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이 시간, 이 순간 많은 것들에 미련이 남는다. 어이 해 이 정도 나이를 먹었고 그런데도 놓지 못한 많은 것들에 미련을 가지고 몸부림치고 있는지.
나는 오늘 스러져가는 모든 것들 중 몇가지를 얘기하고 싶다.
첫 번째로 스러져가는 것은 시간이다.
그 어느 날 나는 태어났고 유아기와 어린이, 탈 많은 청소년기를 거쳐 어찌어찌 성인이 되었고 준비되지 않은 엄마가 되었다. 그리 순탄했으면 좋으련만 시련이 있었고 위안이 될 만한 것을 찾았고 그것은 나에게 자연이었다. 꼭 집어 말하자면 꽃이다. 그리고 여행을 다녔고 새로운 사람을 끊임없이 만났고 그리고 옛 친구와 해우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탈도 많았지만 기쁨도 간간히 있었던 그런 나의 시간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스러졌다.
두 번째로 스러져간 것은 인연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생에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옆을 봐라. 가족, 혈연으로 묶인 친족이라는 개념 외에 나에게 다가왔던 인연은 가까이 왔다가 모래알처럼 흩어지더니 공기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물론 지금 옆에 있는 인연은 좀더 강한 연으로 묶인 이일 것이다. 하지만 스러진 인연 또한 인연이었다. 그 존재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나의 인생에 나타났던 것일까. 스러진 인연이란 나에게 불필요함이었을까. 그들이 떠난 자리엔 그들이 떠날만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나는 그들이 필요치 않았다는 자기위안을 삼으려고 한다.
나의 현재 존재함이 타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자기 방어일까. 나를 스쳐간 인연일 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존재이리라. 나의 옆에 왔다 사라진 인연에게도 그들만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위안하며 그래도 내곁에 와주었던 인연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세 번째로 스러진 것은 삶에 대한 자신감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내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얼마 전에 엄마가 치매 판정을 받았다. 울 엄마는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돈을 벌어 본 적도 없다. 그것이 본인의 선택이었을까.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사회의 강요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에 순응하며 살았더니 찾아온 것이 점점 자신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경고다. 울 엄마는 치매가 치료되기 보다는 늦춰준다는 약을 꼬박꼬박 먹으며 어느날 사라질 기억에 대한 공포에 쌓여있다.
나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가 아니다. 나도 언젠가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더 행복할 꺼라는 자신감이 그럴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경우의 수에 휘둘리게 되었다. 나의 자신감은 솟구치다가 나락에 떨어졌다가 한다. 예전에는 잘될 꺼라는 자신감에 차있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이대로 현실에 굴복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을 기약하고 뭔가 내가 할일이 있지 않을 까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