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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리본 황정희 Sep 08. 2021

오늘도 잠 못 드는 밤, 동해 논골담길 그 집이 그립다

논골담길 그 어느 집에서 잠들었던 밤이 그립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길, 애환의 밤 사이를 비집고 비집어 새벽부터 밤까지 헤매었다.

해 질 녘이 보고 싶었고 밤의 적막을 느끼고 싶었다.

아침에 창가로 스미는 햇살을 만나고 싶었고 아무도 없는 새벽의 골목길을 홀로 걷고 싶었다.

논골담길을 얼마나 많이 오르락내리락하였는지 꽤 높은 산 하나를 오르고도 남았을 만한 여정이었다.

논골담길에는 오밀조밀 수많은 인생들이 가파른 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무심코 걷다가 가끔은 막다른 길을 만난다. 분명히 길을 걷고 있다 싶었는데 남의 집 창문가를 지나며 거실 안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길은 다 통한다는 이야기가 먹히지를 않는다. 그리 헤맨다고 아무런 문제는 없다. 뒤돌아 나가는 길은 들어올 때와 또 다른 그림을 보여주고 아까와는 다른 골목길이다.

주인이 떠난 집이 꽤 많다. 담쟁이가 제 집인 양 가지를 뻗고 있고 생명력이 질긴 풀들이 주인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떠난 빈자리가 커도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에겐 이곳이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새벽 산책을 나섰다가 작은 텃밭에 요강을 비우는 할머니를 보았다.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음을 느낀다.

작은 텃밭과 그 위에 구조물처럼 세워진 장대가 궁금하다. 공사를 하다 중단된 흔적인가 하였다. 옆 마을에서 보는 논골담길은 어떨까 싶어 나선 길에 장대에 줄줄이 널어놓은 명태를 보고서야 오징어와 명태를 이고 지고 이곳까지 올라와 긴 쇠 장대에 널어 말렸음을 알았다. 항구에서 시작된 바다 냄새가 골목길을 지나 집안까지 흐른다. 바닷물 흥건한 그네들 삶에 장화는 필수였다. 벽화나 시구에 장화가 많이 보일만 하다.

바람의 언덕은 등대를 바라보고 좌측에 있다. 현대적인 건물의 논골 카페를 지나 포토 존에 서면 묵호항과 묵호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의 언덕에는 어떤 바람이 불고 있을까. 발아래에는 아직도 좁고 낡은 집들이 즐비하다. 그 아래 항구에는 어시장의 불빛이 흥청거린다. 저 먼바다에는 띄엄띄엄 배의 불빛이 보인다.

기쁨도 슬픔도 잠이 드는 시간인 밤에 집집마다 조명이 들어오면 곤궁한 삶조차 괜찮아 보인다. 내일은 뭔가 다른 날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파른 산자락 좁은 방에 몸을 누이고 새로운 아침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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