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리본 황정희 Sep 18. 2021

메밀꽃 필 무렵, 나는 누구와 그 길을 걷고 싶을까?

메밀꽃이 피었다. 가을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한낮은 여름을 잊지 못한 듯 뜨겁다. 나는 메밀꽃이 보고 싶다. 어딘가로 자유롭게 떠나고 싶고 그곳이 너른 메밀밭이면 좋겠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메밀밭을 휘적휘적 걸어가는 허생원의 뒷모습을 그려보려 소설의 무대로 향한다.

메밀꽃은 하얗게 핀다. 너르게 자리한 메밀밭은 하얀 소금밭이다. 하얗게 그리도 하얗게 소금꽃 피듯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는 메밀은 논농사가 어려운 곳에서 재배하던 일종의 구황작물이었다. 주린 배를 채워줄 쌀을 대체한 식물로 산간지역에서 많이 재배하였고 가장 유명한 곳이 평창, 그중에서도 봉평이다. 이효석의 고향이 봉평이다.

소금꽃

많은 사람들은 메밀밭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어도 자연스레 소금밭을 연상한다. 36세의 나이로 요절한 이효석 작가의 영향이다. 1907년 태어난 그는 1942년 생을 마감한다. 아내와 둘째 아들을 잃은 지 2년 만에 그는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일제강점기였고 이런 시대적 배경은 문학가들에게 생활이냐 조국이냐 하는 갈등을 안겼다. 그 또한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과 가족과 조국에 대한 고뇌로 들끓었으리라. 이런 가운데 등장한 <메밀꽃 필 무렵>이란 작품은 아무리 삶이 고되고 힘들지라도 지켜야 할 순수에 대한 항변이다.


허생원은 전국의 길 위를 떠도는 장돌뱅이다. 얼굴이 얽어 인물도 별로고 그리 돈도 못 버는 부평초 같은 인생이다. 매년 그가 꾸역꾸역 찾아드는 봉평장에는 그의 하룻밤 순정이 있다.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사랑이다. 누구나 잊지 못할 사랑이 있듯이 그에게는 봉평 물레방앗간에서의 하룻밤이 그의 삶에 의미를 던져주는 진실이다.  


봉평장 주막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장돌뱅이 동이는 허생원처럼 왼손잡이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내를 건너다 물에 빠진 허생원을 업고 내를 건너는 동이, 그는 과연 그의 아들일까?


'동이 엄마가 혹시 그때 물레방앗간의 성 서방네 처녀가 아닐까?' 허생원의 생각은 꼬리를 문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는 것은 비단 허생원만이 아니다. 독자들도 그 심정으로 메밀밭에 서면 떨어져 만나지 못한 인연이 하얀 꽃밭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메밀꽃은 그렇게 몸이 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달밤에 이곳을 걸으면 하얀 소금꽃이 아닌 은빛 달꽃이 필 것 같다. 무심한 듯 흐드러진 모양새는 작은 것들이 모여 보여주아름다운 주장이다. 나는 가을에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메밀밭 여행을 가련다. 그곳에는 문학에 담긴 애절한 희망이 있고 달빛 아래 거니는 낭만이 함께하는 때문이다.


'나는 이 하얗게 뿌려진 소금밭을 누구와 걷고 싶지?'


매거진의 이전글 오름에 핀 이름 모를 들꽃과 친구가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