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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Oct 11. 2023

“미안해 말하지 않아도 내버려 두면 우린 화해해."


두 살 터울의 두 아들.

초등학교 1학년과 유치원생인 둘은 쿵작이 잘 맞다.

내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데 둘이 까르르까르르 웃어댄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놀이를 한다.

종이접기, 도화지에 그림 그리기, 장난감으로 역할놀이 하기, 도화지를 접은 후 글을 써서 나름대로 책(?) 만들기(둘째는 아직 한글을 몰라 도와줘야 한다), 매트 위에 누워서 서로 이야기하기, 학교, 유치원 이야기 하면서 역할놀이 하기, 몸으로 놀기, 싸움 놀이(진짜 싸우는 것처럼 하는데 노는 거란다), 알까기, 오목, 블록 조립하기, 첫째가 둘째에게 책 읽어주기 등 노는 방식도 다양하다.

가끔 가만히 지켜보면 둘이 있어도 서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혼잣말을 하는 경우도 있던데...

그러다 어느 순간 둘이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기하다. 시도 때도 없이 말을 하는 두 아들이라 나는 귀를 조금 닫고 싶은데, 저 둘은 귀가 아프지도 않나 보다. 잘~~ 도 논다.

가끔은 둘이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놓고는 소곤소곤 조용히 놀기도 한다.

도대체 문을 닫아놓고 뭘 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문을 열어보면 그냥 평소 하던 놀이다.

그것을 자기들끼리는 나 몰래 한다고 저렇게 노는 것이다.


잘 놀지만 싸울 때도 있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예전엔 싸우는 횟수를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는데(생각해 보면 첫째가 많이 참고 봐줬던 것 같다), 지금은 횟수가 늘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 말로는 이 정도면 싸우지 않는 거란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싸워서 서로 울고 씩씩대며 내게 상대방이 잘못한 것을 모두 다 일러바치면, 서로의 이야기를 일단 다 들어준 후 진정시키고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하고 안아주라고 했다.

그러면 씩씩거리면서도 "미안해"라고 말하고 어설프게나마 안아주곤 했다.

그러면 언제 싸웠냐 싶게 서로 히히 거리면서 놀았다.

그런데 올해부터 아이들이 달라졌다!

별 것 아닌 것으로 싸우는 횟수가 일단 늘어났다. 가만 보면 둘째가 건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첫째도 이젠 참기 힘들었는지 소리를 지르면서 싸운다.

둘이 서로 소리를 지르고 가끔 몸싸움도 하고(심하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울고 내게 일러바친다.

그러면 예전처럼 이야기를 들어준 후 서로 미안해라고 말하라고 하는데, 이젠 싫단다.

그러더니 내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 우린 미안해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화해해.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 둬!"

"뭐? 그래도 서로 말로 미안해라고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니, 싫어. 조금 있으면 알아서 화해한다고!"

음... 과연 그럴까 싶은데, 신기하게도 정말 잠깐 시간이 지나면 언제 싸웠냐 싶게 둘이 신나게 놀고 있다.


원래 아이들은 다 저렇나? 나도 어릴 때 저랬을까?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젠 자기들끼리 해결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

엄마의 개입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니 놔두라는...

음... 그래서 요즘엔 둘이 서로를 일러바치면서 얘기하면 나도 얘기한다.

"음. 알았어. 그런데 둘이 먼저 해결해 봐. 그래도 안되면 엄마에게 얘기해."

그러면 둘이 이야기를 하다 삐친 것이 풀리지 않아 각자 다른 방으로 가서 다른 것을 하기도 하고, 한 명씩 내게 와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를 계기로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신기하다... 좀 전까지 그렇게 울고 불고 싸워놓고서는 "이게 뭐야?"라는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아이들. 그렇게 말을 트면 금세 또 하하 호호 웃고 있다.


금방 화해하는 두 아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어떤가 생각해 본다.

어른 중 싸워도 금방 화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마음의 벽을 세운 채 거리를 두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가. 나는 일단 싸우는 것을 싫어한다. 마음이 불편한 것이 싫어서 되도록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내 의도와는 다르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목소리부터 차이가 난다.

태도도 삐딱해지고 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굵은 선을 그어 놓는다.

내 경계선을 넘어오지 못하게 경고를 하면서 화해 같은 단어는 저 멀리 날려버린다.

어른인 나는 아이들에게 화해하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할 때가 많구나 싶어 부끄럽다.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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