마지막 부서에서 7년 6개월 정도를 다녔다.
초반엔 5년만 하고 이직을 하자 다짐했는데, 어떻게 다니다 보니 한 직장에서 쭉 있었다.
한 번은 정말 그만두겠다고 다른 직장도 알아보고 자격증도 따고 했었는데, 직장 내에서 부서를 옮김으로써 내가 이직하고자 했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까...
초반에 부서 이동을 하면 항상 긴장감이 따라왔다.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하는 기간이 필요했으니까.
3~6개월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긴장감이 풀리면서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었기에 매번 어느 정도의 긴장은 유지해야 했다.
직장 생활 10년이 넘어가면서 여러 가지가 겹치면서 힘들었다.
원래 직장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 아니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그동안 직장 생활을 했는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분이 상사로 오면서 힘듦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땐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관리자면 관리자다운 면모를 보여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 힘들어했으니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같은 팀원끼리 모여 차를 마시거나 술을 한 잔 하면서 풀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지속되니 감정이 풀리지 않고 쌓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
그러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의도치 않게 휴직을 하게 되었다.
원래 분만 휴가 후 육아휴직을 하려고 했는데 입덧이 심해 도저히 다닐 수 없어 임신 휴직부터 하게 된 것이다.
그땐 첫째가 복덩이라 생각되었다. 그렇게 쉬고 싶었는데 한 번에 쉴 수 있게 해 줬으니까...
그런데 휴직이 계속 길어졌다. 둘째도 생기고 둘째 출산휴직에 어머님 간병휴가까지 7년이 6개월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7년 6개월이라는 공백.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 길었던 휴직이 올해 11월 중순에 끝나면서 사직을 하게 되기에 미리 사직원을 제출한 것이다.
'휴직과 사직' 글자는 한 글자 차이인데 온도 차이가 크다.
휴직은 원했지만 사직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휴직이 끝나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공백도 공백이지만 그 직업을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나를 둘러싸고 있던 하나의 울타리가 벗겨지는 기분이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재직 상태였는데, 이제는 무직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닌가.
20대 직장에 들어오면서부터 쭉 이어져있던 직장인이라는 끈을 놓게 되는 것이다.
희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조금은 다른 기분이 될 것 같다.
사직까지 남은 기간은 1달 남짓.
아주 가끔 두 아들 초등학교, 유치원에 보내놓고 직장 친구들과 점심 한 끼와 차를 마시려고 먼 거리로 가기도 했다. 이곳에서 직장 있는 곳까지 약 1시간 넘는 시간을 투자해서 친구들을 만나면 몇 년간 못 본 사이가 맞냐 싶게 친근하다.
아... 맞다... 나는 이들과 짧게는 14년, 길게는 16년이라는 시간을 알고 지냈구나 새삼 깨닫는다.
직장에서 미혼으로 만나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다들 이런 과정을 거쳤다.
친구들이 가끔 직장 이야기를 하면 '아... 그분은 아직 여전하구나, 부서가 이사를 또 했구나' 등 이런저런 일이 있었음을 듣는다. 좀 자주 보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지지만 각자의 가정이 있기에 쉽지는 않다.
아직 한참 초등학생, 유치원생인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에 시간이 나지 않으니까.
그래도 가끔 이렇게 얼굴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다.
내가 사직을 해도 이들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사직원 제출, 직원증 반납, 사직과 관련된 부서 방문해서 일 처리하는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길다면 길었던 직장에서의 끝을 마무리하는데 단 몇 장의 종이와 통화로 끝이 났다.
사직 후 온라인으로 내가 직접 신청해야 하는 것 몇 가지가 남긴 했지만...
이 모든 것이 끝나면 홀가분할까? 아니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까?
아마 반반이지 않을까 싶다.
휴직기간을 제외하고 한 직장에서 쌓은 12년 넘는 커리어를 포기하는 셈이니까 아쉽기는 하지만, 하나를 포기해야 다른 길로 나아갈 수도 있는 법이니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새로운 문을 열고 걸어가야겠지.
가끔 뒤돌아볼 때도 있겠지만, 언제 그랬냐 싶게 익숙해지지 않을까.
1~2년 전만 해도 싱숭생숭했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지는 것 같다.
아니다. 또 싱숭생숭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1달 후엔 어떤 감정이 들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