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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May 26. 2023

우리는 저마다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기억... 그 기억이 진실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한때 내 기억을 맹신했던 때가 있다. 정말 말 그대로 맹신!!

많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뇌리에 강력히 박힌 몇몇 일들은 진실이라 믿었다.


내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30대가 넘어서였다.

어느 날 아는 언니와 직장을 마친 후 백화점에 간 적이 있었다.

며칠 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백화점에 어떻게 갔느냐에 대해 서로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당연히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맞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기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차렸다.

언니 말이 맞다고 인정한 후 내가 잘못 기억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은 허무했다.

내 기억력을 의심해 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나의 기억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이 년 전인가 남동생과 어렸을 때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남동생과의 추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내  입술 아래쪽에 있는 희미한 흉터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의 일로 기억한다.

남동생과 나의 나이 차이는 4살.  

그 당시 우리 삼 남매는 사이가 꽤 좋아서 같이 많이 어울려 놀았다.

그날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집에서 남동생을 업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내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입술 아래쪽이 부딪히면서 피가 났다.

다행히 동생은 다치지 않았고, 나는 울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 두 분 다 집에 안 계셨기 때문에 대충 지혈을 했던 것 같다.

다음날인가 동네병원에 갔는데 꿰매기에는 늦었다면서 소독해 주고 약만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날 이후부터 내 입술 아래쪽에 희미한 상처가 계속 남아있다.

나는 이렇게 내 몸에 상처가 나면서까지 동생을 업어준 기특한 누나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은 동생이 기억하는 나와의 일화 중 하나다.

어느 날 내가 불장난을 같이 하자고 했단다.

음... 어릴 때 나는 좀 장난꾸러기 같은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삼 남매가 마당에서 성냥(?)을 가지고 놀다가 어딘가에 불이 조금 붙었단다.

금방 끄긴 했지만 불장난한 것을 들킬 정도였겠지.

그런데!! 내가 남동생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니가 했다고 하면 엄마, 아빠가 덜 혼낼 테니 니가 했다고 해라."

남동생은 순진하게 누나 말을 그대로 듣고 본인이 했다고 말하고는 엄~~~ 청 혼났단다.

음... 문제는 나는 그 일이 전! 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생은 그 일이 억울해서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그 일이 큰일이 아니었던 거다.

잊고 싶었던 기억이었던지 아니면 다른 기억들에 밀려 꺼내려고 해도 꺼낼 수 없는 곳에 깊숙이 묻혀 있던지...


남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의 기억이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본인 위주의 관점인가 하는 것이다.

그 기억이라는 것 또한 정말 그게 진실인가 싶을 정도로 각색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내가 기억하는 그 당시의 일과 타인이 기억하는 그 당시의 일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지금까지 믿고 있었던 내 기억이 정말 맞다고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나라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나에게 유리하게 이리저리 편집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래도 그것을 거짓 기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기본이 되는 뼈대는 사실일 가능성이 많으니까... 여기저기 살이 보태졌을 뿐...


저마다 본인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이런 나의 기억을 탓하지 말고 아... 그렇구나 하면서 그냥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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