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무건리 이끼폭포를 사진으로만 보았지 직접 보지 못하였다. 사람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을 안고 사나 보다. 막연하게나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언젠가 가볼 곳이라고 찜해 놓았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여름의 끝자락, 아니 밤이 되면 가을이 덥석 안마당까지 들어오는 계절 참이다. 곧 대청마루를 지나 안방까지 들어올 듯하다. 그때는 이끼도 제 색을 잃고 노릇해지지 않을까. 며칠 전에 꽤 많은 비가 왔으니 수량은 적당할 것이고 아직 가을이 되지 않았으니 여름의 싱그러움은 여전할 것이다. 그런 기대감으로 폭포로 향한다.
요즘 무거운 것 딱 질색인데, 행여나 고운 그림 놓칠 까 싶어 삼각대와 카메라를 배낭에 짊어지고 빠르게 걷는다.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홀로 도착해 흔들림 없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심에 거의 경보 수준이다.
처음 500m는 시멘트 도로다. 장딴지는 당겨오고 가끔 쉬어줘야 할 만큼 오르막이다. 하나도 안 쉬었다. 시멘트가 끝나자마자 흙길이다. 작은 돌들을 뿌려 놓아 흙돌 길이라고 해야겠다. 거의 평지로 가끔 아주 약간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을 뿐 걷기 좋은 숲길이다. 서두르니 사람이 거의 없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숲길을 걸으면 마음까지 푸르러질 만한 길인데 마음이 바빠 빨리 걷기에만 집중한다. 어느새 등 쪽의 배낭에서는 땀이 배어 나온다. 그래도 쉴 수는 없다.
무건리 이끼폭포까지 2.5km 표지판을 지나고 2km 표지판을 지나고 1km 표지판에 다다랐다. 평지지만 걸어온 길이 꽤 길었다. 누군가는 이 코스는 산행을 주로 하는 사람에게는 시시해 보일 테고 산행을 별로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꽤 힘든 코스라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3.5km의 트레킹이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나 보다고 말한다. 속도를 높이면 산행하는 듯 충분히 운동이 되고 천천히 걸으면 동네 뒷산 걷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이곳인데... 생각하기에 따라서 길에 대한 사람의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돌흙 길이 끝나고 이제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야자수매트가 보드랍게 깔려있다.
'이곳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닙니다.'
무건리 산속 마을에 300여 명이 살았고 가파른 산자락에 학교가 있었다. 너무나 오래전에 폐교가 되어 흔적마저 바스러졌지만 이곳은 학교가 있던 자리임을 안내하는 표지판옆에 쓰여있는 문구다.
가파른 계단을 꽤 내려가니 파라솔 2개가 보인다. 뭔가 이질적이지만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폭포에 다다랐다.
무건리 육백산 깊은 계곡에서 우람한 물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폭포수는 초록의 절경이다. 최근에 무건리 이끼폭포에 데크가 놓였다. 2017년 가을 무렵이다. 예전에는 몇몇 아는 사람들만 찾던 곳이고 특히 사진가들이 이끼 위를 오르내리며 발밑의 이끼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차라리 그때 오지 않았던 내가 더 좋다. 2020년 태풍으로 이끼가 많이 떨어져 나갔다는 비보가 있어 예전만 못하다곤 하지만 무건리 이끼폭포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초록의 나무와 초록의 이끼 그 위에 하얗게 부서지는 물살에 가슴이 후련해짐을 얻는다.
아래쪽에 있는 폭포는 거꾸로 든 부채 모양으로 돌과 초록이 그려진 부채 살 사이로 흰 물줄기가 내려오는 모습이다. 오른쪽에는 중간중간 돌이끼 사이를 내려오는 폭포가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고 정점은 위쪽 폭포로 올라가야 만난다. 다행히 사람이 거의 없다. 암벽 사이를 통과하면 신선이 머물 것 같은 선경이 숨어있을 듯하다. 물은 맑은 물색을 만들며 모였다가 다음 폭포로 떨어져 내린다. 협곡을 만드는 바위와 살짝 비추는 파란 하늘 외에는 초록과 흰 물줄기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