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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리본 황정희 Sep 14. 2021

1,004m 골프코스,파7에 쓰러지다

국내에 최장 골프코스, 1,004m의 군산cc. 골프 입문한 지 1년 4개월 차 골린이의 1박 2일 패키지 첫 도전. 

골프를 하면서 모래에 물 붓는 것처럼 사라지는 돈에 흠칫할 때가 많다. 돈에 구애를 받지 않고 골프를 하는 이도 있겠지만 아껴 아껴 골프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캐디가 있는 정규홀은 여전히 기피대상이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가볼 만한 골프장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검색하는 과정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골프와 여행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하여 선택한 것이 군산cc 1박 2일 패키지 상품이다. 개인적으로 군산cc를 홍보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가성비는 확실히 갑인 골프장이라는 결론이다. 군산cc는 폐염전 위에 생겨진 골프장으로 81홀의 골프홀을 가지고 있다. 높낮이는 없지만 페어웨이가 넓어서 한 마디로 빵빵 때리기 좋은 골프장이다. 우리는 비용을 생각하여 노캐디의 김제, 정읍코스를 이틀 내내 쳤다. 

서울에서 군산까지 3시간 정도 잡고 출발하였다. 부리나케 달려 군산cc에 도착한 첫 감상은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은 가다. 퍼팅연습장은 잔디보다 모래가 더 많아 보일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홀의 잔디 상태에 대해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행히 잔디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린 위는 디봇 천지여서 퍼팅에 애로가 많았다. 사실 퍼팅이 가장 취약한 내가 할말은 아니긴 하다.


노캐디는 캐디백을 카트에 싣는 것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 1박 2일일 때는 캐디백을 보관해주기 때문에 게임이 끝나고 난 뒤 지정 장소에 놓아두고 가면 되는 것은 편하다. 첫날, 1시 40분 티오프, 김제코스부터 시작하였다. 코스에 들어선 순간 '지평선이야?'라고 할 정도로 페어웨이가 넓고 수평적이다. 그런데도 OB를 냈다. 역시 초보자의 멘탈과 실력은 티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바닷가 가까운 골프장이라서 바람의 영향이 많다고 하는데 바람이 있기는 하지만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후반 홀인 정읍코스에 그 유명한 1004홀이 있다. 정읍코스의 세 번째 홀이다. 블랙티가 1004이고 레드티가 853이다. 그런데 어떤 티인지를 알려주는 사각형의 말뚝이 보이지 않아 우왕좌왕하다 얼렁뚱땅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말뚝이 제자리에 예쁘게 있었는데 우리가 전날 쳤던 곳이 화이트 티였다. 어쩐지 도가 지나치게 길다 싶었다. 어찌 되었든 드라이버를 치고 난 뒤 우드 하나만 들고 내리닫이 치고 걷고 하였다. 페어웨이가 넓어 카트까지 가는 것이 더 돌아가는 길이 될 때가 많다. 실력이 좋은 이라면 카트 도로 방향으로 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럴 실력이 안되니... 쳐도 쳐도 그린은 나오지를 않는다. 우드 연습하기는 최고의 코스인 듯하다. 1004의 사악한 위력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두 번째 날에는 레드티에서 출발해서인지 아니면 한번 경험했다는 경험치 때문인지 조금은 수월하게 코스를 마칠 수 있었다.

늦게 티오프를 시작해서 마지막 홀쯤에서는 노을이 함께 했다. 왜가리와 오리들이 떼 지어 날고 구름은 오묘한 색을 내며 물든다. 이럴 때면 골프를 시작하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고 여겨진다. 행복한 무언가를 하나 더 얻게 되었으니 인생의 색이 좀 더 다양하게 칠해지고 있지 않은가. 

둘째 날, 티오프는 아침 8시다. 골프텔 숙소에서 안개에 싸인 골프코스를 보며 힐링하였다. 패키지에는 조식 뷔페가 포함되어있는데 이외로 훌륭하다. 한식 위주의 식단이고 18홀을 돌 생각에 든든하게 챙겨 먹었다. 커피는 4000원을 추가 지불해야 한다. 모든 정산은 라운딩이 완료된 후에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두 번째날은 확실히 첫날보다 여유 있게 골프를 즐길 수 있었다. 마의 1004코스에서는 난생처음 3번 우드에 도전하였다. 무조건 휘두른다는 생각으로 쳤더니 그런대로 잘 맞아 약간의 자신감이 붙었다. 

1박 2일 골프패키지는 골프에 집중할 수 있고 친구들과 여행이라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선유도에서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고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거리를 걸었다. 함께 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며 인생이라는 여행을 계속 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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