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리본 황정희 Sep 10. 2021

12사도 순례의 집, 섬과 삶이 공존하는 섬티아고 길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 섬 여행. 신안의 자그마한 섬에 예수의 12제자를 모티브로 한 아주 작은 12개의 예배당이 세워졌다. 불현듯 생겨난 어여쁜 건물들과는 별개로 섬 주민들은 여전히 그네들의 삶을 찐득한 갯벌에 의지해 살고 있다. 1년여를 이곳에 머물며 작업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섬사람들의 삶과 순례를 연결 지어 무엇을 얘기해주고 싶었을까? 대기점도 앞바다의 느린 흐름을 따라 생각의 고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섬티아고 길에서 만날 수 있을 것들에 대해 기대감이 커져간다. 햇볕 아래 수 시간을 걷는 자발적 고난조차 여행의 기쁨에 묻힐 것이다.     

12개의 예배당이 만들어진 섬은 크게는 소악도와 대기점도이다. 작게는 가장 작은 섬으로 딴섬이 있고 진섬,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의 5개의 섬이 3개의 노두길을 열어 간신히 서로를 붙잡고 있다. 노두길은 주민들이 갯벌에 큰 돌과 자갈을 던져 한 걸음씩 내디뎌가며 만든 길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굴이나 해조류가 들러붙어 자라면서 점점 거칠어져 가는 그 길을 지나 병풍도로 학교를 다녔다고 회고한다. 지금은 돌 위로 반듯하게 시멘트가 깔려 자동차나 자전거가 씽씽 달릴 수 있다. 


노두길 위를 걸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갯벌 위에 만들어진 길은 썰물에 드러났다 밀물에는 잠겨 들어 없어진다. 노두길이 사라지면 3~4시간이 지난 후에나 나타난다. 12사도 길에는 3개의 노두길이 있어 부지런히 걷는다고 해도 하루에 다 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 완강하게 하루 만에 12사도를 다 보겠다면 자전거를 타고 부리나케 달리는 것이 방법이다. 이와 달리 느긋하게 12개 예배당이 전하는 메시지를 음미하며 섬티아고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이라면 섬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것을 추천한다.  



1번 베드로의 집

송정항을 출발한 배가 천사대교 아래를 지나 1시간 10분여를 항해한 후 대기점도 선착장에 들어간다. 가장 먼저 외지인을 맞이하는 순례자의 집은 1번(베드로의 집)이다. 산토리니 섬의 새파란 지붕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과 남녀 인어가 그려진 화장실이 앙증맞다.  허리를 굽혀야 칠 수 있는 키 작은 종을 울려 12km 섬티아고 순례의 닻을 올린다. 


2번 안드레아의 집

섬티아고 순례길의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마을에 2번(안드레아의 집)이 있다. 안드레아의 집은 대기점도의 어미 섬인 병풍도와 연결되는 노두길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곳이 서있다. 예배당의 문지기는 고양이다. 대기점도와 고양이의 인연은 각별하다.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였고 개를 떠나보냈다. 고양이들이 찬장을 기웃거리고 건조 중인 생선을 훔쳐 먹자 다시 개를 들여오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전히 대기점도는 고양이 섬이다. 70여 주민과 300~400여 마리의 고양이가 공존한다. 작가는 섬 주민들과 고양이가 더불어 살아감을 표현하고 있다. 


3번 야고보의 집

3번(야고보의 집) 안에는 성덕대왕신종의 비천문이 예배당 벽에 새겨져 있다. 낯선 조합이다. 12사도 순례길이 종교적 색채만 띤 길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두 평 남짓한 작은 예배당에서 기도와 묵상에 젖을 수 있고 결국 삶에서 쉼을 찾을 수 있음이다. 


4번 요한의 집

입구에 염소 조각상이 서있고 몇 개의 계단이 치마처럼 펼쳐진 주황빛 문을 가진 4번(요한의 집) 앞에는 새우양식장이 있다. 이른 아침, 먹이를 뿌리며 작은 나룻배가 지나간다. 생명평화의 집다운 한가로운 풍경이다. 


5번 필립의 집

5번(필립의 집)은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프랑스 남부 도시인 툴루즈에 사는 장 미셀 후비오(Jean Michel Rubio) 작가의 작품이다. 붉은 벽돌과 갯돌, 나무로 된 지붕... 모두 섬에서 난 것들로 만들어졌다. 12사도 순례자의 집은 섬을 재료로 섬사람들의 생활 위에 서있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손을 뻗은 형태의 곡선미는 물고기 형태를 띤다. 바다를 업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

6번(바르톨로메오의 집)은 호수 위에 바람에 날린 꽃잎 한 송이가 떨어진 듯하다. 이 또한 장 미셀의 작품으로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7번 토마스의 집

흰색과 파란색의 단순함이 마음을 단순화하는 듯한 7번(토마스의 집)의 바닥에는 별들이 가득하다. 별들은 예배당 안에까지 스며든다.


8번 마태오의 집

갯벌을 지나 노두길 중간에 자리한 8번(마태오의 집)으로 향한다. 물이 차서 바다 위에 오롯이 서있을 때는 러시아 정교회를 닮은 이국적인 건물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물이 빠지면 황금색에 끌리듯 다가가 빛나는 건물의 안과 밖에서 기쁨을 맛본다. 마태오의 집은 기쁨의 집이다. 


9번 작은 야고보의 집

9번(작은 야고보의 집)에서 물고기 형상의 스테인드 글라스에 담긴 하늘을 올려다본다. 작은 예배당 안으로 파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10번 유다 다대오의 집

뾰족 지붕을 가진 10번(유다 다대오의 집) 예배당 바닥은 오리엔탈 양식의 타일이 깔려있다.

 

11번 시몬의 집

11번(시몬의 집)은 예배당 가운데로 바닷바람이 자유롭게 넘나들도록 만들어졌다. 그곳에 서서 바다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오랫동안 삶을 꾸려왔던 섬사람들의 삶을 축원한다. 


12번 가롯 유다의 집

마지막 여정은 12번 (가롯 유다의 집)이다. 외따로 떨어진 딴섬에 있다. 물이 빠져 드러나는 갯벌과 모래사장을 지나 숲 자락을 병풍처럼 두른 곳에 호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나선형의 종탑에 종이 매달려 있다. ‘이곳에서 열두 번 종을 울리며 지치고 힘들고 뒤틀린 심사를 하나씩 허공에 날려버리고,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힘과 지혜를 얻으라’는 손민아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1번 베드로의 집에서 종을 칠 때는 허리를 굽히고 마지막 12번 가롯 유다의 집에서 종을 칠 때는 허리를 편다. 조금씩 생각을 키워가며 자신을 일으키는 여정 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섬이 주는 기쁨에 감사하며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 행복이 가득하길 소망한다.   


.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잠 못 드는 밤, 동해 논골담길 그 집이 그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