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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Jan 16. 2024

예민한 나의 청각이 말 많은 세 남자를 만나면...


나는 소리에 예민하다.

큰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깜짝 놀라는 소리에 타인이 놀라는 경우도 꽤 있다.

여기저기 들리는 소음에 귀가 쉬이 피로해진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일방적인 이야기를 20분 넘게 듣고 있으면 지친다.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면서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몽롱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은 되도록 가지 않는다.

여기저기 구경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소음이 따라오는 곳이 아닌 조용한 곳이 좋다.

어렸을 때는 아마 이런 나의 성향을 잘 몰랐을 테다. 많이 걸어서 피곤하다고만 생각했으니까.

북적북적하고 활기 넘치는 곳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정반대다.

좋은 강연,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등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오래되면 지친다.

에너지를 슬금슬금 뺏기고 어느새 방전된 상태로 집에 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충전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런 내가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내가 봤을 때 적당히 이야기하는 편이다. 가끔 말이 좀 많나? 싶을 때도 있지만 뭐, 그 정도는 괜찮다.

첫째 아들은 4살(바뀐 나이로는 2살) 때 갑자기 말문이 틔었다.

그전까지 단어 위주로 조금씩 말하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문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요 조그만 생명체가 조잘조잘 대는 것이... 

그런데, 어느 순간 말하는 것이 과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 귀가 아프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고, 남편을 봐도 잘 모르겠는데... 뭐지? 궁금했다.


어느 날 강원도 시댁에 가서 어머님께 첫째 아들이 말이 정말 많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머님이 웃으시면서 남편이 어릴 때 그랬단다. 말이 정말 정말 많았다고...

쉬지 않고 말을 했다는 거다. 

아!!!!!!! 이럴 수가... 강력한 유전의 힘이었구나!

어머님의 말을 듣고 첫째를 가만히 봤는데, 이 아이도 쉬지 않고 말을 한다.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자기가 아는 것을 알려주느라 입이 쉴 틈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친 지금도 마찬가지다. 

책 읽거나 본인이 집중해서 무언가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말을 한다고 봐야 한다. 가끔 신기해서 묻는다.

"너 그렇게 계속 말하면 목 안 아파?"

"목이 왜 아파? 하나도 안 아픈데. 그래서 엄마."

아. 또 시작이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내고 있다.


https://pin.it/47 jXloI



그런데 유치원생인 둘째 아들도 말이 많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예전에는 첫째에 가려져서 빛을 발하지 않았을 뿐.

형이 책을 읽느라 입을 쉬면 둘째 아들이 조잘조잘 얘기를 하기에 집에 오디오가 비는 적이 거의 없다.

아, TV 볼 때가 유일한 조용한 시간인가 보다! 하루에 30~40분 정도 그 시간이 그나마 조용하다.

TV 시청이 끝나자마자 둘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둘이 노느라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다. 

나에게 둘이 한꺼번에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팽 돈다.

제발 한 명씩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한다. 

어딜 갈 때도, 어딜 가서도 말을 끝없이 한다.

둘째는 목청도 크다. 그제야 둘째 아들이 아기였을 때, 엄청 큰 울음소리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두 아들 모두 비슷한 횟수로 울었을 것 같은데, 첫째는 조용히 울어서 사람들의 기억에 잘 남지 않은 반면, 둘째는 목청이 남달랐기에 누구든 둘째는 아기였을 때 많이 울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목청은 여전한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밤에 잘 때도 말은 끊이지 않는다. 이제 피곤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나 보다.

내 귀는 자기 전까지 힘들어한다. 


어떤 때는 내 귀에서 피가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귀가 너덜너덜해진 느낌에 급 피로가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예민한 청각이 세 남자를 만나 조금은 무뎌질 법도 한데 아직은 멀었나 보다.

아닌가? 예전보다는 무뎌졌기에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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